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대통령직 인수위 앞에서 시위하던 대학생이 경찰에 강제 연행되고 있다.
지난 2월25일 대통령 취임식이 있던 날 아침, 여의도 증권거래소 앞을 갑자기 전경들이 에워쌌다. 그 앞에서 천막농성 중이던 코스콤 비정규직 노동자를 겨냥한 것이었다. 그들은 꼼짝없이 감금된 신세가 되어 화장실조차 갈 수 없었다. 당황한 코스콤 노동자들은 풀어달라고 항의했다. 그러나 경찰은 “대통령 취임식이 끝나지 않아 나갈 수 없다”라고 대답할 뿐이었다. 전경들은 취임식이 모두 끝난 뒤에야 자진 철수했다.

전국증권산업노동조합 코스콤비정규지부 대외협력국장 김유식씨는 이날 경찰의 행동을 ‘오버’라고 정리했다. 그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던 우리를 가둔 것은 정말 오버다. 요즘 경찰이 먼저 나서서 눈에 띄는 행동을 하려는 경향이 있다”라고 비판했다.

경찰의 ‘과도한’ 대응은 지난 2월18일 삼청동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앞에서도 나타났다. ‘대학 등록금 인하’를 요구하던 전국대학생교육대책위원회 소속 대학생 27명이 종로경찰서로 연행된 것이다. 27명을 연행하는 데 동원된 경찰병력은  대학생 수의 10배가 넘는 300여 명이었다. 여학생의 경우 여성 경찰이 3~4명으로 조를 짜 한 사람씩 강제 연행했다. 일부 남학생은 경찰 5~6명이 팔과 다리를 들어 경찰 버스에 실었다. 마치 1980년대 초 학내에 진입한 ‘백골단’의 대학생 연행 장면을 연상시켰다.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경찰의 ‘과잉 진압’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 대통령 "경찰 매 맞는 모습 보이지 마라"

당시 경찰에 연행되었던 경희대 국제경영학과 김병철씨(26)는 “경찰의 행동이 그저 황당할 뿐이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대학생 시위대가 계획한 행동은 등록금 동결과 이명박 당선자 면담을 요구하는 낭독문을 읽는 것 정도였다. 이후 농성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에게 경찰은 연행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김씨는 “경고를 듣고 해산하겠다는 의사를 경찰에 분명히 전달했고, 경찰도 알았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잠시 뒤 예상치 못했던 강제 연행이 시작됐다. 날마다 각종 시위가 끊이지 않던 삼청동 인수위 앞에서 시위대가 경찰에 연행된 것은 이례적이었다.

경찰은 별다른 움직임 없이 천막 농성 중이던 코스콤 노동자(위)를 대통령 취임식 내내 엄격하게 통제했다.
경찰이 이처럼 눈에 띄게 ‘과잉 대응’을 펼치는 까닭은 새 정부 출범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월1일 신년사에서 “대한민국 선진화는 법과 질서를 지키는 것에서 시작하자. 떼법·정서법이라는 말도 우리 사전에서 지워버리자”라고 강조했다. ‘무관용’ 원칙을 실천하겠다는 의미였다. 이 말은 지난 2월11일 새로 취임한 어청수 경찰청장의 입에서 다시 나왔다. 어 청장은 취임사에서 “우리 사회의 기본이자 원칙인 법질서를 바로세우겠다. ‘떼법?정서법’이 용인되는 사회 풍토를 고쳐야겠다”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어청수 경찰청장이 ‘법질서 확립’을 키워드로 새 정부와 ‘코드 맞추기’를 시도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경찰의 움직임이 단지 새 정부와 코드를 맞추는 정도로만 진행된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새 정부의 ‘보수적’ 코드에  경찰의 ‘솔선수범’이 더해져 우리 사회에 새로운 ‘공안’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점이다. 한국진보연대는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다가올 공안 정국을 미리 보여주고 있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경찰이 가장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는 분야는 단연 ‘시위 진압’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전 어청수 신임 경찰청장을 만난 자리에서 ‘경찰이 (시위대에게) 절대로 매 맞는 모습을 보이지 말라’고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어 청장은 취임사에서 “불법·폭력시위에 대해서는 법과 질서에 따라 엄정하게 책임을 묻겠다”라고 말하며 대통령과 뜻을 맞췄다.

경찰 '불법, 폭력 집회 대응 매뉴얼'로 맞장구

최근 경찰청이 법질서확립 태스크포스를 조직해 ‘불법·폭력 집회 대응 매뉴얼’을 만드는 모습에서도 경찰의 변화된 태도를 짐작할 수 있다. 이 매뉴얼에 폴리스라인 구획과 위반자 검거, 전자충격기 사용, 불법 시위대 체포조 운용 등 강경하고 적극적인 시위 진압 정책이 포함될 조짐이기 때문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매뉴얼에 대해 언급하는 걸 조심스러워하며 “시위대의 행위 정황에 따라 단계별로 물리력을 사용하는 기준을 마련하고는 있다”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의견을 수렴해 초안을 잡아가는 단계다. 시위대에 강경한 태도를 취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산발적이던 대응 방식을 체계화해 원칙에 따라 정확히 적용하겠다는 뜻이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하는’ 이들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민주노총 우문숙 대변인은 “법과 원칙을 지킨다는 경찰의 말은 옳지만, 이는 결국 시위를 거세게 탄압하겠다는 소리와 마찬가지다”라고 주장한다. 시위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시민이 누리는 당연한 권리이지만 한국에서는 ‘악법’으로 인해 이를 억압당한다는 것이다.

매뉴얼을 만드는 과정의 의견 수렴 절차에 대해서도 논란이 인다. 지난 2006년 경찰청은 집회시위 관련 태스크포스를 꾸려 공청회를 열었다. 당시 경찰은 여론을 수렴하겠다며 민주노총 측 담당자를 토론자로 초청했다. 하지만 이 공청회에 참석했던 민주노총 관계자는 요구사항조차 제출하지 못할 정도로 폐쇄적인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경찰청은 지금 작성 중인 ‘불법·폭력집회 대응 매뉴얼’에 어떻게 각계의 의견을 받아들일지 ‘아직 확정하지 않은 상태’라는 견해일 뿐이다.

ⓒ뉴시스지난 2월22일 대구지방경찰청은 ‘기마 경찰’(위)을 앞세워 기초질서 확립 캠페인을 벌였다.
이런 ‘중앙’의 분위기는 ‘전국’으로 확산 중이다. 지난 2월22일 대구에서는 제복을 입고 말을 탄 ‘기마경찰대’가 등장했다. 대구지방경찰청 소속인 이들은 ‘법과 원칙이 바로서는 사회를 위한 기초질서 확립 캠페인’을 진행한다며 경찰, 시민단체 회원 150여 명과 종각네거리, 2·28공원 일대를 행진했다. 26일에는 직원 300여 명이 참여한 ‘법질서 확립을 위한 결의대회’도 개최했다. 대구지방청은 이 자리에서 ‘법질서를 바로세워 경제 살리기와 국민 성공시대를 선도하는 주역의 역할을 다짐했다’고 밝혔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이 강조해온 내용이기도 하다.

김남성 전남지방경찰청장은 2월27일 일선 경찰에게 ‘법질서 확립을 위한 편지’를 썼다. 편지에는 ‘새롭게 들어선 정부에서는 기초질서, 교통질서, 공권력 확립, 평화적 집회·시위문화 정착 등 그 어느 때보다 법질서 확립을 강조하고 있습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인천지방경찰청도 최근 ‘법질서 확립 원년 선포식’을 개최하고 2월 20일부터 선진 질서문화 정착을 위한 ‘범국민적 기초질서 운동’을 전개 중이다. 부산·대전·전북 지방경찰청도 비슷한 운동을 전개하거나 준비하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시민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법과 질서 확립’이라는 뻔한 명제를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모습이 마치 1970~80년대를 연상하게 한다는 것이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은 “때마다 강조하는 질서의 종류는 달랐으나 언제나 법질서 확립은 경찰의 주요 업무였다. 마치 지금 새롭게 강조하는 것 같아 보여 어색하다”라고 말했다. 기마경찰을 본 한 시민은 위압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대구지방경찰청 홍보실 조창호 주임은 “중앙에서 지방청별로 실정에 맞게 법질서 확립을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라는 지시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에 대해 “그렇게 볼 수도 있으나 법질서를 확립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공감하므로 캠페인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라고 답했다.

공안사범 검거는 보수 정부 코드 맞추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 중이던 공안사범이 잇따라 검거되는 것도 경찰의 코드 맞추기 아니냐는 지적이다. 지난 1월29일엔 군산동고 교사 김형근씨(49)가 구속됐다. 2005년 전북 순창에서 열린 ‘통일애국열사 추모제’에 학생 180여 명과 함께 참석해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혐의다. 그러나 이는 사건 당시에도 문제가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지난 4월 경찰이 김씨의 자택을 압수 수색했을 때에도 김씨는 구속되지 않았다. 진보단체들은 김씨가 사건 이후 2년8개월이나 지나서야 구속됐다는 점이 석연치 않다는 반응이다.

2월27일에는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 남측본부 의장 윤기진씨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연행됐다. 윤씨는 9년여 동안 수배 생활을 해왔다. 인터넷에 북한의 주체사상을 찬양하는 글을 올린 재야 시민단체 간부 송 아무개씨도 지난 21일 같은 혐의로 구속됐다. 김자경 남북공동선언실천연대 사무처장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 이후 국가보안법 남용 사례가 늘었다. 이는 경찰이 새 정부와 코드를 맞추려는 인식을 갖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민주노동당도 논평을 통해 “경찰은 제 세상을 만난 양 국가보안법을 마구 휘둘러 공안 분위기를 확산시킨다”라고 비판했다.

물론 이런 비판이 다소 섣부르다는 의견도 있다. 북방문제연구소 김태석 박사(현직 경찰)는 “한동안 경찰, 검찰 등이 공안사범 검거에 소극적 경향을 보이면서 최근의 강경 대응 움직임이 과도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경찰이 한해 평균 35건 내외의 국보법 관련 사안을 처리한다는 점을 염두에 뒀을 때 최근의 검거 추세는 평균과 크게 다르지 않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경찰의 강경한 대응이 두드러지면서 시민·사회 진영의 긴장감이 고조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자칫 ‘신공안 정국’의 도래를 걱정하는 시민·사회 진영과 정권의 코드 맞추기에 열심인 경찰당국 간에 엇박자가 우려된다.

기자명 박근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you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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