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로텔로콤 제공SK텔레콤은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하면서 IPTV 시장에 뛰어들었다. 위는 IPTV 시연 모습.
지난 3월3일, KT는 재신임을 받은 남중수 사장의 취임 기념 간담회를 직원들에게 생중계했다. 자사의 IPTV 상품인 ‘메가TV’를 통해서였다. 그는 이 자리에서 “방송·통신 융합 시대를 맞아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그룹으로 도약하겠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경기장’ 격인 통신망을 제공하는 구실에만 머무르지 않고 직접 ‘선수’로 뛰겠다는 얘기다. 2008년은 남 사장이 KT 체질개선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선언한 해이자, IPTV 방송이 시작되는 첫해다.

단순하게 말하면, IPTV는 TV로 보는 인터넷방송이다. IPTV 방송국이 방송을 전파가 아닌 인터넷망으로 보내면, 컴퓨터가 아닌 TV에서 곧바로 재생하는 방식이다. TV와 리모컨을 쓰면서도 마치 인터넷을 사용하듯 시청자가 프로그램을 골라 원하는 시간에 볼 수 있다. 지난해 12월 통신업계의 숙원이었던 인터넷멀티미디어사업법(IPTV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업체들의 발걸음이 바빠졌다. KT가 사장 취임식을 IPTV로 중계하는 것은 2010년이면 가입자 500만명 규모로 예상되는 이 시장을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SK텔레콤은 최근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하면서 유선통신 시장에 뛰어들었다. 눈길은 포화 상태에 이른 인터넷 시장보다는 IPTV에 가 있다. 현재 가입자 수가 가장 많은 IPTV 상품 ‘하나TV’가 하나로텔레콤 소유다. LG데이콤 역시 ‘MyLG TV’라는 IPTV 상품으로 시장을 두드리고 있다. 통신 3사는 IPTV 시장이 자리를 잡으면 변덕 심한 초고속 인터넷 가입 고객들을 주저앉히는 효과까지 있으리라고 예상하는 모습이다. 전망은 온통 장밋빛이다.

‘통신망’ 접근권 어디까지?

통신업계는 잔뜩 기대를 걸지만, 상황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주무 부서인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최시중 위원장 후보자의 임명이 늦어지면서 전 직원이 발령조차 받지 못했다. 옛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의 일부가 물리적 ‘결합’은 했지만 화학적 ‘융합’을 이뤄내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방송위와 정통부는 지난 수년간 이어진 방통 융합 논의에서 견해 차를 좁히지 못했던 껄끄러운 과거가 있다.

2월26일에는 ‘IPTV 산업포럼’이라는 제목의 토론회가 열렸다. 방통위로 통합되기 전의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가 함께 후원한 마지막 행사다. 이 토론회는 황금알을 낳는 시장을 맞이하는 흥분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신 느껴지는 것은 팽팽한 신경전과 상호 견제. “그 말씀을 들으니 하늘이 노래집니다.” 토론자로 참가한 포털사이트 ‘다음’ 김철균 부사장의 탄식은 통신업계의 발언에 뒤이어 나왔다. 무슨 사연일까.

ⓒ월간 미디어미래미디어미래연구소가 주최한 ‘IPTV 산업포럼(위)’에서는 ‘통신망 동등 접근권’을 둘러싼 논의가 뜨거웠다.
IPTV 사업자 사이의 최대 화두는 ‘통신망 동등접근권’ 문제다. IPTV 사업을 하려는 이들마다 직접 통신망을 깔아야 한다면 너무나 많은 비용이 드는 데다, 단지 IPTV 사업만을 위해 기간통신 사업자 허가를 따로 받아야 한다. 시장 진입 장벽이 너무 높다. 그래서 IPTV법은 원하는 모든 사업자에게 필수적인 통신망을 제공하도록 한다. 자기 소유의 ‘경기장’이 없다고 해서 ‘선수’가 차별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하지만 ‘필수적인 통신망’이 무엇인지, 제공을 거절할 수 있는 ‘정당한 사유’가 무엇인지는 시행령으로 미뤄두어 논란의 여지가 크다.

통신업계는 반발한다. 통신망을 깔고 유지하는 데 매년 수천 억원을 쏟아 붓는 투자를 무시하는 처사라는 것.  KT는 동등접근 원칙은 인정하더라도 시행령에서는 “신규 설비에 대해 ‘유예’를 두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다른 사업자로부터 통신망 사용료를 받는 것보다는 신규 설비를 배타적으로 사용하기를 더 원한다는 얘기다.

IPTV 사업은 속도와 안정성이 모두 탁월한 이른바 ‘프리미엄급’ 통신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전송할 데이터의 용량이 거대한 데다, 인터넷과 달리 방송은 3초만 끊겨도 ‘방송사고’라는 점이 문제다. 이런 ‘프리미엄급’ 통신망은 신규 설비일 수밖에 없다.

통신망을 갖지 않은 회사 가운데 최초로 IPTV 사업 진출을 선언한 ‘다음’이 이 논의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도 그래서다. 신규 설비는 예외로 하자는 KT의 제안이 받아들여지면, 직접 ‘프리미엄급’ 통신망을 깔 능력이 되지 않는 사업자들은 시장 진입조차 힘들어진다. 서울산업대 최성진 교수(매체공학)는 “전용차로는 자기만 쓰고 비포장도로만 개방하겠다는 것”이라고 KT의 제안을 비판했다. 통신시장에서의 독점 지위를 방통 융합 시장에까지 이어가겠다는 주장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유통자 중심 독점 구조의 폐해

최 교수는 “정보통신부가 그동안 거대 통신업계의 독과점을 두둔해왔다”라며 사실상 정통부를 기반으로 조직이 꾸려진 방통위에도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실제로 26일 토론회에서 정통부를 대표해 나온 김승모 서기관은 “망 개방을 무차별로 하거나 지나친 수준으로 하게 되면 투자 유인을 저해하고 망 없는 사업자의 무임승차가 발생한다”라고 말해 통신업계의 주장을 대변했다.

통신업계의 독과점이 방통 융합 환경에까지 이어지면 콘텐츠 산업이 더욱 취약해질 것이라는 걱정도 나온다. 그동안에도 당장 성과가 눈에 보이는 통신산업 위주로 정보통신 정책이 구성되다 보니 정작 통신망에 유통시킬 콘텐츠 산업이 죽어버렸다는 게 미디어 업계의 평가다.

최성진 교수는 “독점의 주체가 누구든, 유통업자가 생산자에게 지배력을 행사하는 구조가 문제다”라고 짚었다. 방통 융합 시장에서는 콘텐츠 품질이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는 사실 이견이 없다. 따라서 시장에서의 성과가 콘텐츠 산업으로 최대한 흘러가도록 만드는 시장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유통자 중심의 독점 구조는 콘텐츠 생산자를 독려하기보다는 쥐어짜게 될 위험이 높다. “대형 마트가 영세 생산자를 지배하는 구조나 마찬가지가 될 수 있다. 생산자가 말라죽으면 시청자의 볼 권리 역시 위협받는다”라는 전국언론노동조합 신삼수 정책실장의 지적은 방통 융합 시장을 준비하는 모든 사업자가 새겨들을 만하다.

기자명 천관율 수습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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