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대통령직 인수위에는 큰 그림이 없다. 5년간 나라를 이끌 방향도 철학도 없다. 경제 실정, 잃어버린 10년, 아마추어 정권이라고 비난하며 정권을 잡은 보수 세력이 이렇게 준비가 부족할 줄이야.
이명박 정부가 출범을 눈앞에 뒀다. 10년 만의 정권 교체로 뭔가 좋은 일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널리 퍼져 있다. 그런데 기대에 어긋나는 일이 속출해 걱정스럽다.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는 두 달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실수에 실수를 연발해왔다. 오죽하면 한나라당에서조차 걱정과 비판이 쏟아졌을까.

5년 전 인수위에 참가했던 한 사람으로서 회상해보면 두 인수위는 실수와 착오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그때의 인수위는 적대 언론에 포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두어 가지 실수를 했을 뿐이다. 그 대신 한 경제단체 중역이 외신 인터뷰에서 황당무계하게도 참여정부를 ‘사회주의적’이라고 말해서 큰 논란을 빚었던 기억이 새롭다.

5년 전과 비교할 때 이번 인수위에 없는 게 몇 가지 있다. 첫째, 큰 그림이 없다. 인수위는 초장부터 통신료·양도세 등등 국민에게 생색낼 만한 작은 문제에 치중했다. 이런 것은 전문·기술 문제로서 당연히 새 정부 출범 뒤 해당 부처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인수위의 임무는 앞으로 5년간 나라를 어떤 방향으로, 어떤 철학으로 이끌어가겠다는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세세하게 나비와 이파리를 그릴 게 아니라 큰 스케치를 하는 것이다.

‘지방 출신’은 많으나 ‘지방 사람’은 없는 인수위

유감스럽게도 이번 인수위는 큰 그림 없이 192개나 되는 과제를 나열하는 데 그쳤다. 큰 그림 없이 출범하는 정부는 키 없이 항해하는 배, 혹은 등불 없이 밤길을 걷는 것과 같다. 그러면서도 작은 그림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걱정투성이이다. 상식 밖의 경부운하가 여전히 버티고 있고, 금산분리 완화도 위태로운 발상이다. 대학 입시를 대교협에 맡기겠다는 것, 영어 몰입 교육은 철학의 빈곤을 그대로 보여준다.

둘째, 이번 인수위에는 ‘지방 출신’은 많으나 ‘지방 사람’이 통 없다. 그 뒤 발표한 초대 청와대 수석 진용에는 아예 한 명도 없다. 장관은 또 어떻게 될까? 지방 사람이란 현재 지방에서 사는 사람을 말한다. 지방 사람이 우리 국민의 50%를 넘는데, 고위급에서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은 현저한 불균형, 심각한 지방 무시다. 장차 정책 논의에서 지방 경시, 중앙 편중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서울 집중이라는 악습을 타파하려고 참여정부는 줄기차게 노력했는데, 이명박 정부는 출발부터 뒤로 돌아가고 있다. 새 정부는 뭐든지 바꾸고 참여정부와 거꾸로 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혹 아닌지. 웬만하면 안 바꾸는 게 원래 보수의 특징인데, 이번에 집권한 보수 정권은 무조건 바꾸려는 경향을 보인다.

‘프로’의 솜씨는 언제쯤 보여주려나

셋째, 이번 인수위는 여유가 없다. 처음부터 통신료·양도세 인하 등 당장 생색나는 정책에 끌리더니 그 뒤로도 숱한 정책을 내놓고 집어넣기를 거듭했다. 지분형 아파트, 영어 몰입 교육 등등 불쑥불쑥 정책을 내뱉고는 문제점이 드러나면 허겁지겁 주워 담았다.

왜 이리 초조할까? 이런 우왕좌왕은 근본적으로 철학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지만 당선자의 재촉도 한몫했을 가능성이 있다. 밤늦게 인수위를 방문한 당선자가 사람들이 없음을 질책하자 인수위는 당황해서 일요일에도 일한다는 방침을 정했는데, 자고로 조급함, 단기주의에서 좋은 결과가 나온 적이 없다.
경제 실정, 잃어버린 10년, 아마추어 정권이라고 비난과 악담을 퍼붓던 보수가 막상 정권을 잡고 보니 이렇게 철학이 없고, 준비가 부족할 줄이야. 새 정부가 의욕적으로 길을 떠나니 웬만한 허물은 덮어주고, 격려·협조하는 것이 미덕이겠지만 인수위가 보여준 두 달간의 준비운동은 후한 점수를 주기가 참으로 어렵다. 이제 곧 본경기가 시작하는데, 늘 자랑하던 ‘프로’의 솜씨는 언제쯤 보여주려나.

기자명 이정우 (경북대 교수·경제학)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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