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안희태서울 광진구는 어린이 영어 교육에 관한 한 ‘사교육 신대륙’이다. 위는 영어 학원 버스를 타는 초등학생.

“영어 유치원이요? 여기 한 블록에만 여섯 개 있어요.” 사교육의 메카 대치동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니다. 어린이 영어에 관한 한 ‘사교육 신대륙’은 서울시 광진구다. 이명박 당선자의 교육 정책이 아직은 ‘선언’ 수준에 그치는 가운데, 광진구민은 이미 그 ‘실체’를 눈앞에서 보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올해부터 22개 초ㆍ중교를 ‘영어 몰입 교육 시범학교’로 운영하기로 하고, 그 첫 대상으로 광진구의 광남초등학교를 선정했다. 이 학교는 3월부터 3·4학년을 대상으로 수학과 과학을 영어로 가르치게 된다. 광진구를 보면, 새 정부의 영어 공교육 정책이 불러올 미래의 장면을 미리 만날 수 있다.

광남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둔 이 아무개씨(34)는 “처음 시작이 우리 아이 학교라니 특혜를 받는 기분이다. 싫어하는 학부모를 본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씨는 아이가 다니고 있는 영어 유치원을 그만 두게 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학교에서 받는 교육을 따라가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으로 오히려 더욱 사교육에 집착하게 된다. 월 80만원 안팎의 수업료를 내는 영어 유치원은 사실상 최고가 영어 사교육 기관이라 할 수 있다.

주변 학원가는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선뜻 취재에 응하는 학원이 드물었다. 한 영어 유치원 원장은 시범학교 지정 이후 상담 건수도 눈에 띄게 늘었고, 소득 수준에 견줘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아이를 영어 유치원에 보내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다른 과외나 학원을 줄여서라도 강남·분당 학부모처럼 영어 유치원에 보내고, 해외 연수를 보내려고 한다. 영어가 확고한 1순위가 된 거다.”

또 다른 영어 유치원 원장 역시 위기감보다는 기대감을 드러냈다. “수학·과학 영어 몰입 교육은 영어 유치원에서는 이미 예전부터 해오던 것이다. 곧 미술, 체육 등으로도 확대되리라고 본다. 영어 유치원이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정부 정책이 학원가의 뒤를 따라오는 모양새란 이야기다. 사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신뢰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당선자 측의 영어 교육 정책을 두고 강남·분당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는 ‘뭐라도 해야 하지 않나’라는 조급함과 막연한 불안감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당장 ‘자기 아이의 현실’로 영어 몰입 교육을 맞이한 광진구의 학부모들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발 빠르게 사교육 시장으로 달려가는 분위기다. 서울시교육청은 영어 몰입 교육을 올해 안에 22개 학교까지 확대한다는 방침이고, 새 정부는 일단 접어둔 전국 단위 영어 몰입 교육 카드를 언제 다시 꺼내 들지 모른다. 온 나라가 ‘대치동’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

 

기자명 천관율 수습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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