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선이 한 달 남짓 남았다. 선거운동이 정점을 향하면서 후보마다 차별화된 정책을 제시하며 유권자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전략적으로 가장 늦게 선거전에 뛰어든 사르코지는 최근까지 설문조사에서 사회당 후보인 프랑수아 올랑드를 앞서지 못했다. 변화를 주장하는 올랑드의 선전에 밀리면서 사르코지가 프랑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재선에 실패하는 유일한 대통령이 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이 나오기도 했다(사르코지는 프랑스 제5공화국의 여섯 번째 대통령이다).

다급해진 사르코지 진영은 폭탄 세례와도 같은 정책을 연일 쏟아내며 역전을 꾀하고 있다. 그런데 변화무쌍하게 내놓는 정책들에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정치색까지 버리겠다는 식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급해진 것이다.

사르코지가 내놓은 첫 번째 카드는 전통적으로 선거 때마다 거론돼온 인종 문제다. 이는 극우파 마린 르펜을 지지하는 보수층의 분리·흡수를 노린 것으로 양상은 2007년 대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2월 〈피가로〉 인터뷰에서 클로드 게앙 내무장관은 만일 프랑스에서 외국인에게 투표권을 부여한다면 학교 식당에 ‘할랄’ 메뉴가 등장할 것이고, 부르카(이슬람 여성들의 전통 복장)를 착용하는 여성들을 위한 수영장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할랄’은 이슬람 율법에 따라 도축한 육류 및 식품을 말한다.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또한 일드프랑스(파리의 대도시권) 지역에서 공급되는 고기는 할랄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거들었다.


ⓒAP Photo3월11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빌팡에서 열린 유세 집회에 참석했다. 프랑스 대선 1차 투표는 4월22일 열린다.

인종 문제 내세워 극우표 흡수

여기에 사르코지가 합세하고 나섰다. 보르도 연설에서 작심한 듯 프랑스 국민은 자신이 먹는 음식이 할랄인지 아닌지 알 권리가 있다며 프랑스 음식 문화는 프랑스 전통을 따라야 한다고 발언한 것이다. 이는 사회당 후보인 올랑드 진영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올랑드는 프랑스 학교 식당에 다양한 메뉴가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로써 할랄 논쟁은 프랑스 대선의 첫 번째 이슈로 떠올랐다. 덕분에 사르코지는 프랑스 사회에서 민감한 사안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는 이슬람 문제와 관련해 반이슬람 견해를 내세움으로써 극우 보수파를 품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경제위기·실업 문제·국가 부채 등 프랑스 사회의 심각한 현안이 할랄 논쟁으로 희석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3월11일 자신의 지지자들이 모인 빌팡 유세에서 사르코지는 솅겐조약 참여를 중지하겠다고 발언했다. 솅겐조약은 유럽연합을 비롯해 협정에 참여한 국가의 국민에게 국가 간 통행 자유를 허용하는 조약이다. 사르코지는 외국인이 이 협정 덕분에 자유롭게 프랑스를 왕래하며 프랑스 사회보장제도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1년 안에 합법적인 이민자들을 막기 위해 국경을 통제하는 보호주의 정책을 유럽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솅겐조약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그런데 솅겐조약 참여 중지는 유럽연합에서 탈퇴하겠다는 의미다. 그런 만큼 이 발언은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Reuter=Newsis프랑스 리옹 거리의 광고판에 누군가 ‘할랄’을 비꼬는 낙서를 적었다.

사르코지의 파격 행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솅겐조약 참여 중지 발언에 이어 이번에는 해외 근무자들에게 세금을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부자 감세 정책으로 비판을 받아왔던 사르코지는 세금을 내지 않는 해외 파견 주재원이나 기업가에게 세금을 매기겠다고 말해왔다. 이로써 얻은 5억 유로(약 7300억원)를 국가 살림에 보태겠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당 후보인 올랑드가 부자들 소득의 최대 75%를 세금으로 부과하겠다는 정책에 대응하는 전략이다. 사르코지 측은 올랑드의 부자 증세 정책이 부자들의 국외 망명을 부추기는 정책인 반면 자신이 제시한 해외 거주자 세금 부과는 이들을 다시 국내로 불러들이는 정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당·녹색당을 비롯한 다른 정당 후보들은 국적에 따른 세금 부과가 유럽연합 규정과 양립할 수 없다며, 이를 사르코지의 기만이라고 비판했다.

솅겐조약 참여 중지, 해외 거주자 세금 부과 등 사르코지가 최근 제기한 이슈들을 보면 선거 때마다 등장해온 인종 문제는 차라리 고전적인 편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사르코지가 자신의 정치 노선을 뒤집는 폭탄 발언을 서슴없이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파격은 두 가지를 노린 것으로 분석된다. 먼저 지난 5년 동안 실패한 자신의 정책을 계속 밀고 나갈 수 없는 사정이 존재한다. 그래서 재선에 도전하는 대통령 후보라기보다 첫 선거에 임하는 후보 같은 이미지를 내세우기 위해 도발적인 정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이슈가 될 만한 발언을 내놓아 다른 후보들이 이에 반응하도록 유도하려는 것이다. 이는 선거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전술이라고 볼 수 있다.


해외 거주자 세금 부과, 현실성 있나

커뮤니케이션과 대중의 심리 파악에 능수능란한 사르코지의 이 같은 전술은 조금씩 먹히기 시작했다. 그 예로 최근 설문조사에서 사르코지가 처음으로 사회당 후보인 올랑드를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3월13일 여론조사 기관인 이포프에 따르면 사르코지는 2월26일에 비해 1.5% 포인트 앞선 28.5% 지지율을 보였다(1차 투표 기준). 반면 올랑드는 1.5% 포인트 하락한 27%를 기록했다. 그간 선두를 지키던 올랑드를 사르코지가 처음으로 추월한 것이다. 하지만 2차 결선 투표의 경우 올랑드가 54.5%, 사르코지가 45.5%로 나타났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올랑드의 지지율은 조금 하락한 반면 사르코지는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사르코지의 빌팡 연설에 대해 프랑스인의 3분의 2가 공감하지 못했다는 설문조사도 나왔다. 전체 응답자 가운데 65%는 연설 내용이 와 닿지 않았다고 답했다. 또 빌팡 연설을 보거나 들은 프랑스인 가운데 64%는 대선 후보자로 나선 사르코지의 이미지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2007년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며 대중을 사로잡는 언변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사르코지, 그의 뛰어난 재능은 변함이 없지만 5년 동안의 실정이 씻길지는 미지수다. 단, 프랑스에서는 지금까지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이 없다. 이처럼 보수적인 프랑스 사회에서 이변이 나올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기자명 파리·최현아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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