팡테옹 뒤편에 있는 조르조 교수의 집을 찾아 내 손에는 마침 2007년 말월에 출간된 아감벤 교수의 〈왕국과 영광〉에 대한 안토니오 네그리의 서평이 실린 서평지가 들려 있었다. 대화는 서평을 실마리 삼아 시작되었다.
 

당신은 네그리와 함께 지금 세계 지성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고, 논의되고 있다. 관계를 물어도 되는가.
네그리와 나는, 아주 가까운 친구이다. 하지만 사상적 입장은 전혀 다르다. 나는 네그리가 말하는 자본주의라는 것이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하는지 의구심을 갖고 있다. 자본주의와 관련된 네그리 이야기 중 내가 가장 공감하는 테제는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의 핵심이다’라는 말 정도이다. 내 생각의 수용과 관련해 최근 참으로 재미있는 일을 여럿 겪었다. 어제는 독일의 한 프란체스코회 수사가 찾아왔는데, 벤야민과 나의 종말론에 관한 빼어난 논문으로 박사 논문을 완성했더라. 물론 이곳 프랑스에서는 나를 전혀 다른 맥락에서 보지만.

〈호모 사케르〉를 읽다 보면 푸코와 관련해 미묘한 차이를 느끼는데, 독일어본을 보면 당신이 푸코에 대해 조금 비판스러운 태도를 갖는 듯 보이는 반면, 영어본에서는 푸코의 말기 사상의 흐름에 속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비판적이라…. 전혀 그렇지 않다. 번역본들이 여러 모로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점은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nuda vita’(벌거벗은 생명)를 영어본은 ‘naked life’ 또는 ‘bare life’로 옮기고 있는데, 전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벤야민도 쓰고 있듯이) ‘mere life’에 가깝다. 푸코의 경우 어떤 푸코냐가 문제일 텐데, 적어도 푸코가 ‘법’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점은 사실이다. 하지만 말년에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강연할 때의 푸코는 이 문제에 가장 가까이 접근하기도 했다. 그가 통치와 주권을 이야기하면서 법 또는 법치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까닭은 반드시 밝혀야 할 핵심 과제이다.

당신의 사상의 형성에 있어서는 하이데거와 벤야민의 만남도 빼놓을 수 없을 텐데.   
두 사람은 분명히 대학 시절부터 서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의 이력을 대조해보면 명확하다. 물론 하이데거는 강사 신분이고 벤야민은 운동권의 팸플릿을 돌리고 있었겠지만 말이다. 하이데거 선생께 직접 여쭈어봤더니 ‘기억이 없다’고 대답했지만 강한 부정은 아니었다. 하이데거 선생은 카프카에 대해서도 똑같은 태도를 보였는데, 나중에 아렌트 말로는 자기가 카프카 책을 잔뜩 갖다 드렸으니 분명히 읽었을 것이라고 하더라(웃음).

2001년의 9?11 테러와 함께 서구 지성계에서 급부상한 사상가를 두 명 꼽으라면 단연 ‘제국’과 ‘다중’이라는 다분히 논쟁적인 개념을 제시한 안토니오 네그리와 ‘호모 사케르’라는 독특한 정치철학 개념을 제출한 조르조 아감벤을 꼽을 수 있다. 물론 두 사상가 모두 이전부터 활발히 저작을 발표해오고 있었으나 9?11테러는 ‘잠에서 깨보니 유명해져 있더라’라는 바이런의 말처럼 두 사람을 일약 서구 지성계의 신데렐라로 등장시켰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이 두 사상가가 모두 미국이라는 자본의 제국, 프랑스와 독일이라는 사상의 제국과는 전혀 거리가 멀면서도 두 제국의 중심 자장에 놓인 이탈리아 출신이라는 점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이 두 사상가는 ‘제헌 권력’ ‘생명 정치’ 따위 몇 가지 핵심 개념을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일부 좌파는 두 사람을 한데 묶어 좌파적 상상력의 새로운 출구를 모색하려 하지만 두 사람이 공유하는 것은 그러한 개념어일 뿐 그들이 각자 개념에 부여하는 위상학적 위치는 180도 다르다. 왜냐하면 네그리가 여전히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과 새로운 주체(‘다중’)의 창출이라는 좌파 정치학의 틀 안에 있다면, 아감벤은 근본적으로는 하이데거에 대한 정치 독해를 축으로 벤야민과 독일의 문제적 법철학자인 슈미트에 대한 비판 독해를 개념적 성좌로 갖기 때문이다.

〈호모 사케르〉 1권의 제목인 ‘주권 권력과 벌거벗은 생명’에서 그러한 영향사를 직감할 수 있다. ‘주권’에 관해서라면 아무래도 칼 슈미트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으며, 생명과 이어지는 ‘권력’ 문제라면 1970년대 말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한 푸코의 말년 강의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벌거벗은 생명’ 하면 신칸트 학파의 헤르만 코헨으로부터 시작해 존재(Sein)와 단순한 존재자들(Seiende)을 대립시키는 하이데거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영향사는 아감벤의 개인 이력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기도 하다.

곧 번역될 아감벤의 〈장치란 무엇인가〉.
그는 프랑스의 노동자이자 철학자인 시몬 베유의 정치사상을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작성했으나 그가 본격적으로 공부한 것은 독일 법철학이었다. 그는 모라비아 같은 전위적 문학 서클과 교류하는 한편 파솔리니의 영화에 사도 빌립보로 얼굴을 내밀기도 했다. 이어 벤야민을 발견하게 된 그는 그 유명한 이탈리아 벤야민 전집 편집자로 일을 하지만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그가 찾아낸 〈아케이드 프로젝트〉의 원고 편집 문제와 관련된 격렬한 논쟁 뒤에 출판사와 결별하게 된다. 그것은 단순히 편집상 문제만은 아니었다.

만약 그가 발굴한 원고 그대로 편집하게 된다면 벤야민은 (아도르노를 중심으로 한) 프랑크푸르트 학파(그리고 유대적 해석을 대표하는 친구 숄렘)와 결별하고 (슈미트와 칸토로비츠가 대변하는) ‘정치 신학적 흐름’으로 편입될 일대 지성사적 사건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프랑크푸르트 학파도 좌파 해석가들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이데거에서 출발한 다채로운 지적 횡단

하지만 그의 이처럼 다채로운 지적 횡단 중에서도 가장 이채롭고 결정적인 것은 하이데거와의 만남이었다. 1966~1969년 하이데거가 프랑스 남부의 한 수도원에서 은거한 채 동학 10명과 함께 헤겔과 헤라클레이토스를 주제로 한 세미나를 연 것은 이미 전설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는 이 세미나 명단에서 아감벤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아감벤의 가장 빼어난 저서로 꼽히는 소책자로, 그의 전체 개념틀 또는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언어와 죽음〉은 바로 이 세미나 경험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했다.

처음으로 번역된 〈호모 사케르Ⅰ〉.
이런 의미에서 연구 공동체인 ‘수유 너머’의 하이데거 세미나 안내문 중 하이데거의 영향 면에서 “아감벤이 부분적이라면, 아감벤이 크게 기대는 아렌트는 전면적으로 하이데거에 기대고 있으며”라는 부분은 정확히 정반대로 읽어야 할 것이다. 즉 아감벤이야말로 가장 뛰어난 하이데거 해석자이며, 동시에 아렌트의 정치철학에 맞선다고 말이다. 이는 ‘벌거벗은 생명’이라는 이탈리아어 ‘nuda vita’가 ‘vita activa’라는 아렌트의 핵심 개념을 풍자적으로 겨냥한 것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푸코는 ‘대감금’을 이야기하지만 20세기 수용소에 대해서는 침묵하며,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을 탐구하지만 막상 ‘정치철학’을 결여하고 있다는 그의 진단에서도 확인된다.

아마 이러한 의미에서 그를 20세기 사상사의 살아 있는 화신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하다. ‘정치-생명-권력’이라는 삼각형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철학을 구축하는 아감벤의 작업에 전세계 지성의 관심이 모이는 것은, 바로 그것이 민주주의가 일상화한 테러로 대체되고 생명이 정치 권력과 과학의 핵심으로 등장하는 21세기의 시대적 과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기자명 조형준 (새물결출판사 편집주간)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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