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그 남자는, 혼자서 작업실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또 가능하면 혼자 있는 시간을 늘리려고 노력하면서 짜장면이나 짬뽕을 자주 먹게 되었다. 세상엔 혼자 먹기 편한 음식이 많지 않은데 짜장면과 짬뽕은 혼자 먹기 편하고, 혼자 먹어도 덜 부끄러운 음식이 아닐까 싶다. 짜장면이나 라면, 카레 같은 것은 혼자 먹기 편한 음식이다. 뭐 별로 부끄럽지 않다.
하지만 반대로 절대 혼자 먹으면 안 되는 음식도 있더라. 혼자 먹기 ‘그런’ 음식은 단연 곱창이 아닌가 싶다(곱창에 1등 준다). 언젠가 그 남자는 혼자 곱창 먹기에 도전했다가 너무 부끄러워서 빨리 먹고 나갈 요량으로 고개를 숙이고 먹기에만 집중했더니, 곱창가게 주인아주머니께서 다가와 1인분을 더 얹어주며, “젊은 사람이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많이 먹고 기운내” 하시는 바람에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찌되었든 그래서 그 남자는 요즘 짜장면을 많이 먹게 되었는데, 다들 아시다시피 짜장면이란 것이 배달 전문점의 것은 왠지 좀 꺼려지고 먹고 나서도 속이 더부룩하고 뭐 그런 경향이 있더라. 작업실에서 음식 냄새 나는 것도 싫고(꽤 깔끔한 편이다), 하루에 잘해야 한 끼, 두 끼 먹는데 짜장면을 먹더라도 좀 맛있는 걸 먹고 싶은 생각에 꽤 헤매고 다녔다. 하지만 홍대 부근이라는 특수성 때문인지(학교 앞 음식이야 기본 콘셉트가 질보다는 양 아니겠는가?) 격조 있는 짜장면집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심지어 어떤 집은 짜파게티를 불려서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싶은 집도 있었다.
그 남자는 짜파게티가 짜장면의 대용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다. 그 둘은 전혀 다른 음식이다. 짜장면은 그 남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가장 특별한 날 특별하게 먹는 음식이었다. 어디 감히 일요일 낮 먹을 것 없을 때 먹는 짜파게티 따위가 짜장면을 코스프레하는 것이냐? 아, 그립다. 나이키 운동화에 오렌지주스에 짜장면을 먹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부자의 상징이며 부르주아의 위세였던 시절….
여하튼, 그렇게 중국집을 찾아 헤매던 차에 작업실 뒤쪽으로 있는 조그마한 중국집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이름은 동보성. 뭐 중국집 이름 중 가장 흔한 이름일 법한 그런 집인데, 배달을 하지 않으며 홀에서만 주문을 받아 음식을 만들어낸다. 가끔 홀의 주인아주머니와 주방 아저씨가 중국말을 하는 것으로 봐서 화교임이 틀림없어 보였다. 약간 매콤한 느낌의 짜장면이 이 집 특징인데 고춧가루를 뿌리는 것은 아닌 듯하다. 먹을 때마다 늘 물어봐야지 하면서도 자꾸 잊게 된다.
살갑게 장난치던 중년 남자와 사내아이
그날도 그 남자는 그곳에 가서 짜장면을 시켜 먹고 있었다. 거의 다 먹어갈 무렵 초등학생쯤 되는 사내아이와 중년의 남자가 들어와 짜장면을 두 개 시키고선 살갑게 장난을 치며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둘의 모습이 보기가 좋아서 짜장면을 다 먹고도 물컵을 만지작거리며 한참이나 힐끗힐끗 훔쳐보았다.
그건 뭐랄까…, 그 남자도 갑자기 아버지가 그리워졌다고 할까? 그 중년의 아버지는 다소 남루했지만 아버지의 냄새가 나는, 참 푸근한 모습이었고 그 모습을 보는 그 남자는 영락없는 초등학생 소년 같은 눈빛이었다면 믿으실까들.
문득, 그 남자에게도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다행스러우면서 또 한편으론 더 이상 그 남자의 아버지는 저 중년의 사내처럼 아버지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울컥했다(미안하다. 요즘은 삶이 신파인지 자주 이런다). 건장한 체격, 아마 아이의 눈으로 보았다면 아버지의 어깨는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고 넓은 어깨였으리라. 아이만 한 시절에는, 그 남자도 그 남자의 아버지를 그렇게 바라보았으니 말이다.
생각해보니, 아버지가 더 이상 짜장면을 사주지 않으시면서, 나도 아버지에게 짜장면을 사달라고 조르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어깨는 허물어져 내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중년 사내와 어린아이를 보면서 아! 그 남자는 괜히 늙은 아버지에게 짜장면을 사달라고 전화를 하고 싶어졌다. “아버지, 짜장면 좀 사줘요.” 아! 아버지 그리운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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