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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1호 숭례문이 불탄 지 일주일이 지났다. 불타는 순간의 숭례문만큼이나 여론의 열기도 뜨겁다. 언론은 연일 ‘대한민국의 자존심이 무너졌다’며 화재 사건을 대서특필하고 있고, 전국 중요 문화재의 방재 시스템을 점검하고 나섰다. 문화재청·소방방재청·지자체 등 관련 기관은 언론의 융단폭격을 방어하는 한편,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보도하고 변명하고 수습하느라, 이들 호떡집에도 불이 났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국면에서 가장 민감한 사안은 소를 잃어버린 책임이 누구에게 있느냐다. 하루는 화재 진압에 실패한 소방방재청을 질타하고, 다음 날은 방재 시스템 구축에 소홀했던 문화재청에 돌이 날아든다. 숭례문 개방의 주역인 이명박 당선자도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자칫하면 ‘우리 모두의 탓’이라는 양비론으로 흐르기 쉬운 분위기다. 책임 공방에 묻혀 거시적 대책 마련이 뒷전으로 밀릴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숭례문 화재의 근본 원인을 문화재청 내부의 인적 구조에서 보는 시각도 나와 눈길을 끈다. 사건 발생 사흘째 만난 문화재학자 최 아무개씨는 문제의 원인을 ‘문화재 관리 전문가의 부재’라고 꼽았다. 그는 “지금 문화재청에는 방재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문화재 관리 전문가 대신 일반직 공무원만 넘쳐난다”라고 지적했다. 문화재 관리 전문가가 없다 보니 현재 논의되는 문화재 방재 시스템 구축도 ‘전문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이런 주장은 과연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까.

2007년 9월 발간된 문화재청 연감에 따르면 문화재청의 전체 직원은 모두 736명이다. 이 가운데 기능직 239명을 제외하면 문화재청 직원의 대다수는 307명을 차지하는 일반직 공무원이다. 이들은 9급, 7급 행정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배치된 ‘순수’ 공무원이다.  

문화재 전문인력으로 볼 수 있는 이들은 사실상 ‘학예연구직’ 59명이 전부이다. 이마저도 최근 5년 사이에 세 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그런데 이들 중 상당수는 각 지역의 문화재연구소에 배치된 연구인력일 뿐, 문화재청에서 문화재 보존·관리 실무를 담당하는 이는 거의 없다. 일부 인원이 문화재청에서 발굴·조사 관련 업무를 담당할 뿐이다. 

문화재 관리 전문 인력 없어

문제는 학예연구직 역시 문화재 보존·관리 교육을 전문으로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들은 대부분 고고학, 미술사학 전공자로 문화재청의 특별채용 형식으로 공무원이 됐다. 더욱이 이들은 순수 연구직에 적합한 석·박사로 보존과 관리의 계획을 짜는 행정 업무와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경제학 박사가 건설현장을 진두지휘하는 셈’이라는 것이다. 결국 문화재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일반직 공무원이 문화재청의 절대다수인 가운데, 연구에 골몰해야 할 학예직이 ‘구색 갖추기’용으로 인력 틀을 형성한 것이다.

이는 황평우 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이 사건 초기에 지적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사건 당일 숭례문 화재 현장에서 만난 황 소장은 “문화재안전과 직원 9명 중 절반이 도난·도굴 관련 전문가이고, 안전관리 담당자는 4명뿐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문화재청의 인적 구조로는 사후 대책에도 한계가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지적은 화재 원인 규명 등에 밀려 이슈화하지 못했다. 황평우 소장은 “아무래도 학예직 연구원의 행정 능력이  떨어지는 만큼 관련 전문가 영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전문인력을 배출하는 기관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지난 1998년 문화재청이 직접 건립한 전통문화학교에서는 매년 15명의 ‘문화재관리학과’ 졸업생이 배출된다. 하지만 ‘고고학’ 위주로 학예연구직 인원이 배정되는 관행 때문에 이들 중 문화재청에 진출한 인력은 거의 없는 형편이다. 문화재청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양성한 인력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문화재청이 문화재 전문인력 양성에 실패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운 대목이다. 

 
물론 반론도 있다. 문화재청의 주요 실무자인 최이태 문화재안전과장 같은 이의 견해는 이와 다르다. 최 과장은 “나도 대학에서 문화재와 관련 없는 학과를 전공한 사람이지만, 20년 이상 실무 경력을 쌓으면서 전문가가 됐다”라고 주장한다. 현장 경험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험주의’는 ‘전문인력 양성’이라는 대의와 배치될 뿐 아니라 정책적 틀 안에서 문화재 관리가 이뤄질지 의구심을 품게 만든다. 최 과장이 속한 ‘문화재안전과’가 지난해 3월에야 신설됐다는 것이 단적인 예다. 

정책 능력의 한계는 문화재 보존과 관리의 법적 근간이 되는 ‘문화재보호법’을 살펴보면 단박에 드러난다. 지난해 4월 전면 개정된 이 법의 ‘관리와 보호’편을 보면 27개 항목이 대부분 수리기술자와 관련한 내용일 뿐, 정작 ‘관리’와 ‘보호’에 대한 내용은 ‘문화재 관리를 지자체에 위임할 수 있다’는 내용이 거의 전부다.  

법적 토대가 이러니 제대로 된 ‘방재 매뉴얼’이 갖춰졌을 리 만무하다. ‘신속하게 신고하고 안전조처를 취한 뒤 침착한 소화 활동을 통해 주요 문화재를 보호해야 한다’라는 하나마나한 내용이  ‘문화재 재난 위기대응 실무 매뉴얼’의 전부다. 이쯤 되면 문화재청으로서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럼에도 문화재청이 ‘적심’이라는 용어조차 모르는 소방 공무원들의 화재 진압 방식을 문제삼는 건 다소 뻔뻔스럽다. “낙산사 화재가 일어난 뒤에도 화재 방지 모의훈련 한번 기획하지 않은 점을 반성해야 한다”라는 비판에 대해 문화재청은 과연 어떤 변명을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문화재청은 할 말이 많다. 인력 736명과 예산 4300억원, 그리고 지방청이 없는 빈약한 조직구조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항변이다. 조유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기상청, 관세청도 다 지방청이 있는데, 가장 중요한 문화유산 관리와 보호를 위한 지방청은 왜 만들어주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지방청이 없으니 문화재 관리도 지자체에 위임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한계에도 문화재청이 근본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전문가들은 “문화재청이 문화재를 모두 관리하지는 못해도 주요 문화재에 대한 관리 감독은 철저히 했어야 한다”라고 입을 모은다. 서울 중구청의 관계자도 “지자체 공무원에게 관리만 맡겨놓고 문화재 관리교육을 실시하거나, 지침을 제시하지 않았던 문화재청이 왜 저렇게 할 말이 많은지 모르겠다”라고 항변했다.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할 생각은 않고, 하드웨어 타령만 했다는 비판이다.

숭례문 잃고도 여전히 ‘직무유기’

숭례문 문제만 해도 그렇다. 서울시의 숭례문 개방 정책에 동의한 건 결국 문화재청이다. 서울시의 ‘힘’에 문화재청이 밀렸다고는 해도 개방할 때 까다로운 단서 조항을 달 수는 있었다. “야간에 무인경비 시스템이 작동되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 많은 걸 어떻게 일일이 관리할 수 있느냐”라는 문화재청 관계자의 말은 누가 봐도 ‘직무유기’다.

2006년 문화재청이 작성한 ‘방재 시스템 구축 및 우선순위’ 보고서에도 문화재청 업무의 허점이 곳곳에서 보인다(아래 리스트 참고). 이 순위는 국보의 중요도에 몇 점, 소화기 개수에 따라 몇 점 하는 식으로 점수를 매겨 화재 위험도를 정했다. 불탄 숭례문이 48위로 밀린 건 소방서가 가깝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는 ‘개방 공간’인 숭례문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다. ‘방화’ 가능성을 애초부터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이다. 보물 1호 흥인지문이 64위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자가 2007년 〈문화재 연감〉을 확인한 결과 최근 문화재청이 42억원을 들여 실시한 ‘중요 목조 문화재에 대한 화재예방 사업’에서도 숭례문은 제외된 것으로 드러났다. 애초부터 숭례문은 문화재청의 ‘눈 밖’에 있었다는 이야기다. 숭례문 화재는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유홍준 청장이 사의를 표명한 뒤에도 문화재청 내부에선 여기저기 책임을 전가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만큼 억울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어찌됐든 문화재청은 사태의 ‘1차 책임자’이다. 소방방재청이나 지자체, 혹은 이명박 당선자 등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일은 문화재청이 해야 할 일이 아니다. 묵묵히 거시적 안전 시스템 구축에 힘쓰는 것이 불탄 숭례문에 대한 예의다.   

 
 
기자명 이오성 기자 다른기사 보기 dodash@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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