스티브 잡스가 저승에서 환호성을 질렀으리라. 8월24일, 미국 캘리포니아 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전자 대 애플의 1심 특허소송에서 배심원단은 애플의 주장(삼성전자의 특허권 침해)을 ‘거의 100%’ 받아들였다.

‘거의 100%’라고 한 이유는, 이미 지난 6월부터 판매금지가 시행된 갤럭시탭10.1만이 ‘특허권 침해’ 혐의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삼성전자의 주장(애플의 특허권 침해)은 100% 배척당했다. 배심원들은 삼성전자가 애플에 10억5000만 달러(약 1조2000억원)를 손해배상금으로 지급하라고 평결했다. 업체들의 이해가 복잡하게 맞물려 깔끔한 승부가 어렵다는 ‘특허권 재판’에서, 애플이 이 정도의 완승을 거둘지는 어떤 애널리스트도 예측하지 못했다.

이런 배심원단 평결이 나오자마자 애플은 삼성전자의 갤럭시S2, 갤럭시S 4G 등 8개 제품을 미국에서 팔지 못하게 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에 대한 심리는 당초 9월20일 열릴 예정이었다(12월6일로 연기). 여기서 삼성전자가 ‘고의적으로’ 애플의 특허권을 침해했다고 재판부가 판단할 경우, 손해배상금 역시 2~3배로 올라갈 수 있다. 적어도 이날 평결은, 삼성전자를 미국 시장에서 몰아낼 수 있는, 애플에게는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최상의 시나리오였다. 이는 스티브 잡스의 유훈이기도 했다. 


“안드로이드를 없애버리겠다”

스티브 잡스 생전부터 애플은 삼성전자에 특허전쟁을 연이어 도발해왔다. 4개 대륙 10여 개 국가에서 재판이 10여 건 진행 중이다(22~23쪽 딸린 기사 참조). 이번 캘리포니아 재판은 그중 하나일 뿐이다. 애플이 삼성전자를 주적(主敵)으로 삼은 이유가 있다. 삼성전자는 안드로이드(구글의 운영체제)에 기반한 스마트폰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고 있는 업체이기 때문이다. 스티브 잡스는 안드로이드가 아이폰의 운영체제인 iOS를 모방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심지어 안드로이드를 “수소폭탄 전쟁”으로 절멸시키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캐리돌 제작:시사IN 양한모

 


스티브 잡스가 단지 ‘천재’의 상처받은 자존심 때문에 안드로이드를 아주 없애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특히 삼성전자의 갤럭시 시리즈가 ‘애플 천하’를 심각하게 위협했기 때문이다. 삼성-애플 간의 싸움은, 한 해 3120억 달러(약 353조원) 규모로 추산되는(2011년 기준 블룸버그의 계산) 거대 시장을 둘러싼 세계대전인 것이다. 삼성전자와 애플은 그동안 혁신과 가격을 둘러싸고 싸웠다. 이 전투가 법정에서도 벌어지고 있으며, 이번 ‘캘리포니아 평결’은 하나의 전선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삼성전자는 어떻게 애플 천하를 위협해왔는가. 모바일 디바이스 부문의 국제적 시장조사 기관인 IDC 통계에 따르면, 현재 스마트폰 부문에서 세계 1위 업체는 애플이 아니라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지난 2분기(4~6월)에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폰을 5000만여 대나 팔았다. 단일 업체로는 신기록이며 세계시장 점유율도 32.6%에 달한다. 이에 비해 애플이 판매한 스마트폰은 2600만 대에 불과하다. 시장점유율은 16.9%로 삼성전자의 절반 정도. 노키아(핀란드), HTC(타이완), ZTE(중국) 등 다른 유력 스마트폰 제조업체의 시장점유율은 모두 7% 이하에 그쳤다(20쪽 표 참조).

이는 물론 9~10월 출시될 아이폰5를 기다리는 소비자들이 애플 제품 소비를 늦추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대기 수요’로 최근 애플의 판매 실적 저조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최근 2~3년간 삼성전자가 뻗어나가는 기세는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권력이동을 예상케 할 정도로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최다 판매 업체를 표시하는 IDC 통계에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나타난 것은 2010년 2분기다. 이전까지는 삼성전자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5%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후 삼성전자는 경이로울 정도로 판매량을 늘려나가다 급기야 1년3개월여가 2011년 3분기에는 애플을 제치고 시장점유율 1위 업체로 등극한다. 당시 삼성전자와 애플의 시장점유율은 각각 20.0%, 14.5%. 애플은 지난해 4분기 출시한 아이폰4S 덕분에 1위 자리를 가까스로(삼성전자와 1% 차이) 탈환한다.

올해 가을 출시될 애플의 아이폰5가 시장 판도를 또 어떻게 바꿔놓을지는 예측할 수 없다. 지금까지의 추세로 볼 때 삼성전자가 세계 스마트폰 시장의 ‘선도 업체’로 나설 가능성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는 것은 확실하다.

애플로서는 이런 삼성전자의 상승 기세에 재를 뿌릴 필요가 있었다. 소비자들이 ‘첫 스마트폰’을 자기 회사의 제품으로 선택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애플보다 훨씬 유리한 입지를 가지고 있다. 애플은 고가 브랜드인 아이폰 시리즈만을 출시한다. 반면 삼성전자는 중저가에서 고가까지 다양한 가격과 기능을 장착한 제품으로 시장 구석구석을 찌르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소비자 선택의 폭’이라는 측면에서 삼성전자가 애플보다 훨씬 우월한 것이다. 

 

 

 

 

 

 

ⓒ연합뉴스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앞줄 가운데) 가족이 7월29일 영국 런던 올림픽에서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이재용 사장(뒷줄)이 손에 든 스마트폰이 눈에 띈다.

 

 

그렇다면 애플로서는 이처럼 맹렬히 회전 중인 삼성전자라는 ‘기계’에 못 하나를 던져 넣기라도 해야 한다. 이 ‘기계’가 잠시 멈춘다면 아이폰5가 나오기까지 시간을 벌 수도 있을 것이다. 삼성에 대한 애플의 특허전쟁 도발은 이런 측면에서 이해되기도 한다.

나아가 애플로서는 삼성전자뿐 아니라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모든 회사(모토로라, HTC 등)를 위축시킬 필요가 있다. 안드로이드 기반의 이들 회사 제품에는 모두 아이폰을 크든 작든 모방했다는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안드로이드 기반 스마트폰 업체 중 가장 강대하고 부유한 삼성전자가 법정에서 패배한 것이다. 이제 삼성전자뿐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안드로이드 기반 업체들은 새로운 제품을 설계할 때마다 애플의 기존 제품이나 이후 나올 스마트폰과 비슷하지 않은지, 이러다 거액의 손해배상 소송에 걸리지나 않을지 ‘자기검열’에 골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애플이 캘리포니아 법정에서 거둔 또 하나의 성과다.

절대 다수의 전문가들은 이후 재판과 항소심에서 삼성전자가 ‘캘리포니아 평결’을 뒤집기는 힘들 것이라고 내다본다. 애플의 의도가 관철되리라는 의미다. 그래서 이번 판결로 스마트폰뿐 아니라 모바일 디바이스 시장 전체의 구도가 흔들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모바일 디바이스 시장의 이해 관계자들인 삼성·애플·마이크로소프트·구글 등은 이번 ‘전투’의 성과를 감안해 이후 전략을 가다듬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투’에서 최대 승자가 애플인 것은 분명하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안드로이드 진영에 궤멸적인 타격을 가한 것이다. 이후 ‘캘리포니아 평결’이 시장 규범으로 정착된다면, 삼성전자 등 안드로이드폰 업체들은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입해 아이폰과 비슷하다는 혐의를 받지 않을 정도로 자사 제품을 리모델링해야 한다. 아니면 거액의 특허 이용료를 지급해야 할 것이다.


평결의 ‘최대 피해자’는 구글

이에 따라 이들 업체들이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포기할 수도 있다. 그동안 구글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에 무료로 제공해왔다. 그 대신 안드로이드 기반 네트워크에서 이뤄지는 검색·광고·소프트웨어 등 각종 서비스에서 수수료를 얻는 방식으로 수익모델을 만들었다. 삼성전자 등 제조업체 처지에서는 운영체제 수수료를 내지 않는 만큼 스마트폰 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애플의 높은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에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장착되는 운영체제는 안드로이드였다. 최근 판매된 스마트폰 중 64%가 안드로이드폰이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평결’로 안드로이드 기반 업체들이 애플에 수수료를 내야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안드로이드를 포기하고 애플의 iOS로 갈아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평결의 최대 피해자는 구글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이 부문의 또 다른 거인인 마이크로소프트는 어부지리를 기대한다. 그동안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제인 윈도는 안드로이드와 iOS에 밀려 모바일 디바이스 부문에 본격 진출하지 못했다. 그런 만큼 안드로이드를 포기한 제조업체들이 윈도로 갈아탈 것을 열망하고 있다. 마침 모바일에 최적화된 윈도8이 오는 10월 출시될 예정이다. 노키아도 이에 맞춰 윈도8 기반 스마트폰인 루미아를 내놓을 예정이다. 캘리포니아 평결 다음 날 노키아의 주식은 12%나 급등했다.

그렇다면 이제 ‘스마트폰 천하’는 다시 애플로 통일될 것인가. 아니면 iOS(애플)-안드로이드(구글) 체제에 윈도(마이크로소프트)가 가세한 ‘삼분천하’로 갈 것인가. 무엇보다 한국 출신 초국적 기업인 삼성전자의 운명은?

먼저 손해배상금 10억5000만 달러는 삼성전자에 큰 타격을 줄 수 없다는 의견이 일반적이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지난 2분기에만 58억6000만 달러(약 66조원)에 달했다. 

 

 

 

 

 

 

 

ⓒReuter=Newsis2007년 1월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선보이고 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애플이 요청한 삼성전자 제품의 미국시장 판매금지다. 이 경우, 삼성전자는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회사 기반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일 것 같지는 않다. 애플이 판매금지를 요청한 8종이 지난해 초에 나와 베스트셀러가 된 갤럭시S2 계열이기 때문이다. 올해 나온 갤럭시S3는 제외됐다. 더욱이 캘리포니아 재판부는 판매금지에 대한 심리를 9월20일에서 오는 12월6일로 연기했다. 만약 실제로 12월에 갤럭시S2 계열의 판매금지가 결정되더라도 삼성전자가 입을 손해는 크지 않으리라 보인다. 마침 제품의 ‘라이프 사이클’(수명)이 거의 종료되어 판매대에서 치워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시장조사 업체인 ‘블루 커런트 홍콩’의 제임스 해킹 부대표는 첨단기술 관련 매체 〈버지〉(Verge)와의 인터뷰에서 갤럭시S3 등 삼성전자의 신제품들이 법정에 올라가는 시기는 빨라도 2014년일 거라고 예측했다. 역시 제품의 라이프 사이클이 거의 끝나는 때다. 심지어 삼성전자가 이번 법정 소송이 널리 알려짐에 따라 지구적 차원에서는 애플과 대등하게 겨루면서도 저렴한 제품을 내놓는 회사로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물론 애플이 계속 죽기 살기로 ‘법정 특허전쟁’을 확대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 스탠퍼드 로스쿨의 마크 램리 교수는 “스마트폰 특허는 냉전 당시의 핵무기와 같다”라고 말한다. 모든 국가가 자국의 핵무기를 사용하면 공멸한다. 스마트폰 제조업체들 역시 사실은 상대방의 특허를 조금씩 모방하거나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심지어 애플도) 특허 문제로 깊숙이 들어가다 보면 공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램리 교수는 삼성과 애플 역시 법정 밖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내다본다.

더욱이 삼성과 애플은 생산 공정에서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 예컨대 삼성전자는 애플에 반도체칩과 메모리, 핵심 소프트웨어 등 핵심 부품을 제공한다. 애플이 아이폰의 부품에 쓰는 비용 중 26% 정도가 삼성전자에 지급된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추산한다. 애플 처지에서 ‘불구대천의 원수’인 삼성전자는 가장 중요한 부품 공급자이기도 한 것이다. 애플이 삼성전자를 마냥 몰아붙일 수 없으리라고 보는 중요한 이유다.


LTE 부문에서 삼성 특허 많아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 소비자들의 삼성전자 제품에 대한 ‘충성도’를 고려하면 애플이 특허분쟁으로 삼성전자의 소비자를 견인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더욱이 차세대 이동통신인 LTE 부문에서 삼성전자는 애플보다 훨씬 많은 특허를 갖고 있다. 애플의 아이폰5는 LTE 서비스를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전자가 마음만 먹으면 한국과 유럽, 오스트레일리아는 물론 미국에서도 애플에 LTE 관련 특허전쟁을 도발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실 삼성전자의 가장 중요한 힘은 이런 기술력이다. 삼성전자는 8월29일 독일 베를린에서 연 ‘삼성 모바일 언팩’ 행사에서 윈도 기반 스마트폰인 ‘아티브’와 ‘갤럭시 노트2’를 공개했다. 갤럭시 노트는 지난해 출시된 이후 9개월 만에 1000만 대 판매를 돌파한 히트작이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삼성전자의 호조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스마트폰과 태블릿을 융합한 갤럭시 노트는 애플과는 또 다른 삼성의 유연성을 상징한다. 애플 역시 갤럭시 노트에 대해서는 판매금지 요청을 하지 못했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가 공개한 ‘아티브’의 운영체제는 윈도8이다. 세계 최초로 출시된 원도8 스마트폰인 것이다. 애플로부터 소송당할 이유도 없다. 더욱이 삼성은 연말쯤 구부릴 수 있는 스크린을 장착한 스마트폰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런 신제품들을 통한 삼성의 목표는 장기적으로나 단기적으로나 명확하다. 장기적으로는 애플이 흉내내지 못하는 기술을 통해 ‘선도 업체’ 지위를 굳히겠다는 것이다. 윈도폰인 아티브 출시로 안드로이드에 묶이지 않겠다는 포석도 깔았다. 단기적으로는 갤럭시S2 시리즈에 대한 미국 판매금지가 실현되더라도 신제품 판매를 통해 삼성전자의 현금 흐름을 최대한 안정시키겠다는 것이다.

애플이 ‘캘리포니아 전투’에서 완승을 거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변화된 시장 환경이, 다른 스마트폰 제조업체들로 하여금 ‘아이폰과 완전히 다르고 심지어 더 우월한’ 신제품 개발에 골몰하게 함으로써 애플에 역풍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애플 이외의 업체 중 자금력과 기술에서 가장 유리한 회사는 삼성전자다. 전투 중 하나는 캘리포니아에서 끝났지만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기자명 이종태 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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