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각하’만을 위한 방송, 각하 한 분만을 생각하는 방송, 〈나는 꼼수다〉의 흥행 이후 각하를 위한 헌정 미디어가 차고 넘친다. 〈나는 꼽사리다〉 〈유시민 노회찬의 저공비행〉 〈이슈 털어주는 남자〉 같은 팟캐스트를 비롯해 〈뉴스타파〉 〈손바닥TV〉 등 동영상 제작물까지,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에 대한 완벽한 패러디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의 〈희뉴스〉, 민중의소리가 제작하는 〈생방송 애국전선〉, 〈한겨레〉 허재현 기자의 〈현장일기〉 등도 인기가 좋다. 일반 시민도 〈나는 일반인이다〉 〈찌라시바〉 등 방송을 만들어 인터넷과 모바일에 올리고 있다. 경제 전문가, 시사 전문가, 미디어 전문가, 정치 전문가, 방송 전문가들이 속속 입성하면서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이런 식의 시사 콘텐츠가 더 많이 생겨나리라 예상된다.

 

 


〈나는 꼼수다〉 이후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이들 콘텐츠는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이미 통합진보당 유시민 공동대표와 노회찬 대변인이 진행하는 〈저공비행〉은 〈나는 꼼수다〉를 제치고 팟캐스트 다운로드 순위 1위에 올라섰고, 언론노조에서 제작한 〈뉴스타파〉는 공식 방송도 시작하기 전에 티저 동영상만으로 4위에 랭크됐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가 진행하는 〈이슈 털어주는 남자〉 역시 방송 한 달 만에 궤도에 진입해 5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다운로드 횟수, 예능보다 몇 배 많아

흥미로운 점은 이런 시사 콘텐츠가 예능 콘텐츠를 압도한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생방송으로 볼 수 있는 〈손바닥TV〉의 경우 월요일과 목요일 저녁에 방영되는 시사 프로그램 꼭지가 박명수·토니안·배기성 등 유명 연예인이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 꼭지보다 시청률이 훨씬 좋다. 〈손바닥TV〉의 김흥동 PD는 “예능보다 시사 프로그램 다운로드 횟수가 최대 8배 정도까지 많이 나온다. 정봉주 전 의원이 출연했던 꼭지는 48만명, 이준석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이 출연한 꼭지는 35만명이 시청했다”라고 말했다.

이런 시사 콘텐츠들은 각각 목표 시청자층을 명확히 한다. 경제학자 우석훈씨(타이거픽처스 자문)와 〈나는 꼽사리다〉를 진행 중인 선대인씨(선대인경제전략연구소 소장)는 “우리나라엔 고학력 주부가 많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학력이 높은데 사회 진출을 하지 않고 가사 노동만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주부들이 청소하고 설거지할 때 재밌고 유익하게 들을 수 있는 방송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예상대로 반응이 뜨거웠다”라고 설명했다.

후발 주자들이 미디어 전략을 세울 때 가장 많이 염두에 두는 것은 바로 〈나는 꼼수다〉와의 차별화다. 〈저공비행〉을 진행하는 노회찬 통합진보당 대변인은 “나꼼수처럼 웃기고 재미있게 만들기는 힘들다. 정치평론가나 기자들이 하는 방송과는 다르게 우리는 정치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져가야 할 것 같다. 비판뿐만 아니라 대안을 제시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청취자들의 반응이 뜨거워 제작진도 흥이 난다. 〈이슈 털어주는 남자〉를 진행하는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라디오에 오래 출연했는데 갈증이 있었다. 차제에 한번 풀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반응이 빠르고 좋아 매일 업데이트하는 걸 목표로 올리고 있다. 대선 때까지 이대로만 가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의 〈뉴스타파〉는 이근행 전 MBC 노조위원장과 노종면 전 YTN 노조위원장이 만든다는 것만으로도 이슈가 되어 예고편 시청자가 많았다. 이근행 전 위원장은 “기대는 큰데 장비가 너무 열악하다. 50만원짜리 카메라 두 대뿐이라 걱정이다. 하지만 기존 미디어 보도의 맹점을 충실히 지적할 것이다”라고 각오를 밝혔다.

비주류 미디어에서 나타나던 시사 콘텐츠 열풍은 이제 주류 미디어에까지 상륙했다. 방송 3사의 간판 개그 프로그램에서도 이제 시사 패러디가 대세다. KBS 2TV 〈개그 콘서트〉에서는 ‘사마귀 유치원’과 ‘비상대책위원회’가 인기를 끌고 있고, SBS 〈개그 투나잇〉에서는 ‘주간 브리핑’ ‘RED’ ‘영상물심의위원회’ ‘최고의 직업’ 등의 코너가 자리를 잡았다. MBC 〈웃고 또 웃고〉에서는 ‘나는 하수다’가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20~21쪽 딸린 기사 참조).

〈개그 콘서트〉를 따라잡기 위해 시사 패러디 코너를 집중 배치했다는 〈개그 투나잇〉의 안철호 PD는 “최근까지 대세는 공감 개그였다. 〈개그 콘서트〉의 ‘애정남’ ‘비상대책위원회’ ‘불편한 진실’ 등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의 개그가 인기였다. 우리는 여기에다 시사 패러디를 첨가해 강화했는데 반응이 좋다. 심야 시간대인데도 시청률이 9%(수도권 기준)까지 나왔다”라고 말했다.

이전까지 개그 프로그램에서 시사 패러디는 계륵이었다. PD가 교체되면 제일 먼저 손대는 것이 바로 시사 패러디 코너를 만드는 것인데 만드는 족족 실패했다. 〈개그 콘서트〉의 서수민 PD는 “시사 코미디 하면서 여러 번 망해봤다. 시청자들이 무엇을 좋아할지 포인트 잡기가 정말 힘들다.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는 이야기가 의미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더 힘들다”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KBS 〈개그 콘서트〉의 ‘사마귀 유치원’은 고소 사건으로 유명세를 탔다.

 

시사 패러디 코너를 강화한 SBS 〈개그 투나잇〉의 ‘투나잇 브리핑’.

 

tvN 는 시사 풍자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연말 〈개그 투나잇〉을 시작하면서 안철호 PD는 〈나는 꼼수다〉의 김용민 교수에게 자문했다. 김 교수는 양시론과 양비론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줄타기를 하지 말고 자기주장을 선명하게 하라고 조언했다. 안 PD는 “시사 패러디를 할 때 가장 두려운 것이 ‘너희들이 뭘 안다고’ ‘사안의 핵심도 모르면서’ 이런 비판을 듣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바로 사안을 바라보는 시선인데 개그맨들이 여기에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 그럴 때 개그맨들이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바로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댓글을 통해서 사안에 대한 일반인의 태도를 보고 태도를 정한다”라고 말했다.

〈개그 투나잇〉은 〈개그 콘서트〉 출신의 중견 개그맨인 강성범과 박준형을 투톱으로 내세워 안정감 있게 시사 풍자를 하고 있다. 얼마 전 박준형이 개그맨과 국회의원을 비교하면서 “여의도에서 웃기는 사람은 두 종류가 있다. 낮에 웃기면 정치인이고 밤에 웃기면 개그맨이다”라고 표현해서 갈채를 받았다.

〈개그 투나잇〉은 앞으로 시사 풍자 수위를 더욱 높일 예정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안철수 원장 그리고 북한 김정은 부위원장을 남자 1호 ·2호·3호로 설정한 ‘시사 애정촌’ 꼭지를 준비 중이라는 안철호 PD는 “아직까지는 〈개그 콘서트〉가 한 수 위라고 생각한다. 직접 정치인을 ‘까는’ 방식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개그 코너 안에 녹인다는 점에서 〈개그 콘서트〉가 앞선다”라고 평가했다.

〈개그 콘서트〉가 시사 패러디의 대표 주자로 각인된 결정적 계기는 강용석 의원이 ‘사마귀 유치원’에서 국회의원의 행태를 풍자한 최효종씨를 ‘집단모욕죄’로 고소한 사건이었다. 강 의원은 자신의 재판을 유리하게 하기 위해 정략적으로 〈개그 콘서트〉를 고소한 것이었는데, 정작 강 의원보다 더 정략적으로 판단하고 더 정밀한 법적 고려를 한 쪽은 〈개그 콘서트〉 제작진이었다. 오히려 강 의원 고소를 패러디하며 강수를 두었던 서수민 PD는 “당시 강용석 의원은 무슨 말을 하든 욕을 먹는 상황이었고 〈개그 콘서트〉는 상승 무드였다. 여론이 우리 편이어서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판사·검사·변호사들이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었는데, 취하를 목적으로 건 것이라고 하기에 세게 나갔다”라고 회고했다.

서수민 PD는 “동료들이 강용석 의원의 고소를 최효종 개인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다. 개그 프로그램은 함부로 대해도 된다는 생각에 분개했다. 김원효의 말대로 ‘웃기니까 우스운 사람으로 안다’는 생각이었다. 실제 방송된 것보다 더 세게 풍자했는데 수위를 조절하느라 애를 먹었다. 강용석 의원에게 역이용당하지 않도록 표현에 신경 썼다. 직접적인 표현보다 은유와 함축을 활용했다”라고 말했다.


‘강용석 학습효과’ 덕에 날개 달아

‘강용석 학습효과’ 덕분에 개그 프로그램은 날개를 달았다. 함부로 시비를 거는 사람이 줄었기 때문이다. 안철호 PD는 “아직까지 특별한 외압을 받은 적은 없다. 다만 자체 회의를 통해 표현 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정도다. 예전보다 표현의 제약이 덜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서수민 PD는 “강용석 고소를 패러디한 후 시사 풍자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지고 개그맨들도 의욕이 충만해 있어 이를 자제시키느라 애를 먹고 있다”라고 말했다.

시사 풍자가 확실한 장르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관건이라고 서수민 PD는 말했다. “시사 풍자는 누구의 입을 통해서 진정성 있게 전달되느냐가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개그맨은 한계가 있다. 대통령 성대모사를 한다고 해서 시사 패러디가 되는 것이 아니다. 치기 어린 비판이 아니라 저 사람은 전문적 식견도 있는데 맞는 말을 한다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SNL 코리아〉의 장진 감독이 발군이다.” 장진 감독이 진행하는 tvN의 〈SNL 코리아〉는 시사 풍자의 영역을 토크 프로그램으로까지 확장한 것으로 인정받는다. 케이블 TV라는 불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강한 인상을 남기면서 시사 풍자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이다.

이제 시사는 대세다. 좀 더 거칠게 말하고, 노골적으로 말하고, 비틀어 말하는 다양한 시사 풍자물이 등장하고 있다. 지난 몇 년 사이 모습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쥐를 그려넣은 G20 정상회의 패러디 포스터 때문에 대학 강사가 벌금형을 받았던 것이 겨우 1년 전이다. 최근 조각가 도갠우(dogandwoo)씨는 이명박 대통령 조형물을 만들어 망치로 부수는 퍼포먼스 동영상을 유튜브 사이트에 올리기도 했다. 시사 콘텐츠와 시사 패러디가 히트 상품이 된 것에 대해 제작자들은 공통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공을 돌린다. 이 대통령에 대한 불만과 의심과 반감이 이런 콘텐츠를 찾게 만든다는 것이다.


MB 풍자 넘치는 이유

일반적으로 시사 풍자는 집권 말기가 되면 창궐하는 경향이 있다. 고 노무현 대통령 집권 말기에도 일명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놀이가 인기를 끌었다. 축구 국가대표팀의 패배와 연예인의 실연 등 얼토당토않은 것까지도 노 전 대통령 탓으로 돌리는 이른바 ‘레임덕담(레임덕에 빠진 대통령에 대한 조롱을 덕담에 비유한 신조어)’이 넘쳐났다.

하지만 정권이 교체되고 달라진 점도 있다. 먼저 담론이 형성되는 공간이 달라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희화화된 곳은 주로 텔레비전·신문 같은 기존 주류 미디어와 네이버·다음 따위의 포털 댓글 서비스였다. 이에 비해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풍자는 팟캐스트,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을 희화화하는 데 동참했던 주류 언론은 SNS를 ‘괴담의 진원지’ ‘그들만의 SNS’라 표현하며 이명박 대통령을 엄호하는 주체로 바뀌었다.

내용도 변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파격적인 언행이 주로 패러디의 대상이 되었던 반면,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과 측근·친인척 비리 의혹 등이 풍자의 소재가 되고 있다. BBK 관련 의혹, 내곡동 사저 매입 논란 등에 대한 수사가 지지부진하거나 충분하지 못하다는 점이 현직 대통령에 대한 풍자를 부추기는 한 원인이 됐다. 집권 마지막 해, 이명박 정부는 다양한 시사 콘텐츠와 시사 패러디물로 인해 더 험난한 길을 걷게 될지도 모르겠다.

취재 도움·배정훈 인턴 기자

기자명 고재열·임지영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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