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참여정부 들어 국방부와 공군은 창군 이래 최대 규모인 12조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한국형 전투기 개발 사업(이하 KFX 사업)을 추진해왔다. 2007년부터 KFX 연구개발에 착수해 2018년까지는 자체 개발한 첨단 국산 전투기가 영공을 지킬 수 있게 한다는 야심찬 사업이다. 초음속 전투기인 KFX 기종은 정밀 타격 미사일, 스텔스 기능까지 갖추고 F-15K와 같이 한반도 전역을 작전 지역 목표로 잡았다. 이를 위해 총 12조원대의 국가 예산을 투입한다는 내용이다.

KFX 개발 사업이 처음으로 윤곽을 드러낸 때는 참여 정부 초기인 2003년 9월,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장에서였다. 김대욱 당시 공군참모총장은 여야 의원에게 KFX 개발 사업에 대해 “현재 공군이 보유한 F-4 및 F-5 등 노후 항공기 도태에 따른 전력 공백을 방지하고, 공군 주력 기종으로 운영 중인 F-16보다 우수한 성능의 국산 전투기를 개발하는 사업이다”라고 운을 떼었다.

그는 이어 “2004년부터 개념 연구를 시작해 탐색 개발 4년, 체계 개발 7년이 지나 2017년 경이면 한국형 전투기를 실전 배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라고 부연 설명했다. 공군은 내친김에 합참에 KFX 사업 필요성 소요를 제기했고, 2004년에는 ADD에  설계기술 연구를 의뢰해 현재 연구가 진행 중이다. 탐색 개발 기간에 들어가는 비용만도 1800억원대에 이른다.

KFX 사업계획이 발표되자 산자부와 국방과학연구소 등이 미래 성장동력 사업이라는 이유로 힘을 실었다. 이 사업에 참여할 국내 항공 산업계에서도 ‘포니 신화’ ‘조선산업 신화’를 항공 분야에서도 재현하게 되었다며 반겼다.

KFX 사업 좌초 위기는 과거 공군의 '업보'

이런 장밋빛 매머드 국책 사업에  최근 빨간불이 켜졌다. 방위사업청으로부터 연구 용역을 받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해 12월 말 청와대에 비밀 문건을 올리면서였다. KDI 보고서 내용은 “KFX 사업에 10조원대 예산을 투자할 때 미치는 경제 파급 효과는 3조원 미만으로 지극히 미미하다”라는 요지였다. 사실상 ‘경제성 없음’이라는 딱지를 붙인 것이다.

공군이 120여 대의 수요를 희망하면서 탄력을 받은 KFX 개발 사업이 암초를 만난 것은 기술 이전을 무기로 한국과 공동개발에 참여할 해외 업체들의 과도한 개발비 요구하면서부터였다. 그동안 미국 보잉과 록히드 마틴 사, 유럽의 EADS, 스웨덴 사브 사 등이 KFX 사업 공동 사업자로 계획 단계에서부터 참여했다. 이들 업체가 초기 개발비로 제시한 금액은 한국 정부가 추산한 KFX 사업 초기 예산을 서너 배 초과해 실제 전투기 양산 무렵이 되면 30조원이 넘게 들어갈 것이라는 염려마저 나왔다.

“공군이 첫 단추를 잘못 끼워 한국형 전투기 개발 사업은 오도가도 못할 처지가 됐다”. 군사 평론가인 김성전 예비역 공군 중령은 KFX 사업의 현재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KFX 사업은 오랜 세월 공군의 숙원이었을 뿐 아니라 한국 항공우주 관련 산업계에서도 군수용 첨단기술을 민수용에 접목해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집착해온 분야다.

그동안 KFX 사업에 가장 적극적인 쪽은 한국국방과학연구소였다. ADD는 항공산업 발전, 국산 항공 무장력 개발, 핵심 기술 확보라는 3가지 측면에서 KFX 개발 사업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뉴시스지난 1월8일 대통령직 인수위에 업무 보고를 하기 전 인수위원과 인사하는 방위사업청 관계자.
한국형 전투기 개발한 뒤 또 미국제 산다?

하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수출을 전제한 KFX 기종 개발과 양산, 그리고 막대한 예산 투자가 애초부터 비현실적이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아무리 고비용이 투입되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효과를 가져올 항공산업 발전이라든지 핵심 첨단기술을 확보한다면 상황이 다를 수도 있다. KFX 개발사업 추진 주체인 공군 쪽에서는 그동안 “초음속 고등 훈련기(T-50)를 자체 개발한 노하우에 FX 사업 당시 보잉 사로부터 이전받은 기술을 합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지난 2002년 한국의 FX 기종으로 선정된 보잉 사는 F-15K 전투기를 넘길 당시 27개 분야 기술 이전을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시험평가 기술 따위와 같은 주변 기술을 제외하고 비행 제어, 무장 제어 등 핵심 기술은 이전을 외면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무기수출금지법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전투기 개발에서 비행제어 시스템은 인체로 따지면 두뇌에 해당하는 최첨단 기술이다. 지금껏 한국은 이 기술 국산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이미 개발한 국산 훈련기 T-50의 경우도 비행 제어 부분만은 록히드 마틴 사가 꼭 움켜쥐고 넘겨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군의 기존 항공기 개발사업이 잘못돼 KFX 사업에 이르러 미래 항공산업 발전과 공군 전략증강을 방해한다는 볼멘소리도 그래서 나온다. 흔히 항공산업은 정밀기계, 정밀전자, 신소재 등 첨단 산업의 기술 혁신을 주도하고 자동차 전자 소재산업 등에도 파급 효과가 큰 특징을 가진다. 그러나 한국의 항공산업은 그런 파급 효과 없이 단발성으로 과잉 중복 투자했다가 기술 연계성 없이 사장하는 특징을 보여왔다.

초등 훈련기(KT-1, 일명 웅비 사업)와 T-50 훈련기 개발 당시에 이미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1990년대에 추진된 KT-1 초등 훈련기사업의 경우 당시 브라질의 투칸과 스위스의 PS-9가 한국에 기술이전 생산을 제의했다. 이때 공군은 기술 도입 가격을 브라질보다 비싸게 부른 스위스와 손잡았는데 이는 스위스제 PS-9가 브라질 투칸에 비해 엔진 출력이 높아 기술 습득에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결과였다.

그러나 막상 공동 개발을 해놓고 보니 엔진 출력이 높아 KT-1은 훈련기로 부적합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결국 공군은 다른 훈련 비행기로 러시아에서 IL-2(현재 T-140기)를 도입해 청주 공군비행장 212 대대에 배치해 현재까지 운용 중이다. 과잉 중복 투자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한때 KFX 사업 개발 모델이었던 미국 F-18 슈퍼호넷(왼쪽) .KFX 사업 변형 모델로 주목되는 스웨덴 그리펜 경전투기(오른쪽).
이후 벌인 KT-2 사업에서는 초음속 고등 훈련기 개발을 목표로 막대한 비용을 들여 T-50 훈련기를 생산했다. 투자 대비 비용 문제 때문에 손익분기점을 맞추기 힘들었다. 결국 적정 대수를 양산해 비용을 보상해준다는 뜻에서 A-50 사업까지 연계해주는 방향을 택했다. 항공산업의 비효율 구조라는 악순환이 되풀이된 것이다.

그러면 한국 공군 자주국방과 21세기 성장동력이 될 항공산업 핵심 기술을 겨냥한 KFX 사업은 이대로 접어야 하는가. 대다수 전문가는 독자 전투기 기술 개발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견해이다. 다만 현 시점에서는 엄청난 비용이 투입되는 전투기 양산 개념으로 갈 것이 아니라 해외에서 도입한 첨단 전투기 성능을 개량해 업그레이드하는 기술 축적 방향으로 항공산업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오랫동안 첨단 전투기 자체 개발에 열을 올렸던 일본과 이스라엘의 동향은 좋은 반면교사가 될 만하다. 두 나라는 냉전체제 종식 이후 자체 전투기 양산 보급에서 손을 뗐다.

일본은 JF-1, JF-2로 불리는 차세대 전투기 개발사업에 박차를 가하다가 미공군의 차세대 전투기인 F-22 기종을 도입하려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이스라엘은 독자 전투기 개발 대신 수입 전투기에 항공 무장 분야를 집중 독자 개발해 운용하는 방식으로 공군 전력을 강화해왔다. 

각국이 출혈 경쟁을 벌이는 고부가가치 노동집약 산업이지만 개발비가 막대해 자국 공군 수요만을 위해 겨냥해선 타산이 맞지 않는다. 지난 2002년 미국의 보잉 사의 F-15와 프랑스 닷소 사의 라팔 기종, 유럽 5개국 컨소시엄의 유로파이터 기종, 러시아의 SU 기종이 한국 시장을 무대로 치열한 로비를 벌였던 이유도 막대한 개발비를 보전하기 위한 때문이라 볼 수 있다. 결국 라팔 기종은 한국 판매에 실패해 개발비를 감당 못해 사업을 중단할 처지에 놓였고, 유러파이터 기종은 공동 컨소시엄으로 참여해 개발한 유럽 5개국의 공군이 수요를 받쳐줘 그나마 명맥을 이어가는 형편이다.

바로 이같은 이유로 전투기 자체 개발과 양산 사업을 추진하다 방향을 전환한 일본은 미국제 첨단 차세대 전투기를 도입한 후 성능을 개량하는 방식으로 항공산업 방향을 선회했다. 껍데기를 미국에서 사와 성능이 전혀 다른 전투기로 바꾸는 것이다.

미국이 영국·이스라엘·일본 등과 공동 개발하는 F-35B 차세대 전투기(왼쪽). FA-50으로 발돋움하는 국산 T-50 고등 훈련기(오른쪽).
싱가포르의 경우는 아예 독자 전투기 개발을 시도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자국이 도입한 미국과 유럽제 전투기의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한 뒤 이를 수출해 항공산업을 유지 발전시키고 있다.

결국 현행 KFX 사업은 한국 공군만 사용할 전투기를 개발하면서 개발비에만 10조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써야 하느냐는 근본적인 의문에 부닥친 꼴이다. KFX 사업이 순항해 한국형 전투기 양산 체제에 들어간다 해도 실전 배치될 수 있는 시기는 2018년을 넘길 텐데 그때가 되면 새로운 문제를 만난다. 과연 10여 년 뒤 미래 한국 공군의 전력을 철지난 F-16 성능 수준인 KFX 기종으로만 가져가야 하냐는 문제가 다시 떠오르는 것이다. 그 시점에는 각국의 공군 전력이 대부분 차세대 최첨단 전투기인 F-35나 F-22 기종으로 바뀔 전망이어서 영공 방어에 큰 허점이 발생할 것이라는 염려도 나온다. 결국 KFX 전투기가 나올 시점에 가서 또다시 다음 세대 첨단 전투기를 해외에서 도입한다면 과잉 중복 투자 논란에 휩싸일 게 뻔하다.

현재 주변 각국의 차세대 전투기 대안으로는 F-35와 F-22가 꼽힌다. 이 가운데 F-22 기종은 미군의 차세대 주력 전투기로 오직 미국 공군만 보유한다는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대신 미국은 우방국에 F-35를 공급하겠다는 방침이다. 미국의 대외 수출용 차세대 전투기인 F-35 기종은 개발 과정부터 미국 해군, 공군, 해병대, 영국 해군 등이 참여해 2000대 이상 물량를 확보했다. 이후 일본과 이스라엘, 터키 등도 공동 개발에 참여해 선주문해둔 상태다. 이 기종은 한국의 KFX 사업이 예정대로 추진된다면 국산 전투기가 공군에 보급될 시점인 2018년 이후 주요 우방 공군에 한 세대 앞선 주력 기종으로 실전 배치될 전망이다.

미국 군수산업의 '봉' 노릇 그만둬야

한국은 국제정치 역학 관계 측면에서 선택 폭이 넓지 않아 기종 결정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러시아와 중국 처지에서 볼 때 한국이 초고속 미제 최첨단 전투기를 도입할 경우 정치 외교에서 강력한 경계 대상이다. 가격을 떠나 한국이 아무리 F-22와 같은 최신형 전투기 도입을 원해도 미국은 주변 4강의 경계심 때문에 한국에는 초고속 전투기를 팔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런 실정이어서 KFX 사업을 전면 중단하고 그 예산으로 초고속 첨단 전투기를 들여오자고 주장하거나, 열등기를 갖는 걸 한국의 숙명으로 받아들여 계속 들여오자는 친미 사대 주장 모두 문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KFX 사업은 미래 국가전략 목표 차원에서 전면 수술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KFX 사업 자체를 폐지하기 보다는 축소 보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KFX 개발 사업을 변경할 경우 그 대안으로 거론되는 기체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A-50 경전투기이다. 이 기종은 T-50 고등 훈련기를 개량한 전투기로 고등 훈련기-〉전술 입문기-〉경공격기-〉경전투기로 진화해왔다. 현재 A-50은 탑재할 전자 레이더 장비에 대한 미국 정부의 승인이 이뤄지지 않아 사업이 1년 연기된 상태이다. 당초 핵심 기술을 가진 미국 록히드 마틴이 T-50 공동 개발에 참여했지만 미국 정부가 무기 장착과 레이더 등 핵심 기술은 자국의 무기수출통제법으로 묶어둬 우리가 양산하더라도 제3국 수출은 불가능하며, 비행 제어 등 일부 핵심 기술은 지금도 국내 기술진의 접근이 제한돼 있다. A-50은 전자 레이더 장착 문제가 해결되는 대로 개발이 재개될 예정으로 2015년 무렵이면 양산이 완료되어 공군에 60대가 배치될 전망이다.

2002년 FX 1차 사업 당시 공군 시험평가 책임자를 맡아 기술 도입을 중시하는 기종 결정을 주장하며 양심선언을 했다가 구속된 조주형 전 대령도 기로에 선 KFX 사업의 진로에 대해 ‘A-50 경전투기의 업그레이드’가 가장 현실적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한때 고등 훈련기 사업처장을 지내기도 했던 그는 향후 KFX 사업 방향을 중형 전투기 기술 개발과 양산으로 변경하면 10조원 이상 막대한 비용을 들이지도 않고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미 국산 전투기로 개발해둔 T-50과 A-50 기종의 성능을 업그레이드해 스웨덴 그리펜 경전투기처럼 개량하자는 제안이다(인터뷰 참조). 여기에 FX 2차 사업 대신 차세대 전투기로 F-35와 같은 기종을 도입해 ‘작고 강한 공군’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이다.

새로 들어선 이명박 정부가 한미 동맹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면 결국 미국 군수산업의 ‘봉’으로 전락할 염려가 크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북한 핵 위협에 대비해 첨단 전투기와 고성능 지상군 무기를 대량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보수 세력 일각에 포위된 탓이다. 그런 점에서 당장 차세대 전투기 추가 도입이나 KFX 사업으로 첨단 전투기를 개발하는 일보다 정부가 속히 북한과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일이 급선무다. 북한의 위협을 줄이면 오히려 줄어든 군비를 첨단과학 군사력 증강 부문에 투입해 작고 강한 군대를 만드는 데도 효율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 위기 상황에 대비해 군사력 전환 능력(동원)을 갖추는 길을 택할지 안보 지상주의에 매몰돼 병영국가 체제를 지향할지 이명박 정부의 선택이 주목된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