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 데쓰나리 지속가능에너지정책연구소(ISEP) 소장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주목받는 에너지 전문가다. 교토 대학에서 태양광발전 산업, 그린 전력 등 대체에너지를 연구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1년. 일본 사회는 어떻게 변화하고 있을까? 지난 2월23일, 도쿄에 있는 지속가능에너지정책연구소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후쿠시마를 ‘제2의 체르노빌’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현지에서 나오더라.
지역이 초토화됐으니까. 원전 사고가 그 어떤 사고보다 위험하다는 것을 후쿠시마가 보여주었다. 단,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출된 주된 방사성 물질은 세슘으로 반감기가 30년이다. 반면 체르노빌에서 확산된 플루토늄은 반감기가 2만4000년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발견된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원전 정보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야 공유됐다. 첫 사고 이후 7∼15일 동안 다량의 방사능이 노출됐지만 사고가 난 열흘 뒤 이 같은 내용이 알려졌다. 원자력에 대한 일본의 안전심사 절차와 기준이 매우 부실해 이를 믿기 어렵다는 점도 확인됐다. 3·11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쓰나미와 지진이 1차 원인을 제공했지만 사전에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문제들 때문에 예방 기회를 놓쳤다.

 

ⓒ시사IN 송지혜이이다 데쓰나리 소장은 태양광발전, 그린 전력 등 대체에너지를 오랫동안 연구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문제점들이 개선됐다고 보나?
현재 활동 중인 원자력 자문위원회의 경우 원전 추진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있는데, 원전 추진파가 후쿠시마 원전 폭발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은 채 여전히 위원회에 속해 활동 중이다. 국가 차원의 혼돈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정치도 여전히 변하지 않은 상태다. 그나마 지역이 희망이다.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은 원자력을 넘어선 대체에너지를 찾아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곧 지역을 중심으로 한 정치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정치권과 달리 일반 시민사회에서는 원전 반대 여론이 매우 거세다고 들었는데.
3·11 직전까지만 해도 원전 현상 유지 및 추진이 90%에 가까운 여론을 형성했는데, 현재는 폐로(廢爐)해야 한다는 의견이 80%에 가깝다. 평범한 시민들이 수소 폭발, 멜트다운, 방사능 물질 등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얻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원전이 전혀 안전하지 않으며, 원전 전문가들이 사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할 수 있게 됐다.

3·11 이후 원전 가동을 순차적으로 중지한 것으로 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전력 부족을 이유로 원전을 재가동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원전 사고 직후 잠시 전력 부족 상황이 발생했다. 지난해 3월14일을 예로 들면 도쿄 지역 전력 수요가 41기가와트였는데 도쿄전력은 31기가와트만 공급이 가능했다. 이로 인해 무계획 정전이 발생했고 많은 혼란이 있었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은 ‘원전 가동을 중단하면 재앙과 같은 무계획 정전 사태가 난다’는 식으로 선동적인 보도를 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도쿄 정전은 일시적 현상에 그쳤다. 2월9일 현재 일본 원전 54기 가운데 52기가 가동하지 않는다. 4월부터는 나머지 2기까지 모두 중지될 예정이다. 지진 이후 약 15%의 전력만이 원자로를 통해 공급되고 있다. 이미 일본 원전은 노화되고 있고 신규 건설은 약 20년 전부터 없었다. 52기가 가동을 멈춰도 문제가 없는 일본의 현실이 ‘원전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신화가 거짓임을 입증하고 있다.

원자력 신화를 얘기했는데, 일본 사회에서 이 같은 신화는 어떻게 만들어졌다고 보나.
그간의 과정을 돌아보면 장기적인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탈바꿈하곤 했다. 그러나 원자력 에너지는 핵 확산과 방사성 폐기물, 대형 사고의 위험성 등 많은 부정적 요소를 갖고 있다. 우라늄 공급에도 한계가 있다. 지구상에 우라늄이 다량 매장돼 있다지만 이를 채취하는 기술의 발전 속도가 원전 필요량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우라늄 효율을 대폭 늘리는 고속 원자로는 2030년이나 돼야 준비가 가능하다. 그런 만큼 원자력은 지속 가능한 에너지가 될 수 없는데도 ‘값싸고 안전한 원자력’이라는 신화가 유지돼온 것이다. 여기에는 도시바나 미쓰비시 등 원전 산업을 주도한 대기업 영향도 크다. 이들은 원전 산업이 지역경제를 일으킨다고 주장하면서 반대 여론을 억눌러왔다.

그렇지만 재생 가능 에너지 개발은 여전히 더디다.
지금이라도 에너지 전환을 이루어야 한다. 앞서 얘기한 대로 원자력은 값싼 에너지가 아닌 데다 사고 위험, 폐기물 처리 등의 문제가 있다. 화석 연료 또한 값이 비싼 데다 가격 변동 폭이 너무 크다. 현재 원자력발전 비용은 커지고 태양광발전 비용은 줄어드는 추세다. 다행히 재생 가능 에너지 투자액은 2000년 100억 달러가 채 되지 않았지만 2010년에는 2400억 달러까지 확대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일본이 핵의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을 비축하기 위해 원전을 고집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현재 일본이 추진하는 고속증식로, 재처리, 농축우라늄 제조 기술 등은 핵무기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언제든 무기 제조가 가능하도록 기술을 보유한다’는 기조는 여전하다. 이것이 일본의 ‘원자력 마피아’가 유지되는 하나의 큰 이유다. 전력회사를 중심으로 그 이권과 연결된 정치인, 예산을 쥔 관리, 광고로 동원 가능한 언론 등 원자력 관련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있다.

후쿠시마 주민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나?
궁극적으로 개인을 중심에 놓고 보는 태도 및 의식 변화가 필요하다. 집단으로 이들을 묶을 것이 아니라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보는 정책을 펴야 한다. 〈피폭 수첩〉을 만들어 의료비를 보장할 필요가 있다. 방사성 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노동자들을 고선량 지역으로 들여보내는 정책은 매우 잘못됐다. 방사선 양이 내려갈 수는 있지만 방사성 물질의 제염 작업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이는 또 다른 비극이 될 수 있다. 정책을 만드는 이들은 오염 제거 사업을 또 하나의 비즈니스로 본다. 수천억을 투입하는 새로운 건설 산업이다. 후쿠시마를 두 번 죽여선 안 된다. 지역사회 재생과 안전을 첫째로 생각하는 정책의 전환이 필요하다.

 

기자명 송지혜 기자 다른기사 보기 song@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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