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일 오전,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95-4 전두환 전 대통령 사저 근처. 전 전 대통령의 경호동 현장 취재는 첫걸음부터 막혔다. 작은 승강이가 있자 또 다른 남자가 나타났다. “지나가시라고 해.” 상사의 한마디에 전경은 길을 내줬지만 기자의 뒤를 따라왔다. 300m가량 되는 사저 골목에 나와 있는 경찰도 7명이나 되었다. 뭇사람에게는 삼엄하게 느껴지는 경비였다. 최근 불거진 전두환 전 대통령 사저와 경호동을 둘러싼 논란으로 경비가 삼엄해진 탓일까. 연희동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한 주민은 “평소에도 비슷하다. 다른 볼일 때문에 차를 타고 지나가려고 해도 못 가게 한 적이 있다”라며 볼멘소리를 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법으로 보장되어 있다. 경호와 경비도 포함된다. 퇴임 후 10년 동안은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경호처가 맡는다. 그 후부터는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경찰청으로 업무가 이관된다. 다만 탄핵을 받아 퇴임했거나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경우 등일 때에는 △연금(지급 당시 대통령 보수의 95%) △비서관 3명과 운전기사 1명 임명 등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가 중지된다. 예외는 있다. ‘필요한 기간의 경호 및 경비’는 유지된다. 기간에 제한이 없어서 사실상 종신 경호를 받는 셈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 진압해 내란죄 및 반란죄 수괴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뒤 사면된 전두환 전 대통령이 퇴임 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울경찰청의 경호·경비를 받는 이유도 여기에 근거한다.
무상 임대, 사후에 근거 만들어
현재 전두환 전 대통령 수행경호에는 경찰관 10명, 사저 경비에는 전·의경 69명이 배치되어 있다. 인력이 투입되면 예산도 든다. 경찰청이 민주당 장세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전두환 전 대통령 경호대의 예산은 총 27억원이 넘었다. 연평균 6억7000만원이다. 전직 대통령 중 가장 많았다. 이 비용에는 테이저건(전기충격기)·가스삼단봉·CCTV 구입과 같은 시설장비 유지비, 인건비, 차량비가 포함되어 있었다. 같은 기간 노태우 전 대통령의 연평균 경호대 예산은 6억2000만원, 김영삼 전 대통령은 5억8000만원이었다. 고인이 된 김대중 전 대통령 사저 경비에는 연평균 2억7000만원, 노무현 전 대통령에는 3억8000만원이 쓰였다. 경찰청 경호계의 한 관계자는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은 퇴임 후 10년이 지나지 않아 경호업무는 경호처에서 하고 사저 경비업무만 경찰이 해서 예산 단위에 차이가 난다”라고 설명했다.
눈에 띄는 점은 또 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 경호동에는 서울시 땅이 무상으로 쓰였다. 전직 대통령 경호동은 대통령의 퇴임 전에 대통령 경호처에서 사저 근처 부지를 매입해 경호동을 조성한다. 지방자치단체가 땅을 무상으로 제공한 것은 이례적이다. 다른 전직 대통령 경호동에서는 볼 수 없는 특혜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저는 부인 이순자씨 명의로 된 연면적 385.74㎡ 95-4 단층 주택이다.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연면적 257.59㎡ 95-5 2층 주택도 사저 구실을 한다. 이순자씨의 동생 이창석씨가 주인이기 때문이다. 등기부등본을 보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소유였던 95-5 주택은 1996년 2250여 억원 추징금으로 가압류를 당했다. 2003년 강제 경매를 통해 주택은 이창석씨에게 넘어갔다. 사저 맞은편에는 경찰청의 경호동 두 채가 있다. 그뿐 아니라 사저 뒤쪽에 위치한 서울시 소유의 연면적 285.75㎡ 2층 주택도 현재 경호동으로 쓰인다. 이 건물은 연희문학창작촌 5개 건물 중 1개 동이다. 서울시는 무상 임대의 근거로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 제24조 1항(국가나 다른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해당 행정재산을 공용·공공용 또는 비영리 공익사업용으로 사용하려는 경우)을 꼽는다.
하지만 서울시와 경찰청이 건물 사용에 관한 공문을 주고받은 것은 2009년부터였다. 그 전까지는 사실상 근거 없이 서울시 건물이 경호동으로 쓰였다는 뜻이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공문이 없어서 증언자 이야기로 당시 상황을 추론해보면, (서울시 소유 땅과 건물을) 경호 목적으로 썼던 거 같다. 과거에는 지방자치단체 개념이 없으니까 서울시와 경호처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땅을 사서 경호를 위해 썼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경호처가 쓰던 건물을 경찰이 그대로 이어받아서 그 외의 내용은 모른다”라고만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다가오는 4월30일 무상 임대계약이 끝나기 때문에 그 이후 상황에 대해서는 검토 중이라고만 밝혔다. 3월 중순 정도에 결정 사항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뒤늦게 드러난 한 전직 대통령의 경호·경비 실태에 대한 비판은 거세지고 있다. 송호창 변호사는 “중요한 국가범죄를 행한 전직 대통령에게 과도한 경비가 지급되는 건 불합리하다”라고 지적했다.
취재 도움·이동권 인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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