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한향란강민휘씨(위)는 모든 어린이에게 꿈이 있다고 말한다.
유니세프(Unicef·국제연합 아동기금) 본부의 한국인 직원은 9명이다. 그 중 한 나라 지역사무소에 대표로 파견된 사람은 강민휘씨가 유일하다. 국제 무대에서 아동 인권 보호를 위해 움직이느라 늘 바쁜 강씨는 한국에 머무르는 시간이 1년에 2주일이 채 안 된다. 그가 부모님을 만나기 위해 잠시 들른 한국에서 〈시사IN〉에 소중한 시간을 내주었다. 강씨는 한국이 경제 규모에 맞게 적극 해외 원조를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아프리카 서부에는 ‘감비아’라는 인구 169만명의 작은 공화국이 있다. 이 나라 인구의 70~80%는 1달러 미만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이곳에서 태어나는 아이는 살아남을 권리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 그러나 서울에서 출생하는 아이처럼 성장하고 꿈을 실현할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유니세프 감비아 사무소 대표 강민휘씨(40)의 말이다.

강씨는 지난해 9월부터 감비아에서 활동하며 ‘도시아동 친화사업’에 앞장선다. 아이들이 잘살 수 있는 곳이 바로 어른도 잘살 수 있는 곳이라는 판단에서다. 그는 국토 개발을 위한 감비아 장·차관급 회의에 참석한다. 아이들이 많은 지역에 도로·수도 공사가 우선 진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아동 인구에 관한 자료를 제시하고, 관료를 설득하는 것이 그의 업무다.

앞서 실시한 ‘여자아이 학교 보내기 운동’은 이미 큰 성과를 거두었다. 유니세프에서는 어린이 인권이 보호받기 위해서는 여성 교육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본다. 어머니는 아이의 1차 보호자이자 선생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감비아처럼 개발이 미비한 지역에서는 가사노동을 위해 여자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국도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유니세프에서 적극 원조를 받던 나라였다. 1993년까지 남아 있던 한국의 유니세프 사무소는 1994년 유니세프 위원회로 승격되었다. ‘수혜국’에서 ‘원조국’으로 도약한 것. 이러한 발전은 몇 안 되는 사례라고 한다. 그래서 한국은 유니세프가 이루고자 하는 이상적인 목표를 가장 잘 달성한 나라로 꼽힌다. 강민휘씨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선임된 것도 유엔과 유니세프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한국이라는 나라 출신인 점이 내부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덕이 크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강씨는 국내총생산(GDP)의 0.05%에 지나지 않은 한국의 해외원조기금 분담률을 생각하면 부끄럽다. 일반적 분담 기준인 국민소득의 0.7%를 크게 밑도는 수치이기 때문이다. 강민휘씨는 한국이 그동안 소극적인 지원국의 위치에 있었지만 경제 규모에 맞게 적극 해외원조를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국제기구 근무, 기대와 다르다

강씨는 2003년부터 유니세프에서 근무 중이다. 5년 동안 뉴욕 본부에서 활동했고, 감비아가 첫 현장 발령지다. 그는 이화여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파리에서 유학하던 중 외교부의 ‘젊은인재 등용프로그램’에 지원해 국제기구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그는 여성의 사회 진출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국제 노동기구(ILO)에 지원했다. ILO 제네바 본부에서 2년간 근무했다.

다음에 찾아간 곳은 동티모르였다. 민간인 UN 직원 신분으로 평화 유지 사업에 참여했다. 비좁은 콘테이너에서 생활하면서도 그는 스스로의 결정을 후회한 적이 없었다. 걱정이 있다면 일을 못해 동티모르 주민에게 원활한 도움을 주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뿐이었다. 그는 “동티모르에서 일하면서 내가 평생 할 일은 바로 이것, 세계 곳곳의 소외된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고 깨달았다”라고 말했다.

유니세프 지역사무소 대표라는 강민휘씨의 직함은 겉으로 화려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소의 소변을 받아 세수를 해야 할 정도로 낙후한 지역에서 직접 현장 일을 도와야 하는 처지이기도 하다. 그는 “국제기구에서 일하고자 하는 한국인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그러나 뉴욕이나 제네바에서 일하는 환상만을 좇는 이들도 있다”라고 걱정했다.

기자명 박근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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