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사진기자단
제59주년 국군의 날을 10여 일 앞둔 9월20일, 다부지고 말쑥한 차림의 한 중년 여성이 서울 독립문에 있는 〈시사IN〉 사무실로 찾아왔다. 지난해 11월30일자로 육군에서 강제 전역당한 여군 헬기 조종사 피우진 중령(52)이었다. “세상이 아는 여군과 4000여 명의 현역 후배 여군들이 군에서 겪는 현실에는 큰 괴리가 있다. 독립언론을 표방한 〈시사IN〉 같은 매체가 여군의 처우와 목소리에 진지하게 귀기울여야 할 때다.”

지난 1981년 여군으로서는 두 번째로 육군 헬기 조종사가 되어 27년 동안 창공을 갈라온 피 중령이 군대로부터 느닷없이 ‘나가라’는 말을 들은 때는 지난해 9월. 유방암 수술로 인한 신체 장애를 이유로 강제 전역당한 것이다. 피 중령은 자랑스러운 여군 헬기 조종사로서, 그리고 평생을 군에 몸담아온 직업군인으로서 군 당국의 이런 조처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더구나 유방암이 생긴 부위인 왼쪽 가슴 절제술을 한 후 군에서 헬기 조종에 영향을 미치는 신체 균형을 문제 삼자 멀쩡하던 오른쪽 가슴까지 도려낸 채 ‘천직’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썼던 그녀였다.

하지만 끝내 군에서 강제로 쫓겨난 피 중령은 비로소 대한민국 여군이 처한 위상과 현실에 눈을 뜨게 되었다. 이후 피 중령은 차별 없는 여군, 실력만큼 대접받는 후배 여군을 위해 오히려 사회에 사이렌을 울렸다. 전역 무렵에는 25년 군 생활을 담은 자전적 수기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를 발간해 여군이 군대 내에서 남모르게 겪는 차별과 역경을 폭로하기도 했다. 본인에 대한 강제 전역의 부당성을 다투는 행정소송을 내 10월5일 판결을 앞두고 있다.

ⓒ연합뉴스여군들은 부대 내에서 비공식적으로 임신을 ‘통제’당하기도 한다. 위는 2005년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여군 리더십’ 행사에 참석한 여군들.
피 중령 사례는 군대에서도 여성 파워가 위풍당당한 것으로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다. 1990년대 후반 이후 군이 많은 젊은 여성에게 매력적인 평생 직장으로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군대는 남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군 병원에서 간호를 하거나 국방부 사무실에서 커피 타고 전화 받고 타이프를 치는 이미지가 일약 얼룩무늬 전투복에 투박한 군화를 신고 야전에서 남자 병사들과 뒹굴며 지휘하는 모습으로 확 바뀐 것이다. 여군에 대한 이 같은 인식 변화에는 여성에게 더 많은 문호를 개방한 군의 제도 개선도 한몫했다. 1990년대 들어 여군에게 오랜 족쇄였던 결혼·출산 규제 정책이 폐지됐고 ‘여군 병과’도 해체됐다. 이후 육군은 여군 모집요강에 ‘남군과 동일’이라는 문구를 반복 사용해가며 군대가 남녀 평등 조직임을 은근히 강조했다.

여군 4455명, 군 병력의 0.6%에 불과

1990년대 후반부터 육해공군은 저마다 여군 장교 후보생 모집을 확대했고, 각군 사관학교도 여성 생도를 10% 이상씩 뽑았다. 그 결과 사관학교 수석 졸업을 여성 생도가 차지하는가 하면 전투기, 함정 같은 분야에서 ‘최초’라는 타이틀을 단 여군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 속에 군인 수에서도 여군의 팽창은 괄목할 만했다.  2007년 6월 현재 육·해·공군과 해병대 여군의 수는 모두 4455명으로 장교가 2453명, 부사관이 2002명이다. 전체 군 병력(67만명)과 비교하면  0.6%에 불과한 수치이지만, ‘군 밖’에서 접하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올 2월 모집한 여군 부사관 상반기 모집 경쟁률은 14대 1이었다. 지원자 가운데 63%가 대졸 이상이었으며, 대학원 졸업자도 3명이나 됐다. 전국 18개 전문대학에서 부사관학과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을 정도다.  여군에 대한 이 같은 인기를 반영하듯 국방부는 오는 2020년까지 여 군장교와 부사관 비율도 각각 7%와 5%로 늘리기로 했다. 그러나 한 꺼풀 벗기고 들여다보면 군대에서 여군의 위상은 여전히 기형적 상태에 머물러 있음이 금방 드러난다. 여군 간부는 전체 군 간부의 2.4%에 불과하다. 이는 북한 여군 15%는 물론 미군(14.6%), 캐나다(10.3%), 프랑스(8%), 일본 자위대(4.1%)에도 훨씬 못 미치는 실정이다. 더구나 간부 중 66%가 간호 장교이다.

 
현재 여군 장교와 부사관에게는 18개 병과에 문호가 개방돼 있다. 그러나 아직도 기갑, 포병, 군의, 치의, 군종 따위 병과는 ‘금녀의 벽’이 건재한 구역이다. 군 내부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여군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편견투성이인 경우가 많다.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여성 포털 사이트 위민넷에서 “여자, 군대 갈까?”라는 설문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젊은 여성 응답자 중 52.3%가 “새로운 커리어라고 여기고 도전해보겠다”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반면 지난 3월, 포털사이트 미디어다음의 아고라 토론방에서는 ‘여자들은 군대 가지고 장난치지 마라’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여장교, 여부사관과 함께 생활해본 현역과 예비역들은 그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 차라리 늙은 군견이 더 군기가 있을 정도로 눈 뜨고는 못 본다. 여군 중에 전투병과에 지원해서 전방부대나 산골짜기에 있는 오지에서 근무하는 여군이 얼마나 있는가? 여군에 지원하는 여성들은 마치 걸스카우트에 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위 두 가지 사례는 우리 사회가 여군이라는 집단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단적으로 보여주지만 둘 다 여군의 현실을 제대로 짚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동안 여군의 모습은 ‘남군 속의 꽃’이거나 ‘아마조네스 전사’라는 이미지로만 비쳤을 뿐 현실 속의 여군의 참모습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왔다. 여군의 실태를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것은 오랜 세월 여군의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시용 꽃도 남군 속에 기생하는 천덕꾸러기도 아닌, 훈련받고 생활하는 여군은 실제 어떤 모습일까? 평생 직업군인의 길을 걷고자 했지만 좌절을 경험한 예비역 여군 대위 강 아무개씨는 이렇게 말했다. “난 장기복무 제도가 있는 줄도 몰랐어요. 원하면 계속해서 근무하는 줄 알았죠. 장기신청 시기를 놓쳐서 연장 신청만 하게 됐고, 결국 연장 기간이 다 끝난 시점에 전역한 거죠.”

ⓒ연합뉴스여군들은 ‘자신들의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꺼린다. 위는 내무반에서 담소를 나누는 여군들.
여군들이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문제는 ‘장기복무 제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입대하는 데서 비롯한다. 현재 여군은 육군 규정에 의해 남군과 동일한 장기복무 선발 원칙을 적용받지만, 남군의 선발 인원이 매년 유동적인 데 비해 여군들은 임관 인원의 50%로 묶여 있다. 쉽게 말해 입대 후 처음 3년만 고용이 보장될 뿐, 절반은 ‘진짜’ 직업군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비역 김 아무개 장교는 “여군의 경우 군인을 직업으로 선택하고 자원한 사람이므로 누구나 장기복무를 원하게 마련인데, 그 중 50%만 직업군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지금도 육군 홈페이지의 여군 부사관 모집 요강엔 ‘임관 후 연장 및 장기복무 가능’이라는 문구만 적혀 있을 뿐, 장기복무 제도에 대한 설명은 없는 상태다. 결국 정규직인 줄 알고 왔다가 졸지에 비정규직으로 해고되고 마는 ‘절반의 여군’들은 군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절반의 벽을 넘어 장기복무에 들어간 직업군인들은 사소한 일상의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극소수에 불과한 ‘여성 군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육군에서 소령으로 전역한 예비역 여군 장교 김 아무개씨(41)는 훈련 기간에 생리를 할 때 가장 고통스러웠다. 그는 생리대 대신 화장용 티슈를 엄청나게 많이 뭉쳐서 쓰곤 했다. 생리의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다. 화장실 청소는 남성 사병들이 하고, 부대 전체를 통틀어 여성은 혼자뿐이었다.  “그렇다고 이동식 화장실이라도 설치해달라는 이야기를 하진 못 한다. 왜냐? 그럼 우리 여군이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되고 마니까. 오늘도 수많은 여군들이 그런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참고 또 참는다. 주변에 보면 방광염에 걸린 여군들이 무척 많다.”

일주일 이상씩 야외에서 먹고 자야 하는 기동훈련이 벌어지면 여군으로선 가장 곤란한 문제가 배설 등 생리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다.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공간은 물론이고 여성용 화장실조차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여건이 좋아서 화장실 등 제반 시설이 갖춰진 경우에도 고민은 이어진다. 가장 신경 쓰이는 건 남군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점이다. 한 부대 현역 중대장은  “여성 상관을 모시는 이유로 화장실이나 세면, 샤워 여건을 마련해야 하는 행정보급관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다”라고 말한다. 이쯤 되면 여군의 존재 자체가 ‘민폐’가 되는 셈이다.

ⓒ연합뉴스지난해 열린 취업박람회에서 학생들이 여군 취업부스를 찾아 상담하고 있다.
야전에서 근무하는 현역 김 아무개 대위는 아직 아기를 가지지 않고 있다. 임신 7개월 이후에 90일의 출산휴가를 보장받고 있기는 하지만, 근무 인원이 적은 야전에선 휴가를 간다고 하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임신부가 가장 조심해야 할 임신 초기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선 휴가를 얻기도 힘들다. 무엇보다 여군의 존재 자체에 피해의식을 가지는 사람들에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는 게 싫기 때문이다. 김 대위는 “남군들은 자신의 부인이 임신하는 것과 옆의 여군이 임신하는 것을 다르게 보는 것 같다. 어떤 이는 임신한 이후, 업무 욕구가 사라지고 편한 자리만 찾게 됐다고 하던데 그 심정이 이해가 간다”라고 말한다.

아예 부대 내에서 비공식적으로 임신을 ‘통제’하는 경우도 있다. 군인 교육 기관에서 생도나 후보생의 내무반 생활을 지도하는 훈육관 직책을 수행했던 한 장교는 “훈육관 일을 수행하는 2년 동안 아기를 갖지 말라는 상관의 말을 듣고 전역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행군 100㎞, 매일 교장 이동 한 시간씩 해야 하는 형편에 스스로도 아기를 갖기 힘든 게 아닌가 생각했다. 여기에 출산 이후 육아 문제까지 생각하면, 전역에 대한 고민은 늘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군부대가 대체로 민간 사회와 분리되어 고립된 까닭에 아기를 낳는다 해도 육아, 보육 문제를 뚜렷이 해결할 방법이 없다. 어린이집 대신 시댁에 아이를 맡기고 주말에나 만나러 가는 형편이다. 국방부의 발표에 따르면 60%의 여군이 자녀를 부모에게 위탁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군의 특성상 기혼 여군의 경우 남편과 떨어져 사는 비율이 70%에 이르는 것도 육아 문제를 어렵게 한다. 그 결과 기혼 여군 1인당 출산율은 1.07명으로 한국의 평균 출산율(1.17명)을 밑돈다. 부부 군인의 경우에는 더욱 심각해서 0.83명에 불과하다.

군인 부부 출산율이 겨우 0.83명인 까닭

많은 여군이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며 군대생활의 어려움을 실감한다. ‘직업인’일 수밖에 없는 여군은 현실에 순응하는 방법을 택하기 마련이다. 이 과정에서 남군들의 케케묵은 편견이 기승을 부린다.   소령 진급을 앞두고 있는 한 여군 대위는 남성 상관으로부터 “너는 군 업무를 부업으로 하는 것 아니냐”라는 말을 듣고 분개한 적이 있다. 

“몇 년 전 진급서열을 받을 때 학군 출신과 같이 받았다. 서열 쓰는 분이 ‘학군단 부하는 가장이라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그런데 너는 사실 군대가 부업 아니냐’고 하더라. 나중에 보니까 결국 내 평정이 아주 나빴다.” 또 다른 대위도 “영관 장교가 될 정도면 검증됐다고 봐야 하는데, 막상 일선 사단에 배속되면 ‘여군이 그런 일 할 수 있겠냐’며 보직을 변경해버린다. 보직 변경 사유서를 보니 ‘지휘관이 지휘부담을 느껴서’라고 적혀 있기에 기가 막혔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런 시각은 결국 여군의 진급 차별로까지 이어진다. 작전 장교나 참모 등 근무 평정이 높은 핵심 보직에서 여군들이 아예 원천적으로 제외되는 것이다.  “빛이 나는 일은 다 남군 차지다. 우리도 그런 일 할 수 있는데···. 여군은 남편도 있고, 애도 있으니까 배려해주는 척하면서 덜 중요한 보직을 주는 경우가 많다. 진급을 하려면 중대장 경험이 필수이고, 지휘관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사단급 전투 부대가 아니라, 기능 행정 부대로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강제 전역된 여군 헬기 조종사 피우진 중령도 비슷한 경험을 갖고 있다. 피 중령은 “남군들은 해외 유학을 다녀오거나 연구직을 수행하느라 비행 시간이 적어도 필수 직위를 맡고 진급이 되는 반면, 내 경우 진급이 될 시기에도 비행시간이 적다는 이유로 필수 직위에서 제외되고 결국 진급도 못했다”라고 주장한다. 그녀는 “애초부터 여군은 동등한 진급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 문제다. 만약 대령 진급자가 20명이라면, 여군이 남군과 함께 경쟁해서 진급 대상자가 결정돼야 하는데 여성은 정원이 따로 있다. 결국 영관급에 이르면 여군은 아주 희귀해지고 만다. 이런 구조에선 대다수인 남군 상관에게 어떻게 잘 보이느냐가 진급을 좌우할 수밖에 없다. 형평성 있는 인사가 가능하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일부 보직은 아예 제도적으로 여군의 진출이 금기시되기도 한다. 군인사 방침 99-57호에 따르면 전투부대 및 직책, 수색 정찰, 특수작전 수행부대, 평시에 적과 교전 가능성 높은 지역 등에 대해 여군의 보직을 제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적잖은 여군은 이런 보직 제한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투병에 지원해 근무 평정을 동등하게 받고자 하는 여군도 인사관리 방침의 제한 때문에 뜻을 펼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경력 11년째인 한 현역 여군 대위는 “여성이라고 아예 기회조차 주지 않는 곳이 많은데 개인차가 있겠지만 여성도 전투지휘 중대장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도 무조건 여군이라고 자리를 제한하는 것은 억울한 기회 박탈이라고 본다”라고 주장한다.

군 일각에서는 여군에게 여러 제한을 두는 게 마땅하다고 여긴다. 신체 조건이 남군에 비해 열등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지난 2005년 공군이 실시한 한 조사는 이런 편견을 뒤집는다. 13명의 여성 전투 조종사를 대상으로 전술 임무 수행력과 체력 등을 1년간 측정한 결과 남성 전투 조종사와 대등한 수준으로 나타난 것이다.  

지난 2004년 ‘여성 장교의 경험으로 본 한국 군대의 젠더 정치’라는 석사 논문을 쓴 류영숙씨(연세대 사회학과)는 “군대 내의 불평등 구조 속에서 여성은 남군과의 동등한 진급 경쟁에 끼어들지 않으려는 소극적 태도를 보이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결과 여군의 계급구조는 대단히 기형적인 ‘압정형’ 구조로 변했다. 영관급 장교는 거의 없고 대위 이하 하급 장교들만 넘쳐난다. 2005년 현재 국방부가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여군 총 3972명 중 영관급 장교는 119명, 대위 이하의 장교 및 부사관들이 나머지 3853명에 이른다. 영관급 장교가 고작 3%인 것이다. 육군에만 장성급이 300명이 넘는 남군과 비교하면 참으로 초라한 수치다. 

지난 2005년 한국여성개발연구원이 조사한 자료엔 여군의 피해의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현역 여군 314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과 심층 면접에서 군대에서 여군이기 때문에 성차별을 경험해본 적이 있는지를 물었을 때 ‘비교적 자주 경험한다’는 응답자가 37.6%에 이르렀다. ‘매우 자주 경험한다’는 응답도 2.9%였다. 자세한 성차별의 예로는 25.3%가 ‘보직 부여, 배치 및 직책 선택 시’라고 답했고, ‘훈련 시 열외’(13%), ‘병사들이 여군을 이성으로 인식’(13%), ‘지휘관의 여성차별 및 부하들의 여성상사 무시’(12.3%) 등이라고 밝힌 여군도 많았다.

한 예비역 대위는 “이렇게 침체된 분위기에선 적지 않은 여군들이 5∼6년이면 그만두게 된다. 실력 있는 사람들이 남지 않는 여군에 어떤 미래가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실제로 육군 공병의 경우 39기부터 여성을 뽑았지만 벌써 전역한 이들이 상당수다. 게다가 44기까지는 한 해에 겨우 한두명만 뽑아서 절대 수가 적다. 첫 여성 공병중대장인 문예지 대위(여군 46기)는 “선배 여군을 접할 기회 자체가 거의 없어 역할모델로 삼을 만한 여군이 없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여군에 대한 ‘환상’으로 군에 입대했다가 좌절감만 맛보고 군대를 떠난 여성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성희롱 탓에 군문 나서기도

아직 수면 위로 완전히 드러나진 않았지만 ‘성희롱’과 ‘성상납’ 문제도 여성으로 하여금 군에 오래 머물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해 말 피우진 중령이 자신의 저서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를 통해 이런 내용을 밝히기도 했다. 이 책은 여군의 고위 간부가 성상납 문제에 개입했다는 충격적인 의혹도 제기했다. 하지만 사건의 피해자들은 일절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이들이 입을 열면 군 전체가 흔들릴 수도 있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한국 여군의 역사

1950년 9월   여자의용군 교육대 창설(1기 491명 수료) 정보 수집·수색·행정 활동 1953년 8월   여군간부후보생 1기 13명 임관 1962년       미스여군 선발대회 개최(1972년 폐지)    1969년 9월   여성 공수요원 9명 탄생 1984년 5월   중사 이상 결혼 허용 1988년 1월   기혼 여군 출산 허용 1990년        여군병과 폐지, 보병, 정훈, 정보, 경리 등 7개 병과로 전환 1993년 12월  사단 신병교육대 소대장 보직(15명) 2001~2002년  공사·육사·해사 여군장교 최초 임관 2002년 1월    최초의 여성 장성 탄생(양승숙 준장·국군간호사관학교장) 2002년 10월   육군여군학교 해체,                3사관학교와 부사관학교로 양성통합교육 2002년 11월   국방부 여군발전단 창설 2007년 5월    기혼 여성 여군 응시 허용

국방부도 일부 남성 지휘 간부의 성희롱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악수 이상의 신체 접촉을 금한다’라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도 상당수 남성 지휘관들의 의식은 기준 미달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9월 합참에서 남군 지휘관 경험자 및 예비 지휘관 110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다수가 군대 내 성희롱을 ‘사소하고 개인적인 문제’(42%)라거나 ‘여군의 과다 노출로 인한 성적 충동이 원인’(22%)이라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군대 내에서 성희롱이 ‘인간관계를 원만히 하는 요소’라고 응답한 비율도 15%를 차지했다.

이런 문제가 공론화되지 못하는 까닭은 여군들의 실상을 짐작해볼 수 있는 ‘정보’와 ‘목소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방 당국은 여군의 병과나 보직 현황에 관한 자료조차 준비돼 있지 않다는 핑계로 공개를 꺼리는 실정이다. 군 방침상 개별 여군을 접촉하려면 상부의 허락을 얻어야 하는 현실에선 현역 여군들의 ‘솔직한’ 목소리가 공론화하기도 어렵다. 〈시사IN〉이 접촉한 현역 여군들도 대다수가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인터뷰 자체를 꺼리거나 익명을 전제로 응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국방 당국이 현장 여군의 누적된 불만에 일부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특히 여군의 임신·출산과 관련한 복지 부분에서 두드러진다. 우선 임신 후 7개월 이후부터 당직 근무에서 제외했던 것을 2005년 6월부터 ‘임신 확인과 동시에 출산 후 6개월까지’로 확대했다.  각 군의 내부 규칙이었던 여군의 휴가도 법제화할 예정이다. 지난 5월 발표한 개정안에 따르면 여군은 생리기 또는 임신했을 경우 건강검진을 위해 매달 하루 ‘여성보건휴가’(무급)를 갈 수 있다. 생후 1년 미만의 유아를 둔 여군에게는 하루 1시간의 육아 시간도 주어진다. 어린이집 등 군 내 보육 기관 설립도 적극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국방부 여성정책팀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많은 부분들이 개선돼 남녀 군인 사이에 제도적인 차별은 없다. 다만  현장 지휘관의 마인드가 뒷받침해줘야 여군 개혁이 이뤄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임태훈 한국여성의전화 정책위원은 “여군 정책이 많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실제로 증명된 자료는 별로 없다. 인권 침해나 차별에 대해 내부고발을 하지 못하게 틀어막는 문화를 없애려는 노력부터 먼저 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비교적 인권이 잘 보장된 독일군도 인권 침해나 차별이 존재하는데 한국 국방부가 여군에 차별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라고 덧붙였다.

기자명 정희상,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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