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를 읽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엄마가 제일 예뻐”라며 품속을 파고들던 우리 집 꼬맹이도 생각났다. 비록 초등학교에 입학한 뒤로는 이를 접대성 멘트로 날린다는 게 눈에 보여 탈이지만 말이다. 아이 눈에는 본시 그게 정상일 것이다. 엄마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사람, 아빠는 세상에서 제일 힘센 사람. 그런데 그럴 수 없는 아이들이 있다. 자신의 엄마 또는 아빠를 부정하게 만드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이다. 피부색이 다르거나 한국말이 서툴다는 이유로, 또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부모가 2등 국민 취급받는 걸 보고 자란 이들이 과연 자긍심을 기를 수 있을까?
최근 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다문화 가정 여성이 화제를 모았다. 막강한 노래 실력을 지닌 그녀가 예상보다 일찍 탈락하자 혼혈에 대한 편견이 작용했다는 둥 말이 많았다. 그러나 그보다 많은 이들의 마음에 걸렸던 건 그녀의 무표정이었다. 울고 웃는 다른 참가자들과 달리 그녀는 감정의 진폭이 적었다. 감성에 호소하는 텔레비전 매체에서 이는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했다. 한 심사위원은 ‘그녀가 감정 표현에 소극적이었던 것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아 그랬던 것이다’라고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유태인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수용소 수감자들이 몇 주 지나면 모든 일에 무감각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는 데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이는 살아남기 위한 방어기제다. 정신적 고통이 엄청난 상황에서 그 고통을 잊기 위해 안간힘을 쓴 결과가 무감각이라는 것이다. 단, 아무리 감정이 무뎌진 사람이라도 모멸감이 쌓이면 폭발할 때가 있더라는 것이 그의 통찰이다. 분노가 터져나오기 시작하면 때는 늦다. 학교와 사회에 모두 적응하지 못한 채 방화범이 되어버린 한 혼혈 소년은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 토끼를 키웠다고 했다. 어쩌면 그것이 순혈주의를 고집하는 이 꽉 막힌 사회에 던져진 ‘잠수함의 토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