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이 불탔다. 웅장했던 자태는 간데없고 흉물스러운 잔해만 남았다. 그 참상 앞에서 후손들은 추태를 보였다. 참사 뒤에 이어지는 ‘네탓 공방’이 여지없이 재연되었다. 문화재청과 소방방재청과 중구청이 서로를 탓하며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끝없는 책임 공방은 언제나처럼 ‘예산타령’으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큰 힘을 가진 사람들의 큰 추태에 비하면 이들의 추태는 그나마 작은 추태였다. 정치권은 숭례문 화재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느라 물불 가리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화재를 노무현 대통령의 실정 탓으로 돌리기 위해 공세를 폈고 통합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신야권은 숭례문을 일반에 공개한 이명박 당선자에게 원죄가 있다고 역공을 펼쳤다.

시비를 건 쪽은 한나라당이었다. 화재 다음 날인 2월11일 월요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안상수 원내대표는 “노무현 정권이 그동안 안전 의무에 허술한 채 신경 쓸 데는 안 쓰고 엉뚱한 데 신경 쓰다가 이런 비극을 가져오지 않았나 생각한다”라며 화살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돌렸다. 보수 논객 조갑제씨도 거들었다. 그는 자기 홈페이지에 “화재를 막지 못한 점, 화재를 제대로 끄지 못한 점, 무능한 행정기관을 방치하고 유홍준 같은 자를 문화재청장으로 임명한 점, 이런 책임은 행정권을 쥔 그에게 돌아간다”라며 노 대통령을 비난했다. 
 
김형오 대통령직 인수위 부위원장은 ‘정권 말기적 사안’이라고 규정하며 이전 정부의 실책으로 못박았다. 이명박 당선자는 화재 현장 방문을 통해 ‘문제를 일으킨 노무현 정부 대 문제를 해결하는 이명박 당선자’ 구도를 완성했다.

그러나 곧바로 민주당의 반격이 들어왔다. 이명박 당선자가 서울시장 재직 시절 숭례문을 개방한 것이 근본 원인이었다고 지적했다. 역시 독설이 쏟아져 나왔다. 민주당 유선호 의원은 “이명박 전 시장은 숭례문을 개방하면서 ‘1세기 만에 숭례문을 시민 품에 돌려줬다’고 했지만 결과는 시민으로부터 귀중한 국보를 빼앗아간 것이다”라고 공격했다. 노숙자들이 숭례문에서 밤에 라면을 끓여 먹고 술을 마시곤 했다는 언론 보도는 ‘숭례문을 노숙자 품에 안겨줬다’는 비난이 들끓게 만들었다.

정치권에서 촉발된 책임 공방은 인터넷도 달궜다. 인터넷에서는 숭례문 화재가 지니는 상징성에 대한 글이 많았다. 불길하게 분석하는 쪽에서는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을 1주일 앞두고 발생한 대구지하철 화재사건을 환기했다. 192명이 사망한 이 사건과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을 2주일가량 앞두고 발생한 숭례문 화재가 유사점이 많다는 지적이었다. 숭례문 개방이 화재를 낳은 것처럼 한반도 대운하 사업도 폐해만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었다.

책임 소재 놓고 일진일퇴 공방

반대 해석도 있었다. 조선일보 홈페이지에 ‘새정부 출범의 길조’라고 주장하는 글을 올리는 네티즌도 있었다. 언론도 가세했는데, 박형기 〈머니투데이〉 국제부장은 2월12일, ‘숭례문 불탔다고 나라가 망하나’라는 제목의 칼럼을 써 논란을 일으켰다. 〈머니투데이〉는 지난해 대선 직전 홍재문 기자가 이명박 후보를 공개 지지하는 칼럼을 써서 문제가 되었던 언론사다. 

보수 진영과 진보개혁 진영이 책임 소재를 놓고 다투는 동안 황당한 주장도 나왔다.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은 최고위원회의에서 “시기적으로 구정 초에 민족의 혼이 담긴 상징적 건물인 국보 1호를 방화했다는 점에서 방화라면 방화 동기가 의심스럽다. 혹시 불순한 동기가 개입되지는 않았는지 검찰 주도로 경찰·국정원 등에 합동특별수사본부를 긴급히 구성해 방화원인을 규명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논쟁이 격해지면서 상황은 계속 복잡해졌다. 한나라당 정몽준 최고위원은 “당연히 중앙정부에 책임이 있고, 또 지방정부도 책임이 있다”라고 말하며 서울시청의 책임을 거론했다. 듣기에 따라서 차기 라이벌을 견제한 발언이라고도 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오세훈 시장은 공개 사과 성명을 발표해서 숭례문 개방을 결정한 전임 시장, 즉 이명박 당선자의 처지를 더욱 옹색하게 만들었다. 이 뒤죽박죽인 책임 공방전에서 어부지리를 얻은 사람은 중구청장이다. 현행 문화재보호법 제88조에 따르면 숭례문의 화재를 예방하고 소화 장비를 설치해야 하는 직접 관리자는 중구청장이었지만 정치적 비중이 작다는 이유로 그는 오히려 책임 공방에서 한 발 비켜서 있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논리에 논리를 물고 책임 공방은 이어졌다. 보수 진영에서는 노 대통령 고향인 봉하마을 조성사업을 문제 삼았다. 이철승 대한민국건국기념사업회장은 2월13일 “노무현은 대통령 퇴임 후 내려가 살 마을 주변에 국고 400억원을 퍼부으면서 숭례문을 비롯한 문화재 보호에는 대책이 전무했다”라고 비난 성명을 냈다. 

공세를 취하던 한나라당은 국민 성금으로 숭례문을 복원하자는 이명박 당선자의 발언이 역풍을 맞으면서 수세에 몰렸다. 이 당선자는 2월12일, “숭례문 복원은 정부 예산보다 국민 성금으로 하는 게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 그렇게 하면 상처 받은 국민도 위로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반발이 거셌다. 외환위기 당시 금모으기 운동처럼 위기극복 이벤트로 삼으려 했지만 여론의 반발이 거세지자 이경숙 인수위위원장이 급히 진화에 나섰다. 

신야권도 실수를 놓치지 않고 공세의 고삐를 당겼다. 민주당 강금실 최고위원은 “이 당선자와 인수위의 모금 제안은 전두환 대통령 시절 ‘평화의 댐’ 모금과 같은 동원 정치이고 전시행정이다”라며 비난했다. 이번에는 진보 논객 진중권 교수가 거들었다. 2월13일,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 출연해 “숭례문이 불우이웃인가? 사고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겠지만 대책도 없이 서둘러 개방부터 한 건 개인적 야심 때문이었다”라며 이 당선자를 맹비난했다.

한나라당이 다시 반격에 나선 것은 유홍준 문화재청장의 외유 논란이 일면서부터다. 유럽 출장을 마치고 급거 귀국한 유 청장은 “문화재청의 적극적 진화 요구를 소방방재청이 묵살했다”라고 주장하며 사고 뒤처리를 하고 사표를 내서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그러나 언론에 유럽 출장이 외유성이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조기에 사표를 내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유 청장의 사표는 상징적 의미가 컸다. 비슷한 시기 이명박 정부 초대 문화부 장관 내정자로 발표된 유인촌 중앙대 교수와 묘한 대비를 이뤘다. 둘의 엇갈린 운명은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시작될 ‘문화 권력’의 이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숭례문 복원과 관련해서 여러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가림막은 시민의 항의로 투명막으로 바뀌기로 했지만 복원을 빨리 하는 것에 역점을 둘지, 늦어지더라도 제대로 하는 것에 역점을 둘지 의견이 분분하다. 숭례문 소실로 인한 국민의 절망감을 달래고 사회 통합을 이루기 위한 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 그러나 그 답이 정치인에게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분명한 것은 그들이 끼어들면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는 사실이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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