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프레시안〉에 제기한 ‘10억원 소송’ 내용이 담긴 소장. 2월29일 〈프레시안〉 측에 전달됐다.
앞으로 삼성 비판 기사를 쓸 때는 ‘10억원쯤은 감당할 수 있다’는 각오를 해야 할 것 같다. 삼성 측이 밑도 끝도 없이 “영업 기밀이므로 밝힐 수 없다”라고 해명을 거부하면 “예, 그렇군요” 하고 순순히 취재를 접는 것도 고민해봐야 한다. 안 그러면 무려 한 달 동안 정정 보도문을 게재하거나, 약속을 이행할 때까지 매일같이 삼성 측 계좌에 500만원씩을 입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냥 ‘최악의 경우’를 상상해본 것이 아니다.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이 최근 겪고 있는 실제 상황이다. 주로 광고와 로비를 통해 언론을 쥐락펴락해왔던 삼성이 이번에는 ‘거액 소송’이라는 수단을 택했다. 지난 2월20일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삼성전자의 수출 운임 과다 지급 의혹’을 보도한 〈프레시안〉에 10억원 손해배상과 정정 보도문 게재를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삼성 측은 소장에서 〈프레시안〉이 추가적인 사실 관계 확인 노력을 하지 않았고, 문제의 기사로 브랜드 이미지 훼손 등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프레시안은 이에 “손해배상액 10억원은 인터넷 신문의 영세한 규모를 감안하면 사실상 폐간하라는 것과 같다”라며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요구’를 한 삼성을 강력 비판하고 나섰다. 언론개혁시민연대·언론노조 등 언론단체도 일제히 성명을 발표하고, 이번 사태를 ‘가난한 언론사에 대한 거대 자본권력의 악의적인 언론 탄압’ ‘삼성이 또다시 최대 광고주라는 지위를 이용해 언론사를 굴복시키려는 사건’으로 규정했다.

'문제 없다'는 중재위 결론도 무시

문제가 된 기사는 〈프레시안〉이 지난해 11월 입수한 관세청 자료를 토대로 했다. 관세청 자료에 나타난 운임과 통상 운임 수준을 비교하면 삼성전자가 2005년 7월 이후 6개월 동안 약 1조3000억원을 삼성전자로지텍(삼성전자 물류 대행기업)에 과다 지급한 의혹이 있으며 이 금액이 비자금으로 쓰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애초 삼성은 ‘영업 기밀’이라며 취재에 전혀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기사가 나가자 뒤늦게 “사실과 다르다”라는 항의와 해명을 쏟아냈고, 이에 〈프레시안〉은 삼성의 주장을 반영해 기사를 수정했다.

하지만 삼성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정정 보도와 사과, 나아가 기사 전체의 삭제를 요구했고 급기야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 보도 신청까지 냈다. 그러나 중재위의 결론은 ‘문제 없다’였다. 2007년 12월21일 열린 조정위원회에서 중재위원들은 “반론을 충분히 수정 기사에 반영했으므로 별도의 정정 보도가 필요하지 않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프레시안〉과 언론단체들이 삼성 측의 거액 소송을 ‘오만하고 치졸한 짓’이라고 분노하는 것은 이렇게 기사 수정부터 중재위 조정까지 ‘피해자’(?)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사실관계 다툼과 관련해서는 ‘삼성 측이 관세청과 국세청에 제출한 자료, 삼성전자와 삼성전자로지텍 간의 거래 내역을 확인해 주면 끝나는 문제’로 보인다.

아마도 삼성의 진짜 속셈은 다른 데 있을 것이다. 기사를 쓴 〈프레시안〉 성현석 기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솔직히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토로했다. “과거 내가 쓴 다른 기사에도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감이 밀려오더라. 이번 소송으로 다른 매체, 특히 영세한 매체 기자가 위축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데스크나 경영진 역시 상당한 압박감을 느낄 것이다. 삼성의 의도가 바로 이런 것 아니겠느냐.” 그뿐만이 아니다. 요즘 성 기자는 반론 자료 작성과 증인 설득 때문에 ‘정상적인 기자 생활’이 어려운 상황이다. ‘무소불위의 권력’ 삼성에 대한 감시는 ‘딱 그만큼’ 느슨해졌다.

기자명 고동우 기자 다른기사 보기 intereds@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