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되도록이면 세상 여자들의 화를 사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며 조심스럽게 사는 인간이라서 ‘여자가 남자보다 운전을 못하는 것 같다’는 식의 안이하고 차별적인 발언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세상 남자 중에도 형편 무인지경인 운전자가 얼마든지 있다. 왜 아니겠는가. 3년 전 처음 운전대를 잡고 도로를 ‘기어’ 다녔던 나의 경우만 해도 아주 가관이었다. 운전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고 시동을 켜려는데, 어라, 시동이 안 걸리는 거다. 겨우겨우 어떻게 걸긴 했지만, 이번에는 클러치와 액셀러레이터가 헛갈려서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그다음 날인가는 오르막길에서 주차를 하다가 사이드 브레이크를 안 채우고 내리는 바람에 뒤에 있던 전봇대를 들이받아 버리기도 했다. 

이런 기억을 떠올린 건 불쑥 다시 나타난 ‘김 여사 시리즈’ 때문이다. 한때 회자하던 ‘김 여사 시리즈’가 지난 2월13일 〈생방송 오늘아침〉에 방영된 UCC 동영상 덕분에 다시 한번 각종 포털의 인기 검색어로 등장했다. 가령, 뒷 트렁크 위에 버젓이 목욕 바구니를 올려놓은 채 주행 중인 차량, 마치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는 듯한 모양새로 사고를 낸 차량, 오가는 차가 없는 한적한 고속도로에서 유턴하기 위해 뒷바퀴를 살짝 들어 돌리는 모습의 운전자 등이 각각 ‘목욕탕 가는 김 여사’, ‘횡단보도로 길 건너는 김 여사’, ‘김 여사의 U턴’이라는 이름으로 거론되며 네티즌 사이에서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이런 사진을 ‘김 여사 시리즈’ 따위의 제목으로 자기 블로그에 버젓이 올리는 네티즌이 의외로 굉장히 많아서 놀랐다. 물론 그 자체만으로도 재미있다고 하면 충분히 재미있을 만한 사진이기는 하다. 그 차의 운전자가 굳이, 어설프고 조잡한, 혹은 볼썽사나운 모습의 대명사로서 사용되는 ‘김 여사’가 아니어도 말이다.

실제로 그날 방송분에 출연한 여성은 “동영상을 보고 자존심이 상했다. 누구나 초보 운전이면 한 번씩 거치는 과정 아닌가, 남자들도 답답하고 운전을 잘 못하는 사람이 많은데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라며 불쾌해했다. “한국 남자는 자동차와 관련된 일이라면 목소리가 열 배는 커진다. 특히 여자한테 심하다”라고 지적한 외국인도 있었다.

이러한 ‘여성 비하’가 발생하는 원리는 극히 간단해 보인다. 정상적으로 제 차선을 따라 제한속도를 지키는 것이 ‘소심하고, 좀스러운’ 모습으로 치부되고, 기질상 남자와 여자의 운전 스타일이 다르다 보니(라는 것도 편견일지 모르지만) 화끈한 ‘과격’ 운전보다는 조심스러운 ‘방어’ 운전이 조롱거리가 된다. 하지만 이런 글을 쓰는 나 역시 “지하철에서 껌을 딱딱거리고 씹는 건 대부분 아줌마인데 말이야” 운운하는 얘기를 어제 (남자) 동료에게 한 적이 있으니, 우리 인간이라는 동물은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정말이지 코미디가 비극이 되는 건 얼마나 순식간인가.

기자명 김홍민 (출판사 북스피어 대표)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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