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니가 KO 펀치를 날리진 못했다.”

올가을 미국 대통령 선거의 공화당 후보를 가리는 예비 경선이 3월6일 화요일 10개 주에서 동시에 치러진 다음 날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가 선두인 밋 롬니 후보(65)를 두고 한 말이다. 10개 주에서 동시에 예비 경선이 치러져 ‘슈퍼 화요일’이라고 명명된 이날, 롬니는 그토록 갈망하던 오하이오 주를 비롯해 6개 주에서 승리했지만 완승이 아닌 절반의 승리만 거뒀다. 남부의 핵심 교두보라 할 수 있는 조지아 주에서 국회의장 출신인 뉴트 깅리치 후보(68)에게 패했고, 중남부 오클라호마 주와 중동부 테네시 주, 그리고 중서부 노스다코타 주에서는 펜실베이니아 주 연방 상원의원을 지낸 릭 샌토럼 후보(52)에게 패한 것이다.

당초 롬니는 슈퍼 화요일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둔 뒤 전선을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로 이동시킬 계획이었다. 하지만 슈퍼 화요일은 다른 후보들에게 도중하차가 아니라 재충전할 기회를 제공했다. 이런 추세라면 제럴드 세이브 〈월스트리트 저널〉 워싱턴 지국장이 지적한 대로 현재의 경선은 공화당 지도부가 가장 우려하는 ‘소모전’이 될 게 확실하다.


ⓒAP Photo3월6일 밋 롬니 후보(가운데)가 보스턴에서 열린 예비 경선에서 지지자와 악수하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 나온 경선 결과만 놓고 보면 올해 공화당 대선 후보로 가장 근접한 사람은 롬니다. 대의원 현황을 보면 롬니가 지금까지 415명을 확보해 2위인 샌토럼(176명)을 2배 넘게 앞질렀다. 깅리치는 105명, 폴이 47명이다. 이처럼 롬니가 경쟁 후보에 비해 압도적으로 대의원 수를 확보한 것은 틀림없지만 후보 확정에 필요한 1144명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만큼 갈 길이 멀다는 뜻이다.


오하이오 주에서도 아슬아슬한 승리

당초 롬니는 슈퍼 화요일에서 압승해 샌토럼을 비롯한 다른 후보들의 자진 하차를 유도한 뒤 공화당 유권자들에게 자신만이 오바마를 누를 수 있는 가장 준비된 후보라는 점을 한껏 과시할 태세였다. 그런데 이런 야심찬 계획이 이번 예비 경선의 가장 큰 접전지이자 관심 지역이었던 오하이오 주에서부터 무너졌다.

롬니는 오하이오 주에서 샌토럼을 꺾기는 했지만 37.9% 대 37.1%로 그 격차가 고작 0.8% 포인트에 불과했다. 말이 승리지 거의 무승부나 다름없었던 셈이다. 오하이오 주는 비록 대의원 수 63명으로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전통적으로 공화·민주 양당을 번갈아가며 지지하는 이른바 ‘스윙 주(swing state)’에 속한다. 따라서 올해 11월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치러질 의회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승리하려면 반드시 이겨야 할 주이기 때문에 정치적 상징성이 매우 크다. 이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오하이오 주 경선에서 이기는 후보가 공화당 대선 후보로서 ‘적자’ 자격을 갖추게 된다. 비록 신승이긴 해도 샌토럼을 꺾은 롬니는 그런 점에서 적자 자격을 먼저 딴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롬니가 안심할 처지는 전혀 아니다. 롬니는 탄탄한 선거 조직과 풍부한 선거자금, 여기에 더해 천문학적 자금을 바탕으로 외곽에서 그를 돕는 후원 조직인 ‘우리의 미래회복’의 맹활약 덕분에 일찌감치 다른 후보들을 제치고 선두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권 재수생인 롬니가 최종 후보로 낙점되려면 극복해야 할 장애물과 취약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저명한 보수 언론인인 찰스 크라우새머가 폭스뉴스 방송에 출연해 “롬니는 매주 더 강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취약해지고 있다고 본다”라고 지적한 것도 그래서다.

먼저 조지아 주와 테네시 주 경선 결과가 보여주듯 롬니는 보수 유권자와 기독 유권자가 집중된 남부에서 본질적인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는 조지아 주에서는 고작 25.9%, 테네시 주에서는 28%를 얻는 데 그쳤다. 롬니 열세의 원인은 종교 문제와 보수주의자로서의 정체성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지역의 정통 기독 유권자들이 롬니가 모르몬교도라는 사실을 못마땅하게 보고 있다는 점이 이번에 다시 드러났다는 관측도 나온다(보수 기독교는 모르몬교를 이단으로 간주한다). 롬니는 당장 3월13일에는 미시시피·앨라배마 주에서 경선을 치르게 돼 있다. 3월24일에는 루이지애나 주에서도 경선이 예정돼 있다. 3월 한 달 남부 3개 주에서 격전을 치러야 한다. 그는 이미 지난 2월 골수 남부 주인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 깅리치 후보에게 대패한 바 있다. 반면 깅리치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이어 조지아 주에서도 승리하면서 ‘남부 전선’에 대한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 있다.


흑색선전의 악순환 이어진다면…

롬니가 과연 공화당의 이념과 가치를 대변할 수 있는 ‘정통 보수주의자’이냐 하는 문제도 롬니의 표를 갉아먹는 요인이다. 그의 정체성에 회의를 품는 보수 유권자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이들은 과거 그가 매사추세츠 주지사로 있을 때 민주당 오바마 행정부가 최고 국정 과제로 내건 의료보험 개혁안을 지지한 점을 꼽는다. 어떤 면에선 바로 이런 점 때문에 공화당 쇄신에 견인차 구실을 해온 풀뿌리 정치조직인 ‘티파티’의 적극 지지를 끌어내지 못한 경향도 있다. 티파티가 우세한 남부의 보수 유권자들은 아직은 롬니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어디 남부뿐인가. 남부도 아닌 오하이오 주에서 롬니가 샌토럼에 고전한 이유도 따지고 보면 자신들을 ‘아주 보수적’이고 ‘기독교인’이라고 응답한 35%에 달하는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샌토럼은 이런 유권자들에게 자신이야말로 롬니를 대신해 오바마를 무찌를 수 있는 자생력 있는 후보라며 적극 호소 중이다.

롬니가 뭔가 돌파구를 마련하려면 보수 유권자층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지만 이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이들의 환심을 사려 하면 할수록 올가을 대선의 향방을 좌우할 무당파와 중도파 유권자들이 등을 돌릴 것이기 때문이다. 롬니의 고민을 보여준 최근 실례가 있다. 2월 말 어느 여대생이 자신이 다니는 대학 측이 제공하는 보험에 피임비용도 포함시켜달라고 요청하자 극우 방송인 러시 림보가 그 여대생을 가리켜 ‘매춘부’라고 매도해 뜨거운 사회 쟁점으로 떠오른 바 있다. 그런데도 롬니는 림보를 두둔하는 말을 일절 하지 않았다. 그를 편들어줄 경우 중도 성향·무당파 유권자들이 반발할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롬니의 장애물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그건 다름 아닌 경선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상호 비방과 흑색선전의 악순환 고리를 어떻게 끊느냐 하는 문제다. 사실 지금까지 롬니가 승승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비결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런 악순환과 직결돼 있다. 자신의 선거 진영은 물론이고 독립적 후원 조직인 ‘우리의 미래회복’이 접전 지역에서 막대한 자금을 퍼부으며 상대 후보를 비방하거나 공격하는 라디오·텔레비전 광고를 취해왔기 때문이다.

한 예로 롬니 측이 슈퍼 화요일을 일주일 앞두고 퍼부은 광고액이 무려 700만 달러(약 78억원)에 달했다. 특히 오하이오 주에서 샌토럼의 인기가 치솟자 롬니 측은 400만 달러(약 44억원)를 반(反)샌토럼 흑색광고에 투입했다. 문제는 롬니 측의 흑색선전에 다른 후보들이 맞장구치면서 현재의 경선이 추잡한 상호비방전으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공화당 지도부가 고민하는 대목도 바로 이 점이다. 후보들 간에 비방전이 오래 지속되면 될수록 누가 후보로 확정되든 상당한 타격이 불가피하고, 백악관 탈환의 꿈도 멀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과 NBC 방송의 여론조사 결과 지금과 같은 이전투구식 경선에 상당수 유권자, 특히 무당파가 혐오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게 보면 결국 롬니에게 최대의 적은 소모전에 따른 유권자들의 후보 기피증이 아닐까 싶다.

기자명 워싱턴·권웅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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