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일본 동북지방에서 일어난 대지진과 지진해일의 상흔이 채 아물기도 전에 이번에는 도쿄를 강타하는 ‘수도권 직하형 대지진’이 임박했다는 도쿄 대학 지진연구소 발표로 도쿄 일대 민심이 뒤숭숭하다.

도쿄 대학 지진연구소는 지난 1월 “매그니튜드(지진 규모) 7 정도의 ‘수도권 직하형 지진’이 일어날 확률이 4년 이내에 70%”라고 발표했다. 연구소는 또 향후 30년 이내에 대지진이 수도권을 강타할 확률은 98%에 달한다는 견해를 밝히기도 했다. 이는 지난 2004년 일본 정부 지진조사연구추진본부가 추산한 70%보다 훨씬 큰 수치다.

반면 교토 대학 방재연구소는 최근 “매그니튜드 7 이상의 수도권 직하형 대지진이 일어날 확률은 5년 이내에 28%”라는 약간 상반된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그러나 교토 대학 역시 대지진이 30년 이내에 발생할 확률을 64%로 추계하고 있어, 대지진이 불원간 도쿄 일대를 엄습할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았다.


ⓒAP Photo2월3일 대피 훈련에 참가한 시민들이 신주쿠 역에서 재난 정보를 확인하고 있다.

대지진이 임박했다는 연구 결과가 잇달아 발표되자 도쿄 도는 지난 2월3일 처음으로 실전을 방불케 하는 대규모 피난 훈련을 실시했다. 일본 정부 중앙방재회의 추산에 따르면 겨울철 저녁 6시께 매그니튜드 7.3 정도의 수도권 직하형 지진이 일어날 경우 사망·실종자는 1만1000명, 가옥과 건물 피해는 약 85만 동에 이른다. 피난민은 최대 700만명에 달하며, 지진 발생 한 달 뒤에도 270만명이 계속 피난처에서 생활하게 된다.

직하형 지진이 엄습했을 경우 또 다른 문제는 모든 교통수단이 완전 차단된다는 점이다. 앞서 말한 중앙방재회의는 대지진 발생과 함께 수도권 일대에서 650만명, 도쿄 도내에서는 390만명이 귀가할 수단을 찾지 못해 길거리를 헤맬 것으로 내다보았다.

실제로 지난해 3월 동북지방에서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도쿄 도내를 가로지르는 모든 전철과 철도의 운행이 일제히 중단됐다. 도쿄에서도 진도 5강에 달하는 지반의 흔들림을 관측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시부야 역을 비롯한 도쿄 도내 전철역은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저녁 무렵 일부 전철이 운행을 재개했지만, 결국 352만명이 역 구내에서 또는 근무하는 회사로 되돌아가 밤을 지새워야 했다.


도심의 화재도 경계 대상

도쿄 도는 귀가가 불가능한 통근객을 역 구내에 수용하는 방안에 역점을 두고 지난 2월 대규모 피난 훈련을 실시했다. 도쿄 도 지시에 따라 도쿄 중심부를 순환하는 야마노테센(山手線)을 운행하는 ‘JR 동일본’은 수도권 역사 30곳에 3만명 분량의 음료수와 구급약품, 보온 시트 등을 비축하기로 결정했다. 


ⓒReuter=Newsis1995년 1월17일 대지진이 발행한 일본 고베 일대.
그러나 도쿄 도는 철도와 전철 회사의 비축분만으로는 피난민 구호 대책이 불충분하다고 보고 도쿄 도내에 주소를 둔 전 회사에 대해 3일분 식량과 음료수를 의무적으로 비축하도록 하는 조례를 올해 안에 제정할 방침이다. 통근객들의 휴대전화가 불통될 것에 대비해 각 역에 PHS 전화도 배치할 계획이다.

도쿄의 지하에서 대지진이 일어날 경우 교통기관뿐 아니라 행정 기능도 완전 마비된다. 일본 정부는 이럴 경우에 대비해 기능이 정지된 총리 관저를 일단 가스미가세키에 있는 정부합동청사 5호관으로 옮겼다가, 도쿄 중심부에서 30㎞ 떨어진 다치가야 시의 재해방지센터로 이전한다는 계획을 짰다.

1923년 9월1일 낮 12시쯤에 일어난 간토 대지진은 매그니튜드 7.9로 약 10만5000명의 인명을 앗아갔다. 설상가상 불어닥친 강풍으로 큰 화재가 일어나 이 중 약 9만명이 불에 타 죽었다. 또다시 도쿄 일원을 강타하는 직하형 지진이 일어날 경우에도 건물과 주택의 붕괴, 화재로 인한 인명 피해가 가장 큰 걱정이다.

일본 부동산연구소에 따르면 1981년 개정된 건축기준법에서 정한 ‘내진 기준’에 따라 건축됐거나 보강공사를 마친 도쿄 도내의 빌딩은 전체의 약 70%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 조사가 비교적 내진 기준에 충실한 중형 이상의 빌딩을 대상으로 했다고 지적하면서, 새로 개정된 내진 기준에 미달하는 소형 빌딩을 모두 합치면 도쿄 도내 전체 빌딩의 50% 이상이 대지진 시 붕괴될 위험을 안고 있다고 경고한다.

도심에 불어닥칠 화마도 경계 대상이다. 도쿄의 도심은 소방차가 들어갈 수 없는 비좁은 주택가나 빌딩가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따라서 풍속 15m 이상의 바람이 부는 겨울철, 저녁 6시께 대지진이 일어난다면 도쿄 도심은 90년 전 간토 대지진 때처럼 또다시 불바다로 변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큰 지진이 일어나면 대도시 주민들이 겪는 가장 큰 고통은 수돗물, 전기, 가스 따위의 공급이 정지되는 이른바 ‘라이프 라인’ 절단 사태이다. 도쿄 도는 현재 낡은 수도관을 대지진에 견딜 수 있는 ‘내진 수도관’으로 교체하는 공사를 벌이고 있지만, 향후 5년간 이 가운데 절반 정도를 교체할 수 있을 뿐이다.

피해액 112조 엔, 복구 자금 막막

도쿄 전력은 대지진이 일어나면 약 200만 세대가 정전 피해를 입을 것으로 상정한다. 이를 6일 이내에 복구시킨다는 계획이다. 도쿄 가스 역시 약 190만 세대에 가스 공급이 중단되는 사태가 일어난다고 보고, 이를 55일간에 걸쳐 복구한다는 방침을 세워놓았다.

수도권 직하형 대지진이 일본 경제에 미칠 파장도 엄청나다. 일본 정부 중앙방재회의는 건물 붕괴 등에 따른 직접 피해액을 66조6000억 엔, 생산 감소액 등에 따른 간접 피해액을 45조2000억 엔 등 피해 총액을 모두 112조 엔으로 추산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일본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분야의 모든 중추 기능이 집중되어 있는 수도권에서 대지진이 일어나면 실제 피해액은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천문학적인 규모로 부풀어오를 것이라고 말한다.

어느 전문가는 다음과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한다. “대지진 직후 도쿄 주식시장의 거래가 전면 중단되고 엔화는 폭락한다. 일본 정부는 복구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려고 하지만 국내에서는 인수할 여력이 없어 해외 금융시장에서 5% 고금리로 자금을 조달한다. 그 후 일본 국채의 금리가 계속 상승함에 따라 일본은 그리스나 포르투갈처럼 채무 불이행 위험에 직면하여 국가 도산 위기를 맞이한다.”

1년 전 동북지방을 강타한 대지진의 복구 작업이 얼마간 진척되고 있는 것은 도쿄를 비롯한 수도권 지역이 별다른 피해를 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도권을 강타하는 대지진이 일어날 경우 복구 자금의 염출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기자명 도쿄·채명석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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