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구세주가 아니었다.”

부리부리한 눈매, 날카로운 턱, 짧게 자른 머리…. ‘테러리스트’답게 심상찮은 풍모를 지닌 민종운씨(36)가 얕은 한숨을 토해내듯 말했다. 그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 법률상 보복범죄 등의 혐의로 지명수배 중이다. 도피 생활 9년 만에 깨달은 것은 자신이 20여 년 가까이 구세주로 모시던 이가 사이비 교주에 불과했다는 사실이었다. 검찰에 자수하기로 결심했다는 민씨를 3월13일 만났다.

민씨가 말하는 구세주는 JMS(기독교복음선교회) 정명석 총재다. 기독교 선교 단체를 표방하며 1982년 출범한 JMS는 1990년대부터 정 총재의 성 추문으로 논란에 휩싸였지만 민씨에게 정 총재는 가족이나 생명 이상이었다.


ⓒ시사IN 조우혜JMS 반대자를 폭행하고 9년간 도피 생활을 한 민씨.

사건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7월, 홍콩 이민국 경찰은 반(反)JMS 그룹인 ‘엑소더스’ 회원들의 제보로 홍콩에 숨어 있던 정명석 총재를 체포했다. 여성 두 명과 누워 있던 정 총재가 화들짝 놀라는 장면이 찍힌 영상은 한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으로 퍼졌다. 이후, 정명석 총재는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 신도들을 질책했다고 한다. 민씨는 정 총재가 “(엑소더스 회원) 집 앞에서 한 달간 번데기·호떡 장사를 해봐라. 한번은 사먹지 않겠느냐. 독을 넣으면 되잖아”라고 말했다고 회고했다.

그로부터 한 달여 뒤 JMS 신도 남성 네 명이 당시 서울 사당동에 위치한 엑소더스 사무실에 난입해 집기를 부수고 회원 두 명을 폭행했다. 우연하게도 그 현장에 신호철 〈시사IN〉 편집위원(당시 기자)이 있었다. 취재 중이던 신 전 기자도 전치 2주의 상처를 입었다.

폭행 사건은 계속됐다. JMS 교단회장이던 문 아무개씨와 자칭 JMS 일인자 김 아무개 목사가 몇몇 신도에게 엑소더스 회원을 ‘손봐줄 것’을 지시한 것이다. 2003년 10월 김 목사는 민씨에게 “아직 가정이 없는 데다 초범이니, (감옥에서) 얼마 안 살고 나올 수 있다”라며 당시 전북 전주에 거주하던 엑소더스 회원 김형진씨(당시 26세)를 ‘처리’할 것을 교사했다.

얼마 후, 충남 금산 JMS 본부에서 만난 JMS 경호부 소속 이영호씨(가명·당시 26세)도 김 목사와 같은 부탁을 했다. “우리 선생님은 구세주다. 아버지보다 더 위대하신 분인데 가만있을 수 있느냐.” ‘전주 테러’에는 이씨와 민씨를 비롯한 신도 다섯 명이 가담했다.

2003년 10월26일 밤 8시, 사건은 벌어졌다. 이들은 김형진씨가 살던 빌라 안과 밖에서 기다리던 중 김씨가 집에 들어서자 파이프로 머리를 가격했다. 손과 얼굴에 피가 낭자했다. 이웃 주민과 눈이 마주친 JMS 신도들은 빌라를 빠져나왔다. 그 와중에 이씨가 “선생님이 정말 좋아하실 거야”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김씨가 입은 부상은 다행히 전치 3주에 그쳤다. 당시, JMS 내부에서는 이씨가 정 총재의 직접 교사를 받은 장본인이며 ‘전주 테러’는 경호부를 통해 은밀히 내려온 지시라는 소문이 돌았다.

민씨의 도피 생활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민씨가 본래 살던 광주 지역 목사들은 수사망이 좁혀지고 있으니 숨어 지내라고 지시했다. 피의자 넷은 인천 영종도 원룸에서 석 달간 합숙했다. 광주로 돌아온 뒤에는 가명을 썼다. 그때부터 2012년 현재까지 9년째 민씨는 민종운이 아닌 ‘정주만’으로 살아왔다. 2004년 9월, 느닷없이 해외로 도피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김치공장·떡공장을 전전했다. 6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숨어 다녀야 하는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폭행 사건에 가담한 이들에게 특혜

2006년 5월, 공범 이씨가 긴급 체포됐다. 그는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이씨가 경찰에 공범들의 인적사항을 말하면서 민씨를 비롯한 피의자 세 명에 대한 지명수배도 시작됐다(나머지 한 명은 이씨가 이름을 달리 밝혀 수배에서 제외됐다). 서른 살이던 민씨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안양·충주·서울 등지 교회를 떠돌았다. 통장과 휴대전화, 신분증도 쓸 수 없었다. 그래도 기도는 빼먹지 않았다. 대학부 성경공부를 가르치기도 했다. 민씨는 “도중에 잡혔다간 주님(정 총재)께 부끄러운 일이었다. 이 시간만 지나면 JMS에서 크게 쓰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반JMS 폭행 사건에 가담한 이들에 대한 보상은 컸다. 2003년, 엑소더스 사무실 난입 주도자 김 아무개 목사는 대형 교회 목회자로 발령받았다. JMS 내부에서 위상이 높아지면서 회원들의 상당한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전주 테러’ 피의자 가운데 유일하게 복역을 마친 이씨도 현재 JMS 2인자 정 아무개씨의 최측근 경호를 맡고 있다고 한다. 


ⓒ시사IN 윤무영2003년 서울 방배경찰서 앞에서 반JMS 단체 회원들과 JMS 신도들이 승강이를 벌이고 있다.

‘전주 테러’ 사건이 일어나고 사흘 후 발생한 ‘용인 테러’ 가담자들도 마찬가지다. 당시 JMS 신도 몇몇은 경기도 용인에 살던 엑소더스 회장 김도형씨를 찾아 나섰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자 도형씨 아버지 김민석씨(당시 63세)를 폭행했다. 이 사건으로 김민석씨는 얼굴뼈가 함몰되는 중상을 입었다. ‘용인 테러’ 피의자 다섯 명은 징역 4∼5년을 선고받았다. 여러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이들은 복역 중에 JMS로부터 매달 300만원가량을 받았다고 한다. 범행을 주도한 장 아무개씨는 출소 후 JMS 인사국장을 거쳐 현재 서울의 한 대형 교회 목사로 있다. JMS가 의도적으로 보복을 주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민씨는 “‘용인 테러’는 교단회장 문 아무개씨의 지시로 윤 아무개씨가 실제 조직했다. 또 ‘전주 테러’는 김 아무개 목사가 지시했다. 그러나 수사에서 이들의 이름은 아예 빠져 있었다”라고 주장했다. 일종의 꼬리 자르기로, 현장에서 범행에 가담한 평신도들만 죗값을 치렀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JMS 관계자는 〈시사IN〉 기자와의 통화에서 “모든 폭행 사건은 신도들이 우발적이고 자발적으로 자행한 일이다. 위대한 영도자에게는 원래 안티가 생기기 마련이다”라고 밝혔다.

지난 9년간 민씨는 3∼6개월씩 여관과 고시원, 교회 등지를 떠돌았다. 어떤 날은 온종일 기도만 하기도 했다. 그러나 기도를 하면 할수록 ‘구원받기 위해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하나’ ‘예수님이 정말 이런 분일까?’ 하는 의구심이 커져갔다고 한다. 지난해 9월, 정 총재가 구세주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주일을 뜬눈으로 보냈다. 충주의 한 고시원 부엌에서 35㎝짜리 식칼을 들고 가만히 서 있기도 했다. 온종일 자살 충동이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1년 2월에 만료되리라 기대했던 공소시효는 검사 직권으로 10년 더 연장된 상태였다. 범죄자로 숨어 지내는 사이 그의 20대는 훌쩍 지나가버렸다. JMS를 탈퇴하며 시작한 회개기도와 금식이 3월13일로 19일째라는 민씨는 “얼른 죗값을 치르고 새 인생을 살고 싶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기자명 주진우·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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