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세 감독이 결국 화제의 블록버스터 영화 〈미스터 K〉에서 하차했다. 밖에서 보면 그냥 가십일 수 있다. 대개의 분쟁이란 〈라쇼몽〉처럼 이해당사자들의 기억 속에서 일방적으로 곡해되기 마련이다. 서로 다른 버전의 억울함이 상존할 수 있다. 어느 한쪽의 의견을 채택해 상대를 규탄하는 건 쉽고 편한 일이다. 나는 이 사안을 그렇게 흘려보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단지 이명세 감독의 하차로 끝날 일이 아니라서 주의 깊게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생긴다.

“〈미스터 K〉의 촬영이 중단되고 이명세 감독은 연락두절 상태”라는 보도가 4월16일 전후로 쏟아져나왔다. 실제 촬영이 중단된 건 4월7일이었다. 지난 3월 타이(태국)에서 크랭크인해 4월 초까지 촬영된 현장 편집본을 확인하고, 제작사 JK필름(윤제균 감독)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사달이 벌어졌다. 제작사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식의 유머러스한 액션영화를 기대했다. 그러나 막상 받아든 현장 편집본은 제작사에 불안감을 주었다. 이야기보다는 이미지에 치중되었다. 무엇보다 완성되었을 때 어떤 모양일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결국 감독은 제작사가 무리한 개입을 한다고 판단했다. 감독조합이 이명세 감독과 제작자 윤제균 감독 사이에 중재를 섰다. 윤제균 감독에게 코미디를 맡기고 이명세 감독은 액션을 연출하겠다는 안까지 나왔다. 그러나 세 번에 걸친 협상은 실패로 돌아갔다. 제작사는 감독이 4월24일 최종 하차했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이명세 감독은 합의된 바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스터 K〉는 예산이 100억원 들어간 영화다. 이야기는 〈트루 라이즈〉다. 이명세 감독이 합류한 이후 설경구·문소리·대니얼 헤니가 캐스팅되었다. 일단 애초 100억원 예산의 〈트루 라이즈〉 이야기에 이명세 감독이라는 조합을 생각해낸 JK필름이 이해되지 않는다. 완벽한 기획 영화를 만들 생각이었다면 이명세 감독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예술적 미감이 남다른 대표적 스타일리스트를 굳이 고집했다면 거기에는 명시된 약속들을 상회하는 신뢰관계가 있었을 것이다. 이제 고작 수회차를 촬영한 상황에서 감독의 역량과 비전을 믿지 못하는 태도 또한 더욱 이해되지 않는다.

감독의 태도에도 문제의 소지가 많았던 건 사실이다. 100억원짜리 영화에 콘티가 없고 시나리오도 초고 상태였다. 촬영 분량 가운데 상당수가 소스 촬영이었다. 그러나 이명세 감독은 시네아스트(영화인)다. 현장에서 수를 찾아내든, 편집의 묘를 발휘하든 복안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동상이몽이었다. 〈미스터 K〉만 두고 보았을 때 이 사안을 ‘자본의 횡포 대 창작자의 자유’ 구도로 해석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그러기에는 서로 너무 어울리지 않는 개성의 조합에,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던 마찰이다. 그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마찰’에 너무나 놀랍다는 듯이 과민하게 반응하며 언론 플레이를 거듭하는 제작사와, 빠르게 변화하는 제작 환경의 온도차를 고려하지 못한 감독 쌍방의 과실이다.


영화라는 소비재가 갖는 특수성

문제는 지금부터다. 향후 투자사들은 강력하고 새로운 형태의 감독 계약서를 요구할 것이다. 할리우드 제작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하는 노력이 여러 해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다. 영화계 노동환경을 고려할 때 그것은 거시적으로 합당하고 시급한 조처다. 그러나 한국처럼 소수 거대 자본에 투자·제작·배급·권력이 집중된 환경 안에서, 이와 같은 ‘사건’을 계기로 나올 개선책은 필연적으로 투자자의 권리를 우선하려 할 것이다. 이것은 단지 최종 편집권을 뺏기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평균 제작비 이상의 모든 영화는 기획상품이 될 공산이 크다. 그러나 온전히 돈의 주관에 귀 기울여 앞뒤를 재고 반응을 살펴 만들어진 영화는 결과적으로 돈을 벌지 못한다. 그것이 영화라는 소비재가 갖는 특수한 성격이다. 왜 오랜 세월에 걸쳐 증명되어온 이 당연한 진실이 외면당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기자명 허지웅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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