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한향란지난 1월26일 예비 법학시험이 치러진 서울 한양공고 운동장에 걸린 학원 홍보 현수막.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로스쿨을 준비하는 박 아무개씨(31)는 지난 2월4일 교육부가 발표한 로스쿨 예비 인가 결과를 이렇게 평했다. 서울대 등 25개 대학이 선정(표 참조)된 예비 인가 결과를 두고 대다수 수험생은 ‘그럴 줄 알았다’며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른바 ‘법대 서열’이 거의 고스란히 반영됐기 때문이다. 탈락한 대학의 반발로 시험 일정에 혼란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는 로스쿨 수험생 김 아무개씨(30)의 말은 수험가의 분위기를 대변한다.

로스쿨 예비 인가 대학이 발표됐지만 정작 수험가는 조용하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하 교평)이 법학적성검사(LEET) 예비 시험을 실시하고 교육부가 예비 인가 대학을 발표해도 수험가의 풍경은 차분하다. ‘시장 규모 1000억원’과 ‘수험생 10만명’까지 이야기하던 일부 언론의 예상과는 딴판이다. 다산로스쿨학원의 김성율 이사는 “학원을 다 합쳐봐야 실제로 돈을 내는 수강생은 800명 정도일 것이다”라고 귀띔했다.

지난 1월26일에 1000명을 대상으로 교평이 실시한 LEET 예비 시험의 지원자는 모두 3100여 명. 1만명까지도 바라봤던 학원가의 예상은 크게 빗나갔다. 시험장 분위기 역시 그리 달아오르지 않았다. 교평은 최종 결시자가 309명이라고 밝혔다. 응시율이 70%를 밑돌았다는 얘기다. “로스쿨 붐이 인다지만 허수가 많다. 쉬는 시간마다 몇 명씩 짐 싸서 나가더라. 호기심에 한번 구경 온 사람들 같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로스쿨에 ‘올인’한다는 김영철씨(39)는 시험장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시장이 조용하니 몸이 단 것은 학원이다. 예비 시험이 치러진 서울 한양공고는 수험생 대신 로스쿨 학원의 홍보 열기로 뜨거웠다. 지하철역 입구부터 한양공고 교문까지 ㅍ학원의 광고 벽보가 바닥을 뒤덮었고, 교문 위 명당자리는 ㅇ학원 현수막 차지였다. “하나도 못 팔았어. 저 사람들이 다 공짜로 나눠주니까.” 행상 임말례씨(62)가 원망 섞인 목소리로 가리킨 곳에는 붉은색 점퍼를 맞춰 입은 학원 홍보요원 10여 명이 줄지어 서서 수험생에게 커피를 권하고 있었다.

ⓒ시사IN 포토‘법조인 배출’의 메카 서울 신림동(위)에도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칠 것이다.
시험장에서 만난 하동석씨(61)는 짧은 은회색 머리에 멋들어진 검은 안경을 쓴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공부한 건 아니고, 그냥 당첨돼서 와봤어.” 하씨는 환갑 나이에 예비 시험을 친다니 동년배의 관심이 크더라고 전했다. 대기업에 근무하는 권용준씨(28)는 올해 쉰여섯의 은행 임원인 아버지와 함께 로스쿨을 준비 중이다. 응시자 추첨에서 아버지는 기회를 얻지 못해 혼자 나왔다는 권씨는 “수능 세대인 나보다는 아버지가 훨씬 적응하기 힘들어하신다”라고 말했다. 언어이해와 같은 LEET의 시험 유형(상자 기사 참조)이 수능 세대에게 더 친숙하다는 지적은 모든 연령대의 준비생에게 공감을 얻고 있었다.

수험생이 사법시험 대신 로스쿨에 도전하는 까닭은 단순하다. 사법시험은 엄두가 안 나지만, 로스쿨은 하면 될 것 같아서다. 법 지식을 묻지 않는 시험 내용 덕에 새로 시작하는 수험생은 사법시험보다 LEET를 훨씬 친근하게 여긴다. 사법시험에서 로스쿨로 전환한 김형남씨(28)가 “1년만 사법시험을 공부했어도 아까워서 못 바꿨을 것이다”라고 말할 만큼 사법시험의 ‘진입 장벽’은 높다. 이는 사법시험에 비해 문턱이 확연히 낮은 게 로스쿨의 매력이라는 이야기도 된다.

학원가의 수강생은 예비시험장의 응시생보다는 더 절박한 모습이었다. 적지 않은 돈을 내고 시험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LEET가 있는 8월까지 학원 정규 과정을 들으려면 500만원 안팎의 학원비가 든다. 학생은 물론 웬만한 직장인에게도 부담스러운 액수다. 대기업 직장인 김 아무개씨(32)는 몇 주 전 회사를 그만뒀다. 네 살 난 아이를 둔 김씨는 “아기가 있으니 전문직이 절실하더라”고 말했다. 대학생 도현석씨(26)는 지난해 11월에 휴대전화를 정지시키고 휴학계까지 냈다.

 
 로스쿨 수험생 대부분은 신분 노출을 무척 꺼린다. 직장에서 눈치가 보이는 것은 물론,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서다. 공기업 직원 류 아무개씨(35)는 “다들 몰래 준비한다고 보면 된다. 가족에게 설명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학생 중에서도 법학 전공자는 로스쿨 준비를 일종의 ‘배신’으로 여기는 학과의 분위기가 부담스럽다. 과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사법시험 응시생은 물론, 교수의 눈초리도 호의적이지 않단다.

사법시험은 2013년을 끝으로 폐지하기로 잠정 결론이 나 있다. 그렇다면 오랜 세월 ‘사법시험의 메카’로 불렸던 서울 신림동 고시촌의 표정은 어떨까. 로스쿨에 대한 사법시험 준비생의 반응은 냉담했다. “로스쿨 도입 취지가 돈 있는 사람 무임승차시키겠다는 거지 딴 게 있겠어요?” 고시 서점에서 만난 배봉준씨(37)는 이렇게 쏘아붙였다.  연간 2000만원에 이르는 등록금을 받는 로스쿨이 ‘귀족 학교’로 전락할 것이라는 염려다. 한 학원에서 ‘총무’ 일을 보며 무료로 수업을 듣는 정 아무개씨(28) 역시 “개천에서 용 나는 걸 원천 봉쇄하는 제도”라며 불만을 나타냈다. 

로스쿨, ‘돈 더 드는 사법시험’ 변질 염려

로스쿨 비상대책위원회의 이창수 집행책임자는 신림동 고시생과는 다른 관점에서 로스쿨 제도의 문제점을 짚었다. “로스쿨 체제에서 변호사는 법무사, 공인중개사 등과 같은 ‘자격증’일 뿐이다. 개천에서 용 나지 않는다는 염려는, ‘사시 패스’하면 용 되던 시절 사고를 못 버린 특권욕이다.” 대신 그가 지적하는 것은 로스쿨 정원의 문제다. 해마다 2000명으로 고정된 현행 제도대로라면 졸업률을 80%로 잡아도 한 해에 공급되는 변호사 수는 1600여 명. 이 정도로는 법조인의 ‘카르텔’을 깨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게 그의 문제의식이다.

 
 빚을 지고 사회에 나올 수밖에 없는 ‘비싼 로스쿨’ 탓에 인권·환경 등 공익 영역에서의 법률 활동이 소멸될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온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장주영 전 사무총장은 “공익적 법률 활동 분야는 변호사 개인의 희생에 의존할 게 아니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군 장학금처럼 원하는 이에게 나라가 장학금을 지급하고 일정 기간 공익 법률 활동을 하게 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어떻게 하면 로스쿨에 입학할 수 있을까’에 관심을 집중하는 동안, 한편에서는 로스쿨의 미래를 결정지을 중요한 논의가 조용히 진행 중이다. 사법시험을 대체할 ‘변호사 시험’의 틀을 잡는 문제다. 로스쿨을 이수해야만 응시할 수 있는 이 시험에 합격하면 변호사 자격증을 받는다. 그간 수험가 등에서는 이 시험에서 합격률 80%대를 유지한다는 방침이 확정된 것처럼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나 이 논의를 담당하던 변호사시험법제정실무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서강대 이상수 교수는 “80% 확정은 아직 근거가 없는 얘기다”라고 말했다. 법조계는 로스쿨의 교육을 믿지 못해 합격률을 확정하는 데 망설이고, 교육계는 법조계가 기득권을 유지하려 한다고 의심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로스쿨 제도에서 합격률은 왜 중요할까? 변호사 시험이 지나치게 어려울 경우 ‘시험용’ 법학 과목만 비대해지면서 다양한 분야의 전문 변호사를 키운다는 로스쿨의 당초 목표가 빛바랠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법학 전공자가 유리해지면 로스쿨 쪽에서도 제도의 취지에 반하여 이들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2004년 로스쿨을 도입한 일본에서는 두 번 치른 변호사 시험(신사법시험)에서 합격률이 모두 50%를 밑돌면서 로스쿨 회의론이 일었다. 민변 장주영 전 사무총장은 “합격률이 핵심이다. 70~80%는 되어야 우리 법학 교육이 정상화된다”라고 주장했다. 사법시험에 철저히 종속된 현행 법학 교육의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신림동 고시촌의 사법시험 학원은 이미 이 같은 ‘실패’를 전제로, 로스쿨 재학생을 대상으로 한 법학 사교육을 미래의 주력 사업으로 점찍어둔 상태다. 로스쿨이 자칫 ‘돈 더 드는 사법시험’으로 변질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기자명 변진경ㆍ천관율 수습기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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