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20일 밤 11시쯤. 아프가니스탄 북부 도시 바그람. 미군이 주둔한 최대 공군기지 쓰레기 소각장에 미군 두 명이 나타났다. 그들은 덤프트럭에서 자루를 내려 불구덩이에 넣었다. 이 자루 안에는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미군이 선별한 서적들이 들어 있었다.

바그람에는 미군과 연합군이 잡아들인 죄수를 수감하는 수용소가 있다. 이 수용소에 있던 죄수들이 소지한 서적 중 일부는 극단주의 메시지가 들어 있다는 이유로 압수 또는 소각 대상이 되곤 한다. 수감자 간 메시지 교환이나 수감자 조직화에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번에 미군이 수감자 서적 가운데 위험하다고 판단해 골라낸 책은 모두 1652권이었다. 이 책들은 코란과 각종 종교서적을 비롯해 개인적으로 수감자들이 읽던 소설과 시집이 대부분이었다. 그 밖에 여백에 손으로 쓴 현지어가 있는 경우 ‘위험한’ 책으로 선별되었다. 하지만 〈뉴욕 타임스〉는 이 책에 쓰인 글귀가 대다수 단순한 낙서이며, 테러와는 무관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AP Photo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동부에 있는 잘랄라바드 공항에서 2월27일 폭탄 테러가 발생했다.

두 미군은 이렇게 선별된 ‘위험한 책’들을 태우려고 쓰레기 소각장으로 온 것이었다. 이는 미군 복무규정상 이상할 것이 없는 행동이었다. 문제는 이 자루에 들어 있던 책 가운데 코란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운 나쁘게도 이 코란이 불타고 있는 것을 바그람 기지 안에서 일하던 아프간 현지 노무자들이 발견했다.

아프간 사람들에게 코란은 ‘목숨을 걸고라도 지켜야 하는 성물’이다. 코란이 불타는 것을 본 아프간 노무자들은 흥분했다. 이들은 불타는 코란을 구하러 불구덩이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미 코란 10~15권이 완전히 탔고, 다수가 반쯤 타거나 표지가 불에 그을린 상태였다. 현장에 있던 아프간 노무자 자비훌라 씨(22)는 “내 눈을 의심했다. 내 생전에 코란이 불타는 것을 보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동료와 나는 코란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미군들은 멍하니 보고만 있었다”라고 증언했다.


미군 사망자도 7명

이윽고 아프간 노무자들이 “미국인들이 코란을 불태우고 있다”라며 휴대전화로 이 사실을 외부에 알리기 시작했다. 밤새 발 없는 말이 아프간 전역으로 달렸다. 사건이 벌어진 다음 날 아침, 소식을 들은 성난 아프간 사람들이 바그람 기지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사람들은 ‘미국에 죽음을! 오바마에게도 죽음을!’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돌이든 물건이든 손에 잡히는 대로 바그람 기지를 향해 던졌다. 일부는 자동차 타이어를 불태우고 미군기지를 향해 총을 쏘기도 했다. 미군의 코란 소각이라는 ‘신성모독’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시위는 아프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2월22일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는 격분한 시위대 500여 명이 시내 중심거리로 쏟아져 나와 미군기지를 향해 돌멩이를 던지며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일반 주민뿐 아니라 이들을 진압해야 하는 아프간 경찰과 군인들도 시위대와 한목소리를 내며 미군의 만행을 규탄했다. 군경 또한 이슬람 신자이기 때문이다.

시위가 그칠 줄 모르는 가운데 미군들이 피살당하는 불행한 사태가 이어졌다. 3월1일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 군기지에서 2~3명으로 이뤄진 괴한에게 미군 2명이 피살당한 것이다. 사살에 가담한 가해자 중 한 명은 아프간 군인이었다. 카불에서도 가장 안전하다는 내무부에서 미국 군사고문단 장교 2명이 내무부 직원으로 추정되는 20대 남자에 의해 살해된 사건도 있었다. 아프간 북부 쿤두즈 주에서는 무려 2만여 명의 시위대가 미군기지에 몰려들어 수류탄까지 던지며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 과정에서 수류탄 폭발로 미군 7명이 다쳤다. 미군기지에서 응사하면서 시위대 1명도 숨졌다. 아프간 동부 잘랄라바드에서는 1000여 명이 고속도로를 막고 시위를 벌였다. 이날 총기를 사용한 경찰의 시위 진압 과정에서 시위대 7명이 숨졌다고 아프간 내무부는 밝혔다. 현재까지 미군 사망자만 해도 7명에 이른다. 미국 대사관은 업무를 중단했다.

미국 처지에서는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규정대로 서적을 불태웠는데 하필 그 쓰레기더미에 코란이 있었던 것이 이렇게까지 큰 시위로 번질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이는 예정된 아프간 주둔 미군 철군 문제와도 맞물려 있다. 시위로 인해 탈레반 입지가 강화되면서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사건이 일어난 다음 날인 2월21일, 존 앨런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은 텔레비전으로 중계된 성명에서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나아가 국제안보지원군(ISAF)에 배속된 모든 외국군은 열흘 이내에 ‘성물에 대한 적절한 취급법’을 교육받을 것이라며 철저한 진상 조사 또한 약속했다. 백악관도 신속하게 ‘아주 불행한 사고’라며 오바마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서 사과를 하는 등 조기 진화에 나섰다.


ⓒAP Photo카불 동부 가니 카일에서 2월24일 미군의 코란 소각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미 타버린 코란을 되돌릴 수 없듯이 성난 아프간 민심도 되돌리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미국 공화당 대선 주자인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와 릭 샌토럼 전 상원의원은 오바마 대통령이 공식 사과한 것에 대해 맹렬히 비난했다. 롬니 전 주지사는 “미국은 아프간 국민의 자유를 위해 엄청난 기여를 했다. 이런 시점에서 사과를 하는 것은 미국 국민으로서는 지지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샌토럼 전 의원 또한 ‘대통령의 유약함을 보여준 실수’라고 주장했다. 미국 병사가 7명이나 사망했음에도 오히려 사과를 하는 오바마 대통령을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이번 사건은 미국과 아프간 사이에 얼마나 큰 문화적 거리감이 있는지 보여주었다. 아프간 민영 통신사 파지와크 통신의 샤미르 기자는 “이런 종류의 사건은 과거 미군이 아프간에 주둔하던 10년 기간 중 항상 있었던 일이다”라고 말했다.

대표적 예로 한 한국계 미군에 의해 시작된 축구 헬기 작전(Soccer Chopper Operation)이 있었다. 2007년 4월부터 미군은 아프간 동부 코스트 주 주변에서 헬기로 공을 싣고 비행하다가 지상에 어린이들이 보이면 축구공을 떨어뜨려주었다. 전쟁에 지친 아이들에게 축구공을 나누어주어 공을 차는 순간만이라도 가난과 시름을 잊고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려는 동기에서 비롯된 선행이었다.


“코란을 발로 차고 다니라니…”

그러나 이 축구공은 오히려 미군에 화근이 되었다. 미군이 나누어준 축구공에는 세계 각국의 국기가 도안되어 있었다. 아프간의 평화를 세계가 기원한다는 의미에서 축구공에 국기를 새겨넣은 것이다. 문제는 이 중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기도 있었다는 점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기에는 녹색 바탕에 하얀 글씨로 ‘샤하다’라고 불리는 이슬람 신앙고백 글귀가 적혀 있다. 샤하다는 “알라 외에 신이 없고, 마호메트는 알라의 예언자”라는 코란의 핵심 구절로 이슬람 신자라면 이를 매일 암송한다.

축구공에 이 샤하다가 들어 있으니 이는 아이들에게 성스러운 코란 구절을 발로 차고 다니라는 이야기가 돼버린 것이다. 미르와이스 야시니 아프간 의회 의원은 “발로 차는 물건에 코란 구절을 적는 것은 이슬람 신자들에 대한 큰 모욕이다”라며 분개했다. 다른 아프간 이슬람 지도자 또한 미국과 미군을 맹비난했다. 주민들의 시위도 일어났다. 사건이 커지자 미군 대변인은 “무례하게 보일 수도 있는 행동이었다”라는 사과 성명을 발표하며 간신히 민심을 달랬다. 비단 코란 소각 사건이 아니더라도 지난 10년간 미국과 아프간이 끝내 함께할 수 없는 평행선을 가고 있었던 것이다.

기자명 김영미 국제문제 전문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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