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삼선동 장수마을에서 마을기업 ‘동네목수’를 만들어 쓰러져가는 달동네 집을 고치기 시작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회사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주먹구구식이었다. 2011년 여름, 사업자 등록도 하기 전에 동네 사람들 데리고 집을 고친다고 했더니 사람들이 선뜻 일을 맡기려 들지 않았다. 솔직히 마을기업을 운영하는 나조차도 우리가 정말로 집을 고칠 수 있을까 의구심을 갖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일 터였다.

첫 번째 일은 김 목수 할아버지와 함께한 수도 공사였다. 김 목수 할아버지는 옛날에 건축업을 크게 해봐서 집 고치는 건 자신 있다고 큰소리를 빵빵 치는 사람인데 고관절 장애로 10년이 넘게 목발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이 어르신이 막상 작업에 들어가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는 표정으로 갸웃거리며 이리 만졌다 저리 돌렸다 하기 일쑤라 보는 사람 마음을 죄게 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김씨 할머니네 수도 공사를 한나절이면 끝낼 수 있다고 큰소리치던 김 목수 할아버지는 결국 사흘이 지나도록 끙끙대기만 했다. 그 와중에 욕심 많은 김 할머니가 요구하는 문고리며 손잡이며 이것저것 손보는 서비스까지 다 해주었다. 그러고도 일을 하다보면 원래 그렇게 되는 거라고 되레 큰소리치더니 사흘치 일당을 받아갔다. 우리가 시공비로 받은 것은 한나절 작업으로 계산해서 받은 게 다였는데 말이다. 첫 공사부터 손해를 본 셈이다(물론 일하는 솜씨를 검증받지 못했기 때문에 김 할아버지의 일당은 보조로 일하는 잡부보다 적었다).


‘땅콩 할아버지’ 부부네 화장실 변기 공사. 이후 한동안 시공 의뢰가 들어오지 않았다.

한동안 시공 의뢰도 들어오지 않아

두 번째 일은 몸집이 아담한 땅콩 할아버지 부부의 화장실 변기 교체였다. 무릎이 부실해져 쪼그려 앉는 걸 힘들어하는 할머니를 위한 할아버지의 애틋한 요청이었다. 이번에는 경로당에 방치돼 있던 헌 변기를 찾아낸 이씨 할아버지가 나섰다. 기술자는 아니지만 웬만한 일은 전부 자기 손으로 해냈으니 믿고 맡겨보라고 큰소리를 치는데, 어차피 변기도 새것이 아니니 솜씨가 부족해도 크게 문제 되지는 않겠다 싶어서 일을 맡겼다. 대신 시공비조로 약간의 수고비만 땅콩 할아버지 부부가 이씨 할아버지한테 직접 주시라고 했다. 이씨 할아버지 실력을 확인한 적이 없으니, 마을기업이 공식적으로 맡았다 일이 잘못되면 회사 이미지가 실추될 것을 우려한 나름의 꼼수였다.

이씨 할아버지는 더운 여름날 비좁은 화장실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난쟁이들만 쓰는 화장실이라고 툴툴거렸다. 땅콩 할아버지 부부는 자기들한테는 적당한 크기라며 허허 웃었다. 그렇게 변기를 뜯다가 낡은 수도배관이 부러졌다고 부품을 사러 건재상까지 왔다 갔다 하더니 이번에는 변기 부속이 안 맞는다며 또 건재상을 들락거렸다. 꼬박 이틀에 걸쳐 어찌어찌 끝내고 보니 화장실이 워낙 좁아서 사람이 들어가면 문을 닫을 수가 없다. 이씨 할아버지는 할멈·영감끼리 사니까 그냥 문을 열어놓고 일 보시라고 눙치고 넘어간다. 실내도 아닌 실외에 있는 화장실인데, 비 오는 날이나 겨울에는 어쩌라고…. 아무튼 그렇게 공사는 끝났고, 땅콩 할아버지는 맘에 차지 않지만 이래저래 고생을 했으니 어쩔 수 없다고 재료비와 수고비로 12만원을 이씨 할아버지한테 건넸다. 며칠 뒤 변기 물이 잘 안 내려간다고 하여 이씨 할아버지는 또 하루를 더 변기와 씨름해야 했다. 땅콩 할아버지 부부는 이씨 할아버지의 변기 교체 실력을 골목길에 쫙 퍼트렸다. 그 덕분에 꼼수를 부린 보람도 없이 한동안 시공 의뢰가 들어오지 않았다. 참 눈물 나는 출발이었다(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기자명 박학룡 (마을기업 ‘동네목수’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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