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9일 오전 11시, 제주 서귀포시 강정포구의 풍경은 여느 바닷가와 달랐다. 노란 형광색 옷차림을 한 경찰관들이 포구를 빼곡히 메우고 있었다. 고기잡이배보다 해경 보트의 움직임이 더욱 바빠 보였다. 카약 한 대와 함께 경찰에 에워싸인 활동가 도라씨는 별 미동이 없었다. 무릎을 두 팔로 감싼 채 포구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그녀. 곁에는 귤 4개, 떡 10개, 물이 담긴 보온병, 사탕 20여 개가 담긴 가방이 있었다. 이틀 전 해경의 눈을 피해 구럼비 바위에 진입한 활동가 3명에게 건네주려던 음식물이었다.

구럼비 바위는 길이가 800여m에 이르는 거대한 바위로 맹꽁이 등 멸종 위기종이 살고 있다. 이곳에서 주민들은 날마다 천주교 신부들과 해군기지 반대 미사를 진행한다. 하지만 해군이 2월 말부터 구럼비 해안에 철조망을 치고 출입을 금지하기 시작했다. 구럼비 해안은 공유수면으로 준공검사 전까지 인공구조물을 설치할 수 없는 곳이다. 2월20일에는 서귀포시가 ‘구럼비 바위에 출입금지 결정을 한 사실이 없다’고 강정마을회에 공식 통보했다. 그럼에도 해군은 출입을 통제했다. 계속되는 해군의 불법 행위에 항의하기 위해 강정마을 주민과 활동가들이 철조망을 넘어가려 했다.


ⓒ시사IN 허은선2월29일 구럼비 바위로 가려는 활동가들과 경찰이 대치하고 있다.

도라씨는 이날 새벽 6시30분, 카약을 타고 10분 거리에 있는 구럼비 바위에 가려 했다. 그러나 풍랑주의보를 이유로 들며 해경이 앞을 막아섰다. 아침 8시, 풍랑주의보가 해제되었고 그녀는 포구로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다른 이유로 저지당했다. 경찰관직무집행법 제5조(위험 발생의 방지)·제6조(범죄의 예방과 제지)가 근거였다. 도라씨는 ‘활동가 3명에게 먹을 것을 전달해야 한다’고 맞섰지만 소용이 없었다. 서귀포경찰서 관계자는 “철조망을 훼손할 염려가 있어 접근을 사전에 막았다. (이곳 활동가들의 주장은) 사고가 나면 벌금을 내면 되는데 왜 과속 운전을 막느냐는 식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도라씨와 경찰이 벌인 승강이는 강정마을에서는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2011년 해군기지 건설이 본격화하면서 싸움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활동가 김세리씨는 “상식과 비상식의 경계가 무너지는 모습을 하루에도 몇 번씩 본다. 일부 활동가는 미행과 도청도 당한다”라고 주장했다. ‘사유재산에 대한 재물 손괴죄’ ‘공유수면 매립 허가’처럼 어려운 단어들이 이미 마을의 일상어가 되었다. 경찰·해군과 자주 대치하게 되면서 이런 단어가 주민들의 입에 배었다.

2월 말부터 경찰과 주민 사이의 대립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2011년 7월 강정마을에 온  활동가 이종화씨는 “2월22일 이명박 대통령이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하겠다고 말하면서부터 긴장감이 높아졌다. 구럼비 바위 폭파가 눈앞에 다가온 듯하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해군기지를 언급한 다음 날인 2월23일, 해군은 구럼비 바위에 쇠심을 박고 철조망을 쳤다. 철조망을 밟고 넘어간 이들은 모두 경찰에 연행됐다. 2월26일 제주국제평화대회에 참가한 외국인 10명과 한국인 6명이 재물손괴 혐의로 연행됐다. 7시간 후 서귀포경찰서 앞에서 이들의 연행을 항의하던 고권일 강정마을 해군기지반대대책위원장 등 5명이 추가로 연행됐다. 2월27일에는 강정포구에서 카약을 타고 구럼비 바위로 가려던 주민 5명이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다 연행됐다. 활동가 유인식씨는 “최근 경찰과 대치를 자주 하는 바람에 마을에 연고와 반창고가 부족할 지경이다”라고 말했다.


옥중 단식 구속자 면회도 금지

강정마을회에 따르면 주민이 최초로 연행됐던 2010년 1월18일 이후 2012년 2월27일까지 경찰에 체포·연행된 이는 모두 329명이다. 혐의는 주로 경범죄와 업무방해였다. 강정마을의 인구는 약 1900명이다. 활동가 이종화씨는 “이곳이 서울이었어도 그랬겠나. 중앙 언론이 무관심하고 지켜보는 눈이 없으니 경찰의 과잉 진압이 일상화됐다”라고 말했다. 민주통합당 김재윤 의원(서귀포시)은 “경찰이 자의적으로 법을 해석해 무리한 공권력을 투입하고 있다. 강정은 준전시 상태에 돌입하고 있는 실정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귀포경찰서 경비과는 “진압할 것을 진압했기 때문에 과잉 진압이란 표현은 옳지 않다”라고 반박했다.

2월29일 정부가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속도를 내겠다고 발표한 이후 마을의 긴장감은 급속도로 고조되고 있다. 3월1일, 해군이 강정 앞바다에 바지선을 띄우고 준설 작업을 시작하자 한 활동가가 강정포구에서 투신을 시도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영화평론가 양윤모씨(56)의 옥중 단식은 3월2일로 24일째를 맞았다. 양씨는 1월30일 해군기지 건설 현장에서 업무방해 혐의로 체포돼 제주교도소에 구속 수감됐다. 제주교도소는 2월 말부터 수감자 중 양씨에 한해서만 기자의 면회를 금지하기 시작했다. 제주교도소 총무과 관계자는 “해군기지처럼 민감한 이슈를 언론이 부풀려 보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양윤모씨의 언론 접촉을 금지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면회를 금지하는 근거가 무엇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3월8일에는 보수 성향의 서경석 목사가 주도하는 ‘해군기지 건설촉구 시민대회’가 열린다. 자칫 민(民)·민(民) 충돌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애국단체총연합회 등 보수 단체 회원 최대 3000명이 전국 각지에서 강정마을을 찾는다. 제주 현지에서는 제주해군기지범도민유치위원회와 제주기독교연합회 등이 참석한다. 강정마을에서는 해군기지 건설을 찬성하는 주민 30∼40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서 목사는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드는 경비는 14만원이다. 우리가 10만원을 보조해준다. 자기 돈은 4만원만 내면 된다.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가톨릭과 맞장을 뜨겠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허은선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les@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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