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변진경법학적성시험(LEET)은 ‘통합형 사고’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수능시험과 비슷하다. 위는 LEET 모의고사 시험지와 답안지.
로스쿨 예비 인가 대학이 발표되기 직전인 1월27일, 〈시사IN〉은 서울 강남의 한 학원에서 실시한 법학적성시험(LEET)을 직접 치러봤다.(편집자 주)

LEET는 기자의 6년 전 ‘수능 날’을 떠올리게 했다. 오전 8시30분까지 입실해 오후 4시20분까지 시험을 치른다. 상아색 시험지에 인쇄된 5지 선다 객관식 문제를 푼 뒤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OMR 카드 답안지를 메운다. 긴 독해 지문을 읽어야 하는 ‘언어이해’ 과목은 수능의 ‘언어’와 비슷했다.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추리논증’ 과목은 수능의 ‘수리’ 혹은 ‘사회·과학 탐구’ 과목에 빗댈 수 있다. 단, 훨씬 어려웠다.

언어이해 과목은 ‘속도’가 관건이다. 90분 만에 12개의 긴 지문을 읽고 40문항을 풀려면 한 문제당 1분을 넘기지 말아야 한다. 지문의 난이도도 만만치 않다. 독일 철학자 호르크하이머의 ‘도구적 이성’을 다룬 내용부터 수동형 RFID(차세대 인식 기술) 시스템을 설명하는 지문까지, 어떤 분야의 전문가든 꼭 하나 이상의 지문은 생소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바쁘다고 대충 읽어서도 안 된다. 합격의법학원 채정한 강사는 “빨리 읽되 쌈박하게 이해하지 않으면 무조건 틀리게 돼 있다”라고 말했다. 실제 기자도 이미 접한 적이 있는 〈세종실록〉 발췌 지문을 보고 반갑게 통독했지만, 딸린 문제 3개 중 하나만 맞히는 ‘수모’를 당했다.

추리논증 과목은 ‘머리를 굴려야’ 한다. 중구난방으로 명제를 쏟아내는 갑을병정 중 누가 거짓말쟁이인지 찾아내는 고전적 추리는 물론, ‘담배 유해 소송’에서 기업의 입증 책임을 완화하는 논거를 고르는 ‘사회 추리’까지 포함돼 있다. 120분에 40문항을 풀어야 하니 한 문제에 쏟을 수 있는 시간은 3분 남짓이다. 시간을 엄청나게 잡아먹는 문제도 몇 개 섞여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충분한 시간이 아니다. 37번 문항 ‘우주인 선발’ 논리추론의 경우, 해설을 맡은 학원 강사도 15분 동안 문제와 씨름했다.

가장 불확실한 과목은 ‘논술’이다. 애초 LEET에 포함시킬 것인지 여부부터 논란이 되었다. ‘채점’ 때문이다. 최소 1만명 이상이 2700자씩 써낸 논술 답안지를 한꺼번에 채점하기란 쉽지 않다. 이번 예비 시험 때는 배심원 제도에 대한 견해 제시 등 3문항이 나왔다. 교육과정평가원은 “이번에만 우리가 채점하고 8월 시험 때는 대학에 맡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될 경우, 대학마다 논술 ‘모범 답안’의 기준이 다를 가능성도 크다.

“학력고사 세대는 두 배로 힘든 공부”

누가 LEET에 유리할까. ‘수능 같은 LEET’이기 때문에 역시 ‘수능 세대’가 익숙해한다. (주)리트스터디 이시한 대표는 “나이 든 사람은 자꾸 외울 걸 달라고 하는데, 이 시험에서는 사고가 유연한 젊은이가 유리하다”라고 말했다. 공기업에 다니는 류 아무개씨(35)는 “해도 안 오른다. 학력고사 세대는 두 배로 힘든 공부다”라고 말했다. 시험장에서 기자의 옆 자리에 앉은 H무역 대표 신 아무개씨(50)는 “특히 수리추리 문제는 접해본 일이 없어 생소하다”라고 말했다.

직업별로도 장단점이 있다. 1월 초까지 삼성전자에서 개발 업무를 맡았던 김 아무개씨(32)는 평소 다섯 줄이 넘지 않게 보고하던 직업적 습관 탓에 시험이 어렵다. 김씨는 “딱 봤을 때 뭔지 알 수 있는 문서에 익숙해 있다가 숨은 의미까지 파악하려니 머리가 지끈거린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논술’ 시간에는 사회 경험이 많을수록 머리가 덜 아프다. 리트스터디 황진자 논술 강사는 “수업을 해보면 경험이 풍부한 학생일수록 다양한 예시와 논거 제시를 잘한다”라고 말했다.

100점 만점에 67.5점. 기자가 얻은 LEET 예비 모의시험 평균 점수다. 전체 평균인 60점은 넘었지만 로스쿨에 입학하기엔 턱없이 모자란다. 같이 시험을 치른 184명의 학생 중에는 언어이해와 추리논증에서 각각 100점과 97.5점을 받은 ‘수재’도 있었다. 이번 로스쿨 취재 중에 “기자 분도 한번 준비해보시라”는 학원 관계자의 시답잖은 유혹도 많이 받았다. 직접 체험해보니 이직을 고민할 필요는 없겠다. 

기자명 변진경 수습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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