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해적당’이 또다시 선거 기적을 일궈냈다. 지난해 9월 베를린 시의회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지방의회에 진입한 해적당은 3월25일 자를란트 주의회 선거에서도 7.4%의 득표율을 얻어 의회 진출에 성공했다. 기성 정당인 자민당(FDP)이 의회 진입에 필요한 득표율(5%)에 미달한 1.2%를 얻어 침몰한 데 비해, 해적당은 무(無)에서 시작해 단번에 7% 선을 훌쩍 뛰어넘는 지지율을 얻어 의회 진입에 성공한 것이다. 이 선거에서 기민당(CDU)은 35.2%, 사민당(SPD)은 30.6%, 좌파당은 16.1%, 녹색당 5.0%를 각각 득표했다.

2006년 창당한 해적당은 처음에는 일부 인터넷 세대의 아마추어 정치 실험 정도로 취급받았다. 그러나 지난해 베를린 시의회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킨 이래 전국 규모로 당세가 급속히 확장되면서 기성 정당들도 더는 해적당을 ‘알맹이 없는 속 빈 정당’이라 평가절하하지 못하게 됐다. 독일에서 가장 보수적인 정치 지형을 보이는 바이에른 주에서도 해적당은 현재 5% 이상 지지율을 보이고 있어 내년도 주의회 선거에서 의회 진출이 확실해 보인다.


ⓒUwe Anspach자를란트 주의원으로 당선된 야스민 마우어러는 22세 학생이다.

해적당이 일군 기적의 배경을 독일 사회는 ‘정치의 변화’에서 찾는다. 해적당의 정강정책은 정치 투명성 제고와 시민참여 확대 등을 통한 정치 변화 및 ‘바닥 민주주의’를 기조로 삼고 있다. 나아가 인터넷의 자유 또한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는데, 이 대목에서 디지털 세대가 열광하는 것이다. 독일 제1공영방송 ARD는 이번 자를란트 주의회 선거에서 디지털 세대 유권자의 25%가 해적당에 표를 던진 것으로 조사·발표했다. 이들은 사민당·녹색당·좌파당 지지에서 해적당 지지로 태도를 바꾼 것으로 나타났다.

사민당·기민당·자민당·녹색당 등 기성 정당이 두려워하는 것은 오는 5월에 실시되는 노드라인베스트팔렌 주와 슐레스빅홀스타인 주 등 양대 주의회 선거에서도 해적당이 의회 진입에 성공하는 시나리오다. 이렇게 되면 해적당은 정치적 ‘쓰나미’가 되어 바이에른 주의회 선거에서도 의회 진입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로써 전국 정당으로 발돋움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독일 정치 지형에 커다란 지각변동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SNS 적극 활용, 디지털 세대 열광

해적당은 지난해 베를린 선거에서는 시의원 15명, 이번 자를란트 선거에서는 주의원 4명을 배출했다. 네 명 주의원 당선자 중 한 명이자 주 당 대표인 야스민 마우어러 씨는 22세로, 아직 학생 신분이다. 그녀는 태권도를 익힌 전력도 있다. 그 외 3명도 인터넷 소프트 개발자나 회사원 등 소시민이라 할 만하다. ‘신선함’과 ‘신뢰감’으로 무장한 이들의 선거운동 무기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였다.

평소 투표장을 멀리하는 무투표 층과 기성 정당 혐오증을 지닌 학생·회사원·무당파 유권자들의 표심을 해적당이 이처럼 무섭게 잠식함에 따라 기성 정당에는 비상이 걸렸다. 당장 5월 지방선거를 앞둔 양대 지역 정당들은 해적당에 빼앗길 표를 어떻게 지키느냐로 선거 전략을 급히 수정하는 중이다.

해적당의 약진은 2013년 총선을 앞둔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는 호재가 될 수 있다. 해적당이 앗아가는 표가 대부분 좌파 진영 지지표여서 사민당·좌파당·녹색당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지금 해적당은 독일 정치의 주류 진입 문턱에 바싹 다가서고 있다.

기자명 뮌헨·남정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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