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외계인 과학자가 지구에 탐사를 나왔다. 이 행성에 살고 있는 생명체의 특성을 연구해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제 ‘호모 사피엔스’라는 종에 대한 부분만 남았다. “호모 사피엔스는 침팬지와 가장 가까운 사촌 종이나 여러 측면에서 다른 특성을 보인다. 첫째….” 침팬지와 인간의 근본적 차이를 말하는 일, 그리 쉽지 않다. 게다가 우리 자신이 인간이니 객관적 탐구가 힘들다. 그래서 때로는 외계인의 시선이 필요하다.

40년간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야생 침팬지를 연구한 제인 구달과 그의 후예들 덕분에, 우리는 침팬지에게도 뛰어난 지능, 도구 사용 능력, 그리고 언어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최근에는 침팬지 집단마다 고유한 ‘문화’마저 존재한다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예컨대 서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침팬지는 견과류를 돌로 내리쳐서 깨먹지만, 똑같이 견과류가 널려 있는 동아프리카의 침팬지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생선회를 먹는 일본의 문화와 스테이크를 먹는 서양의 음식 문화가 서로 다르듯이, 동물의 세계에서도 집단 고유의 음식 문화라는 것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인간 세계에만 문화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힘들게 된 듯하다.


ⓒ시사IN 자료인류는 ‘구운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운명이 갈렸다.

뇌 용량의 차이는 먹을거리에서 비롯

하지만 인간과 침팬지의 차이를 깊이 있게 탐구한 외계인이라면 아마도 뇌의 차이에 주목했을지 모른다. 침팬지의 뇌 용량은 인간 것의 4분의 1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600만 년 전쯤에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두 사촌 종의 뇌 용량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구달의 발자취를 따라 탄자니아의 침팬지 행동을 연구했고 최근에 하버드 대학 인간진화생물학 학과를 만든 리처드 랭엄은 이 책에서 ‘먹을거리’의 차이로 두 종의 근본적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그는 180만 년 전쯤에 우리 조상들이 불에 고기를 구워 먹기 시작하면서 인간이 침팬지와는 완전히 다른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논리는 이렇다. 몸을 유지하는 데 드는 최소 에너지를 ‘날음식’만으로 충당해야 한다면 여분의 에너지는 생기기 힘들다. 소화만을 위해서라도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들기 때문이다. 가령, 날음식만 먹는 침팬지는 하루 6시간이나 뭔가를 씹고 있어야만 일상이 가능하다. 그런데 인류의 진화 역사에서 어떤 무리가 ‘화식’을 발명해 구운 고기를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하면서 운명이 갈렸다. 날것을 소화하기 위해 사용했어야 할 에너지와 시간 중 일부가 뇌로 보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랭엄은 인간이 침팬지에 비해 큰 뇌를 갖게 된 것은 바로 이런 먹을거리의 차이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 또한 상대적으로 작은 턱과 입, 뭉툭한 이, 그리고 짧은 소화관을 진화시킨 이유도 바로 화식 때문이라고 말한다.

〈요리본능〉 리처드 랭엄 지음/조현욱 옮김/사이언스북스 펴냄
고작 요리 따위가 인간의 진화 경로를 결정했다니!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우리가 요리 문화를 만들었지만, 그 요리 문화가 다시 우리를 만들었다는 것이리라. 좀 더 나아가면, 우리가 지금 만들고 있는 어떤 문화가 우리 미래를 결정할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것은 외계인의 시선이어야 잘 포착될 수 있는 광경이다. 만일 인간의 독특성에 대해 탐구하는 외계인들이 존재한다면, 그들에게도 이 책은 필독서일 것이다.
기자명 장대익 (서울대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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