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와 홍철이 겨뤘다. 지난 1월 서울 잠실체육관에서 ‘평균 이하’ 동갑내기인 두 남자가 캔 뚜껑 따기·간지럼 참기 따위로 우열을 가렸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4대1로 하하의 압승이지만 예단은 무리수다. 9라운드에 걸친 대결이 중간에 멈췄다. MBC 〈무한도전〉이 1월28일 방영분을 끝으로 결방 중이기 때문이다. MBC 파업의 여파다. 두 사람의 대결은 언제쯤 다시 볼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힘들다. 4월5일 유튜브에 19분짜리 ‘무한도전 파업특별판’ 동영상이 올라왔다. 9주 연속 결방을 하게 되자 〈무한도전〉 멤버와 제작진이 인터넷 방송으로라도 소식을 전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오랜만에 모인 까닭에 흥분한 일곱 남자는 감격해 서로를 비방하며 ‘진상’을 피웠고, 진행자 유재석은 빠른 시일 내에 돌아가겠다고 약속했다. 반면 김태호 PD가 쓴 자막의 내용은 미세하게 달랐다.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빵빵 터지는 웃음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것은 MBC 파업이 장기전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중간에 어설프게 접는 일은 없다”

1월30일 시작한 MBC 파업이 두 달을 넘어섰다. 1992년 노태우 정부 때, 최창봉 당시 사장 퇴진을 요구하며 52일간 벌인 파업이 MBC에서는 최장 파업 기록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깨졌다. 그 사이 언론인 네 명이 해고되었다. 박성호 기자회장, 이용마 노조 홍보국장, 정영하 노조 위원장, 강지웅 노조 사무처장(해고 순서대로)이 제작 거부와 파업을 주도했다는 사유로 해고되었다. 이로써 김재철 사장 재임하에 해고된 언론인은 이근행 전 노조위원장과 정대균 진주MBC 노조위원장을 포함해 모두 여섯 명이 되었다. 해고자 수도 MBC 역대 사장 중 최고 기록을 낳았다. 한 노조 간부는 “이번 파업을 시작하면서 위원장과 사무처장을 해고할 것이라고 예상은 했지만 파업 중에 자를 줄은 몰랐다. 파업 중인 지금 두 사람을 자른다는 건 더 이상 회사가 노조와 협상하지 않겠다는 뜻 아니겠나. 이제는 정말 치킨 게임이다. 양쪽 모두 끝까지 가는 거다”라고 말했다.

 

ⓒ뉴시스4월2일 MBC 노조가 프리랜서 앵커 채용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노사 간의 고소·고발도 이어졌다. 회사는 노조를 상대로 34억원가량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했다. 또 노조 집행부 16명 전원에게 적게는 3000만원에서 많게는 1억2500만원까지 재산 가압류를 신청했다. MBC 노조는 트위터에 “파업에 대한 손배소 제기는 언론사상 처음. 일반 사업장에서도 흔치 않지요”라고 남겼다. MBC 홍보팀은 업무방해 행위에 대해 원칙대로 처리했다고 밝혔다.

노조도 김재철 사장을 배임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취임 이후 2년 동안 김 사장이 사용한 7억원 가까운 법인카드 사용액의 상당 부분이 개인 용무라는 의혹에서다. 일본의 여성 전용 마사지 숍 이용료나 명품 가방 구입비 등이 포함되어 있다. 김 사장은 진실이 아니라며 노조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한 노조 집행부는 “김 사장이 2010년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의 ‘조인트 발언’을 두고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며 목소리를 높이다 결국 철회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라고 말했다. 당시 김 사장은 왜 고소를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사법서사였던 선친 말씀이 소송하게 되면 여기저기 왔다갔다 골치 아프니 소송은 절대 하지 말라셨다”라고 답한 적이 있다.

노조의 요구 사항은 한 가지다. 김재철 사장 퇴진. 공정방송을 실현하기 위해 김 사장이 물러나야 한다는 요지다. 한때 직원들이 ‘실종된 사장님을 찾습니다’와 같은 전단지를 돌려야 할 정도로 얼굴을 보이지 않던 김 사장은 2월24일 출근을 해 퇴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26일 만의 출근이었다.

김 사장이 3월12일 이후 노조에 대해 더욱 강경하게 대응하기 시작했다는 게 노조 측 시각이다. 이날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주최로 ‘대통령과의 토론회’가 열렸는데, 이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언론사 파업에 대해 “방송사가 회사 내 사정에 의해 (파업을) 한다면, 대통령이 언급하면 오히려 간섭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라고 말했다. 한 노조원은 “사퇴 요구 목소리가 커지자 김 사장이 임원회의 때 전에 안 하던 성경 말씀을 인용하며 고민을 드러냈다고 한다. 그러다 이 대통령의 말에 힘을 얻어 다시 고삐를 죄기 시작했다는 말을 한 간부에게 전해 들었다”라고 말했다.

이후 회사 측은 프리랜서 앵커 5명과 계약직 전문기자 4명을 뽑았다. 장기 파업에 대비해 빈자리를 채워 방송을 진행하겠다는 뜻이었다. 또 김 사장은 지난달 열린 임원회의에서 공채를 없애고 계약직 직원을 상시로 뽑겠다고 밝혔다. 회사 측 역시 장기전에 들어간 모습이다. 그러자 MBC 아나운서와 기자들은 당장 반발하고 나섰다. 4월2일 MBC 아나운서협회와 기자협회는 ‘MBC를 영혼 없는 뉴스 공장으로 전락시킨 김재철은 사퇴하라’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김수진 기자는 “전문기자제 도입을 명분으로 계약직 기자를 채용했는데, 북한 전문 기자는 케이블 경제정보채널 진행자, 환경 전문 기자는 교통방송의 계약직 공무원 출신이다”라고 말했다. 신분이 안정되지 않은 계약직 직원을 뽑아 회사 측의 입맛에 맞는 보도를 하겠다는 속셈이 보인다는 것이다.

시사교양국의 한 PD는 “지난 2010년처럼 39일간 파업을 하다 중간에 어설프게 접고 들어가는 일은 없다”라고 단언했다. 라디오본부의 한 PD는 “이번 파업에서는 노조 집행부 2선, 3선이 대기 중이다. 혹시 노조에서 제의가 오면 생각해보려고 했는데, 내게 제안이 올 틈도 없이 다들 집행부에 자원하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그는 김재철 사장에 대한 반대 여론이 파업을 거치면서 더욱 커진 데다, 보도국이 파업에 앞장서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김재철 사장이 취임하고 보도국이 망가졌다는 이야기는 수차례 나왔지만, 지난 파업과 투쟁에서는 시교(시사교양국)와 라디오가 주축이었다. 이번에는 기자회의 제작 거부부터 파업이 시작되어서인지 보도국이 파업에 매우 적극적으로 나선다.” 

 

 

 

 

 

 

 

 

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더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보도국을 전면에 나서게 한 중요한 이유였다. 윗선의 기사 개입이 이어진 데다, 특히 현장에서 MBC 보도에 항의하는 시민들과 직접 마주치는 ‘아래 기수’ 기자들의 불만이 점점 커져갔다는 것이다. 보도국 김민욱 기자는 노조에서 마련한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와의 상담 시간에 이렇게 말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119 전화 논란 보도 당시 도지사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다 빠졌다. 경기도정 방송이냐고 따졌으나 별수 없었다.” 떨어져가는 신뢰도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도(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파업을 해야 한다는 정서가 보도국 전반에 퍼졌다는 얘기다.

현재 이들은 〈제대로 뉴스데스크〉를 만들어 유튜브 등에 올린다. 강지웅 노조 사무처장은 “이번 파업에서는 바뀐 매체 환경 덕을 보고 있다. 새 매체 환경이 파업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고 고통을 상쇄시켜준다”라고 말했다. 흔히 파업에는 두 가지 고통이 따른다고 한다. 무임금에 따른 생활고와 무노동에 따른 스트레스다. 특히 파업 언론인으로서는 제보가 잇따르는 ‘선거 대목’을 지켜봐야 한다는 괴로움이 크다. 지금은 대안을 찾았다. 팟캐스트·유튜브·SNS를 통해 오히려 과거에 취재하지 못했던 내용을 성역 없이 내보낸다고 강씨는 말했다. 실제로 ‘국정원으로부터 사찰을 당했다’고 고백한 김미화씨는 〈제대로 뉴스데스크〉와 단독 인터뷰를 한 이유에 대해 “노조에서 하는 뉴스이니 내용이 편집당할 일은 없겠다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라고 말했다. 


여당이 총선에 이길 경우 대선까지?

그렇다고 마냥 〈제대로 뉴스데스크〉만 만들 수는 없는 노릇. 이들의 바람은 〈뉴스데스크〉를 비롯한 각종 방송을 ‘제대로’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파업이 계속될까? 일단 노사 모두 4월11일 총선 결과를 주목하고 있다. 여야 간의 정치 지형도가 어떻게 형성되는가에 따라 노사의 행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 노조 간부는 “야당이 반수를 넘게 의석을 차지하면, 방문진 구성에 관한 법률 개정운동을 할 생각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MBC 전체가 휘청거리는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라고 말했다.

현재 MBC는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가 주식 70%, 정수장학회가 나머지 30%를 가지고 있는 구조다. MBC 사장 임명권은 방문진 이사 9명에게 있다. 방송통신위원장이 여당 인사 6명, 야당 인사 3명으로 방문진 이사진을 구성한다. 방문진 이사 임기는 3년으로 오는 8월9일 새 이사의 임기가 시작된다. MBC 노조에서 파업이 8월까지는 이어질 것이라는 ‘8월설’을 말하는 건 이 때문이다. 김재철 사장이 버티는 한 8월에 새 이사진이 구성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노조 관계자는 “만약 여당의 우세로 선거 결과가 나올 경우에는 12월 대선까지 파업을 끌고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도 나온다”라고 말했다. 마땅한 출구가 없는 상황에서 노사 모두 장기전에 대비하면서 4·11 총선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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