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피에르 바야르 지음김병욱 옮김·여름언덕 펴냄
세 가지 두려움에 대한 질문. 당신은 독서를 의무라고 느끼십니까? 당신은 책을 정독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또 당신은 읽은 책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믿습니까? 비록 다수는 아니겠지만 이 질문들에 어느 정도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다면 ‘강추’할 만한 책이 있다. 프랑스의 문학교수이자 정신분석학자인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여름언덕 펴냄). 책이라곤 거의 읽지 않는 환경에서 태어나 독서에 그다지 취미를 들이지 못했고 독서할 시간도 별로 없었지만 그럼에도 책을 읽고 책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는 직업을 갖게 된 저자가 도달하게 된 ‘독서론’이다. 혹은 독서에 대한 강박과 무의식적 죄책감에서 벗어나자고 제안하는 ‘비독서론’이다. 아니 궁극으로는 진정한 ‘독서 이론’이고자 한다. 

저자가 먼저 문제 삼는 것은 독서와 비독서 사이의 경계이다. 당신은 자기가 읽은 책과 읽지 않은 책을 얼마나 명확하게 구별할 수 있는가? 독서의 실상을 조금만 둘러보아도 그 경계가 모호하다는 걸 알 수 있다. ‘책을 읽었다’는 말이 매우 다양한 수준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 책에서 사용하는 범례를 참고해보면, ‘전혀 접해보지 못한 책’ ‘대충 뒤적거려본 책’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알게 된 책’ ‘읽었지만 내용을 잊어버린 책’ 등이 우리가 저마다 읽은 책의 목록을 구성한다. 엄밀한 독서론의 관점에서 보자면 ‘읽었다고 말할 수 없는 책’ ‘제대로 읽지 않은 책’의 목록이기도 하다. 하지만 ‘제대로’ 읽는다는 건 또 무슨 의미일까? 독서의 과정 자체가 책을 읽어나가는 중에도 이미 앞에서 읽은 것을 망각하기 시작하는 과정일진대 말이다.

책을 잘 알기 위해 한 권도 읽지 않는다?

게다가 이러한 소극적 비독서만 있는 것도 아니다. 무질의 방대한 소설 〈특성 없는 남자〉에 등장하는 도서관 사서를 저자는 예로 드는데 (저자는 ‘대충 뒤적거려본 책’으로 분류한다), 이 사서는 책을 좀더 잘 알기 위해서 일부러 어떤 책도 읽지 않는다. 350만 권에 달하는 장서를 알기 위해서 그가 정한 원칙은 자신이 맡은 모든 책에서 제목과 목차 외에는 절대로 읽지 않는 것이다. 그래야만 ‘총체적 시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책 속으로 코를 들이미는 자는 교양에는 물론이요, 심지어는 독서에도 틀려먹은 사람’이다. 그렇지 않은가? 교양이란 무엇보다도 ‘오리엔테이션’의 문제이며, 저자의 주장대로 중요한 점은 이런저런 책을 읽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 전체 속에서 길을 잃지 않는다는 것일 테니까. 

책의 홍수에 침몰당하지 않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요컨대, 책을 읽는 게 교양이 아니라 책을 읽지 않는 게 교양이다. 한 권을 읽느라고 다른 책 열 권을 놓치게 되는 것이 현실인 상황에서 ‘독서의 기술’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비독서의 전략’이다. 물론 이때의 비독서는 책을 전혀 읽지 않는 ‘무독서’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비독서란 ‘무수히 많은 책 속에서 침몰당하지 않기 위해 그 책들과 체계적으로 관계를 맺고자 하는 하나의 진정한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비독서자는 책에 무관심한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이다. 어떤 책이 다른 책과의 관계 속에 처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책읽기를 스스로 자제하는 사람, 그가 비독서자이다. 

오늘날 천장까지 가득 채우고도 남을 고전의 목록과 매일같이 쏟아지는 신간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교양을 유지해나간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저자의 충고는 이렇다. ‘중요한 것은 책 얘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얘기를 하는 것, 혹은 책들을 통해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이라는 점. 자신이 읽지 않은 많은 책에 대한 얘기를 통해서 정말로 그는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는 곤란한 상황’을 멋지게 돌파하고 있다!

기자명 이현우 (문화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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