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9일 오전 10시30분. 법복을 입은 판사님이 한 단 높은 판사석에 앉아 계시고, 왼쪽에는 자료더미에 쌓인 무미건조한 표정의 검사님 두 분이, 오른쪽에는 정장을 갖춰 입은 피고인 박정근씨와 역시나 쌓인 자료를 면전에 두고 앉은 변호사님 두 분이 계셨다. 방청석을 가득 메운 이들 앞에는 경위가 서 있다. 어디에도 웃음이 허용되지 않는 이곳은? 그렇다, 신성한 법정이다.

피고인 박정근씨는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첫 재판을 받았다. 자신의 트위터에 북한을 찬양하고 고무하는 내용을 올리고 리트윗했다는 혐의다. 재판은 ‘형사소송법상 토지관할 규정’이라는 어려운 말로 시작했다. 쉽게 말하자면 서울시 강동구 암사동에 살고 일을 하며 트위터를 했던 박씨가 왜 수원에서 재판을 받느냐는 변호사의 일침이었다. 재판에 어울릴 듯한 논리정연하고 차가운 말투였다. 법정에는 긴장감이 돌았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이광철 변호사는 이것이 북한의 대남적화 전략을 담은 트위터냐고 반문하며 그 내용을 몇 가지 읽었다. “2010년 11월, 장군님 빼빼로 사주세요. 나의 사랑, 너의 사랑, 김정일.” 순간 방청석에서 폭소가 터졌다. 엄숙함은 무너졌다. 감히, 법정 가득 웃음소리가 채워졌다. 당황한 경위들의 째려봄에도 한번 터진 웃음은 쉬이 잦아들지 않았다. 박정근씨도 고개를 숙였다. 웃음을 참는 모습이었다.

박씨의 트위터 멘션 7만여 건 중 북한 찬양·고무가 의심된다는 멘션 229건을 문제 삼은 검찰에 맞서 변호인단은 북한을 조롱·풍자하는 멘션 500여 건을 출력해오는 꼼꼼함을 보였다. 공소장에 나와 있는 문제의 ‘이적물’을 컬러본으로 출력해오는 세심함도 잊지 않았다. “이게 흑백으로 보면 찬양 같은데요, 실제로 컬러로 나온 건 이겁니다.” 변호사의 손에 쥐어진 김일성 주석은 영화 〈친절한 금자씨〉 포스터를 합성한 패러디물이었다.

“개콘보다 재미있다”라는 방청객들의 평가를 받은 첫 재판은 이렇게 끝났다. ‘김일성 ST 진초록색 코트’를 골라 입은 박씨가 재판정을 나오면서 남긴 소감 한마디. “제가 쓴 거긴 한데, 법정에서 들으니깐 웃기긴 웃기더라고요. 웃음 참느라 힘들었어요.” 다음 재판도 대폭소 예감, ‘커밍쑨’ 4월18일 오전 10시.

기자명 김은지 기자 다른기사 보기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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