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보안법’의 시대가 돌아왔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려 그랬는지 요즘 추세는 ‘트위터 보안법’이다. 트위터에 올린 글이 문제가 되어 구속까지 된 박정근씨에 이어, 또 한 명이 트위터 게시물 때문에 수사선상에 올랐다.

트위터에서 ‘야우리’라는 아이디를 쓰는 권 아무개씨(20)는 4월26일 난데없이 압수수색을 당했다. 권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북한의 대남 선전 계정인 ‘우리민족끼리’의 트윗을 리트윗하고, 북한 찬양 트윗 200여 건을 썼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국가보안법상 고무·찬양 혐의다.

이 사건은 여러 면에서 앞서 박정근 사건과 판박이다. 박씨처럼 권씨도 북한에 비판적인 사회당 당원 출신(현재는 진보신당과 합당해 진보신당 당원)이다. 사회당은 ‘반(反)조선노동당’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적도 있는, 북한 체제에 대단히 비판적인 정당이었다.

박씨처럼, 권씨도 트위터에 쓴 글은 달리 볼 여지가 없을 정도로 분명한 ‘농담’이었다. 올해 3월17일 권씨는 자신의 트위터에 “김정일은 영양소가 풍부합니다”라고 썼다. 지난해 10월31일에는 “애인이라니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그것은 김일성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썼다. 농담이 아닌 일상 대화에서 권씨의 어법은 이렇다. “스탈린·김일성 식의 독재가 나타났잖아요. 모든 인민민주주의 국가에서. 그런 독재자들이 나타나지 않게 제대로 해야죠.”(지난해 10월27일) 


ⓒ박정근 트위터권 아무개씨가 트위터에 올린 그림. 북한 병사가 총 대신 위스키를 들고 있다.
하지만 수사 당국은 권씨의 농담성 트윗들(이를테면 권씨는 지난해 10월21일 “김일성 만세입니다 여러분! 김일성 만세 만세 만만세 장백산 줄기줄기 피 어린 자욱. 아아아 그 이름도 빛나는 김이일성 장군 빰빠밤”이라고 쓴 바 있다)을 구실 삼아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냈다. 박정근씨 사건 때와 전개 과정까지 같다.

수사 당국은 두 사람의 정치적 성향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으면서도 수사를 중단하지 않고 밀어붙였다는 비판을 받는다. 박정근씨를 변호하는 이광철 변호사는 “이건 수사 윤리의 문제다. 보안수사대가 실시간으로 박씨의 트위터를 모니터링하면서 그 수많은 농담과 북한에 대한 조롱을 모두 지켜봤다. 그런데도 입맛에 맞는 대목만 발췌해 영장을 받아냈다”라고 말했다. 권씨는 ‘우리민족끼리’의 트윗 내용을 리트윗하고 다음 트윗으로 그를 비판한 경우도 여럿 있었지만 결국 압수수색을 당해야 했다. 권씨는 “누가 봐도 농담이란 걸 알 수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박정근씨 사건 이후에도 내가 수사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수사가 당사자들을 물질적·정신적으로 피폐하게 만든다는 점도 판박이다. 충남 천안에 사는 권씨를 압수수색한 곳은 서울중앙지검이다. 그 때문에 권씨는 압수수색 이후 거의 매일 서울까지 와서 하루 종일 강도 높은 수사를 받고 천안으로 돌아가는 부담을 추가로 지고 있다. 수사 자체가 일종의 징벌로 작용하는 셈이다.

발랄하던 권씨의 트위터는 압수수색 이후 분위기가 급격히 가라앉았다. 4월28일에는 “오늘 조사받다 건물 마당에 나와서 꽃구경을 하는데 볕이 참 좋고 철쭉 진달래가 예뻐서 눈물이 납디다”라고 썼다. 권씨를 지원하고 있는 아이디 ‘김슷캇’씨는 “권씨가 양복 입은 사람만 봐도 겁이 난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권씨와 박정근씨가 올린 글들.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보여준다.
박정근씨도 그랬다. 집과 운영하는 사진관이 모두 서울에 있는 박씨는, 엉뚱하게도 경기경찰청이 수사를 진행하는 바람에 매일같이 수원으로 조사를 받으러 다녀야 했다. 박씨는 조사를 받는 동안 사진관을 열지 못해 수입이 뚝 떨어졌고, 압수수색을 받은 이후 자기 방에서 잠을 잘 수가 없어 신경정신과 약물치료를 받기도 했다. 그 역시 트위터에서 농담이 증발하다시피 했다. 


이번에는 구속영장 어려워

차이점도 있다. 경찰은 압수수색 이후 권씨를 수사하면서 아직 트위터에 대한 질문은 꺼내지도 않았다고 한다. 대신 권씨의 청소년 운동과 학생운동 이력을 캐고, 그가 관심을 가진 조직·정당 등을 묻는 데 시간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다고 한다. 박정근씨의 변호사로 권씨 사건에도 관심을 갖고 있는 이민석 변호사는 이를 두고 ‘박정근 학습효과’라고 말했다. “농담에 국가보안법을 적용한 박정근 사건으로 검경이 크게 망신을 당했다. 그런 경험을 한 번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최대한 폭넓게 뒤져서 근거를 여러 개 만들어두려는 것으로 보인다.”

권씨를 방어하는 이들에게도 박정근 학습효과는 작용했다. 이민석 변호사는 이미 권씨의 트위터와 블로그를 뒤져서 그가 북한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다는 근거가 되는 글을 100여 개 확보했다. 이른바 NL(민족해방) 계열에 대한 비판도 다수 찾아뒀다.

박정근 사건 당시에는, 박씨가 의도적으로 자신의 ‘반북 성향’을 어필하지 않고 ‘사상 검증을 받지 않을,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다. 사회적으로 논점은 선명해졌지만 법정 논리로는 사실상 방어를 포기한 것이어서, 구속영장 청구가 받아들여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고 한다.

박씨의 변호사들은 구속영장이 받아들여진 후 본격 법정 다툼에 들어가자, 그의 반북 성향을 보여주는 트윗 585건(검찰이 고무·찬양 증거라고 주장한 229건보다 훨씬 많다)을 찾아 재판에 증거로 제출했다. 이광철 변호사는 재판정에서 “장군님 빼빼로 주세요” “김정일 카섹스” 등 박씨의 농담 트윗을 읽어내려 방청객들을 키득거리게 만들기도 했다. 이번 권씨 사건에서는, 권씨 본인과 변호사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방어 근거를 모으고 있다. 이민석 변호사는 “이번에는 구속영장이 나오기 쉽지 않을 걸로 본다”라고 말했다.

농담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악명 높은 국가보안법 적용 사례들에 비춰보아도 또 다른 차원이다. 국가보안법이 적용된 과거 사건들을 보면, 김일성 선집 정도 되는 ‘불온문서’가 나온다거나 ‘이적 문건’ 수준의 자료가 나오는, 최소한의 비빌 언덕은 검찰도 마련했던 것이 상례다.

박정근씨는 진보정당 당원이기는 하지만 이렇다 할 운동 경력은 없고 북한을 조롱 대상으로 보는, 패러디 문화에 관심이 많은 생활인이다. 권씨는 청소년 운동과 학생운동을 해온, 북한과 NL 노선에 비판적인 소신을 되풀이해 밝혀온 만 스무 살 대학생이다. 어느 모로 보나 북한 체제 찬양·고무와는 거리가 멀다. 북한에 비판적인 좌파 성향 운동권과 진보적 생활인의 트위터 농담에 국가보안법이 적용되는 전례가 남게 되었다. 수사 당국이 마음만 먹으면, 국가보안법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어느 정도까지 광폭하게 휘두를 수 있는지, 이 두 사건은 꽤 오랫동안 생생한 실례로 남을 전망이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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