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시사IN〉 제227호 커버스토리로 보도한 ‘조희팔 사기 사건’의 주모자 일부가 2월8일 중국 공안(경찰)에 체포돼 국내 송환 절차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에 체포된 이들은 강호용·최천식 씨 등으로 2009년 12월 초 서해 공해상을 통해 중국으로 밀항한 조희팔의 최측근이다. 수배 상태에 있던 이들은 지난 3년 동안 칭다오·다롄·옌타이 등 산둥성 동부 3개 도시에 비트(비밀 근거지)를 마련해 숨어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조희팔 사건은 조씨 등이 2006년 10월부터 2년여 동안 대구·부산·경기·인천·서울 지역에 20여 개의 법인을 개설해 5만여 피해자로부터 4조원을 받아 챙긴 유사수신 사기 사건이다. 조희팔 일당은 안마기 등 건강용품 판매사업에 투자하면 연 40%대의 고수익을 보장하겠다고 속여 서민의 돈을 갈취했다. 조희팔 사건으로 전 재산을 날린 채 자살하거나 화병으로 사망한 사람만도 10여 명에 이른다고 피해자들은 주장한다.


조희팔의 최측근인 최천식(왼쪽)·강호용(왼쪽 아래) 씨가 중국 공안에서 조사받고 있다. 중국의 한 매체가 조희팔 일당 체포 소식을 보도했다(위).

2009년 말 해경 경비정의 ‘수상한 호위’를 받으며 충남 태안 앞바다를 통해 중국으로 밀항한 조희팔 일당은 그동안 “MB 정권에서는 나를 절대 못 잡는다”라고 큰소리쳐 왔다. 또 밀항 뒤에는 국내에서 빼돌린 수백억원대 자금으로 중국 내 골프장과 고급 술집을 전전하는 등 호화 도피 행각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조희팔 일당이 밀항한 뒤 경찰청은 조씨 등을 인터폴 적색수배자 명단에 올렸다. 그러나 지난 3년 동안 아무런 체포 송환 노력도 기울이지 않아 피해자들로부터 ‘일부러 안 잡는 것 아니냐’는 비난과 원성을 샀다. 피해 금액이 수십억원대인 보이스피싱 사기범도 중국으로 도피하면 대부분 잡아들여오는 것이 현재의 한국·중국 공조수사 수준이다. 그런데 피해 금액 3조원대, 피해자 5만여 명에 이르는 거대 사기 사건 주범을 인터폴에 수배하고도 3년째 이를 잡지 못하고 있으니 경찰이 직무유기를 한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이번에 조희팔 일당이 중국에서 체포된 것은 표면적으로 중국 공안의 작품인 것처럼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대검찰청과 대구지검 서부지청의 숨은 움직임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시사IN〉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검찰은 조희팔 일당 체포와 국내 송환을 위해 오래전부터 긴밀히 움직여왔다. 김준규 전 검찰총장이 중국 공안부장에게 조희팔 일당 체포 송환 협조요청 공문을 보내 협조를 약속받은 뒤 대검 국제협력단과 대구지검 서부지청이 중국 공안 실무자들과 은밀히 공조 체포 작전을 펼쳐온 것이다. 검찰은 국내에서 붙잡힌 조희팔 측근들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파악한 조씨 일당의 중국 내 은신처 및 자주 출입하는 골프장 정보 등을 중국 공안에 보내줬다고 한다. 〈시사IN〉도 지난달 취재 과정에서 만난 조희팔 측근들로부터 조씨 일당의 중국 내 은신처 세 곳과 단골 골프장 위치 등을 확보하고 현지 잠입 취재를 준비한 바 있다.


ⓒ시사IN 백승기한 피해자가 조희팔 일당의 사진이 붙은 수배 전단을 보고 있다.

이번에 대검과 중국 공안의 공조수사로 조희팔 일당이 체포돼 한국 송환 절차에 들어감으로써 이 사건 수사는 새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조씨 일당이 일부 체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가장 먼저 나선 곳은 대구지방경찰청이다. 대구지방경찰청은 “우리가 수사하겠다”라며 그동안 먼지 쌓인 채 방치돼 있던 조희팔 사건 수사기록을 다시 들춰내 전면 재조사하겠다고 언론에 밝혔다. 조희팔 다단계 사기극의 본거지가 대구였다는 점에서 형식논리상으로는 대구지방경찰청 수사과가 이 사건 수사를 맡는 게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5만여 명에 이르는 조희팔 사기 피해자들은 이에 대해 ‘고양이에게 생선가게 맡기는 격’이라며 극력 반발하고 나섰다.


“연루 의혹 경찰관 처벌부터 하라”

피해자들이 반발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달 〈시사IN〉은 조희팔이 밀항하기 직전 대구지방경찰청 간부인 권혁우 총경에게 9억원대 수상한 돈을 건넨 사실을 폭로한 바 있다. 권 총경은 밀항 전 조희팔에게서 수표로 받은 9억원이 ‘투자유치 자금’이라고 주장했다. 권 총경은 지난해 8월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도 돈의 성격을 그렇게 주장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검찰은 조희팔 일당이 송환되면 권 총경을 재수사하기로 하고 ‘참고인 중지’로 이 사건을 처리한 바 있다.

문제는 조희팔과 부적절한 거액의 돈거래를 한 권 총경이 조희팔 사기 사건 수사를 총괄 지휘하는 대구지방경찰청 수사과장으로 재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이 〈시사IN〉 보도로 드러나면서 여론은 발칵 뒤집혔다. 이 기사가 나가자 1월10일 경찰청은 곧바로 권 총경을 대구지방경찰청 수사과장직에서 해임하고 치안지도관으로 전보 발령했다.

그뿐 아니다. 대구지방경찰청 수사과는 지난 3년간 조희팔 사건 주무 수사기관으로서 그를 체포·송환하기 위해 이렇다 할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한 술 더 떠 일부 수사 관계자는 밀항한 조희팔과 수시로 휴대전화 통화를 하며 국내 수사정보 등을 흘려줬다는 의심을 산다. 〈시사IN〉 취재에 따르면 대구지방경찰청에서 조희팔 밀항 사건 수사를 담당한 한 경찰 수사관은 그동안 개인 휴가를 내고 두 차례나 중국으로 건너가 조희팔 일당을 만나고 온 것으로 보인다. 중국 내 은신처에서 조희팔 일당을 만나 융숭한 접대를 받은 그가 귀국길에 명품 선물을 잔뜩 가지고 들어오다 공항 세관에 적발된 사건도 있었다. 이런 사실이 통보되면서 이 수사관은 현재 대구시내 한 경찰서로 전보 조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그런 만큼 조희팔 사건 주모자들이 중국에서 송환돼 들어올 경우 조희팔과 9억원대 수상한 돈거래를 한 권혁우 총경과 대구지방경찰청 일부 수사 관계자들은 ‘조희팔 비호 및 유착 혐의’로 수사를 받을 수도 있는 처지다. 바로 이런 사정 때문에 피해자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대구에서 조희팔 사건 피해자 모임을 이끌고 있는 한 간부는 “대구경찰청이 조희팔 사건을 수사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대구청은 조희팔 밀항 도피 과정에 연루된 내부 경찰관을 찾아내 처벌하는 일부터 먼저 손대야 할 것이다. 우리가 해당 경찰관들을 형사 고발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인천과 부산·경기 등지에서 활동 중인 조희팔 사건 피해자 모임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체포된 조희팔 일당이 송환되어오는 날까지 대검과 대구지방경찰청, 대구지검, 대구지검 서부지청 등을 찾아 연일 릴레이 집회와 시위를 벌이겠다고 밝혔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