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에 사는 김 아무개씨(67·여)는 항상 가방에 맹독성 제초제인 ‘그라목손’을 넣고 다닌다. 4년 전 조희팔 일당이 운영하던 다단계 금융회사에 노후자금 3억원을 투자했다가 몽땅 날린 뒤부터다. 김씨는 “중국에 도피한 조희팔이 잡혀오지 않으면 영영 피해 구제를 못 받을 거 아닌가. 차라리 이 제초제를 먹고 세상을 버릴 작정이다”라고 말했다.
대구의 한 피해자는 친인척 4명에게 조희팔 회사에 총 15억원대 투자를 권유했다가 조희팔이 중국으로 밀항하면서 이 돈을 몽땅 날렸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그는 유일하게 남은 자신의 집 한 채를 처분한 뒤 자기가 투자를 권유해 손해를 본 친인척 4명에게 똑같이 나눠준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3조원대 금융 다단계 사기극이라 할 조희팔 사건은 2004년 11월 대구에 본사를 둔 BMC라는 의료기구 임대 사업체에서 비롯됐다. 조희팔은 이 업체 회장을 맡아 투자자로부터 돈을 끌어모았다. 골반교정기·안마기·가요반주기 등을 산 뒤 이를 임대해 수익금을 돌려준다는 이른바 렌털 마케팅을 시작했다. 조희팔식 다단계 사업체는 대구 본사 외에 전국 각 대도시의 50여 개 지사 내지 센터로 구성됐다. 대구·경북은 ‘씨엔’, 서울·경기·인천은 ‘리브’, 부산·경남은 ‘챌린’이라는 이름이었다.
이들의 피라미드식 금융 사기 수법은 교묘했다. 과거 대규모 다단계 사기 사건이 황당무계한 고수익을 약속하며 투자자의 일확천금 심리를 노렸다면 이들은 은행 이자의 7~8배 수준인 연리 35%를 확정금리로 주겠다는 미끼를 내걸고 ‘저금리 시대 재테크 사업’이라고 포장해 일반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실제로 매일 소액씩 수익금이 통장에 들어오는 것을 본 투자자들은 사기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투자자 대부분은 가족·친지·친구들에까지 조희팔식 마케팅을 ‘괜찮은 재테크’로 알리는 전도사가 되었다. 삽시간에 전국 조직망을 갖춘 5만여 명의 금융 피라미드 구조가 완성된 배경이다.
밀항 후에도 수백억원 돈세탁
조희팔 사기 사건 주범들이 투자자의 돈을 은닉한 채 중국으로 밀항한 뒤 경찰과 검찰은 국내에 남은 일부 사기 잔당을 체포해 사법처리 절차를 밟았다. 피해자들도 채권단을 구성해 은닉 재산을 찾아내려는 자구 노력에 나섰지만 피해를 구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조씨가 밀항 후 버젓이 국내 자금책을 동원해 한 번에 30억~50억원 규모로 수백억원을 돈세탁해 중국으로 가져가도 속수무책이었다. 토지와 건물 등으로 국내외에 교묘히 은닉된 피해자들의 투자금은 조씨가 잡혀 들어오지 않는 한 제대로 찾아낼 방도가 없다.
현재 중국에서 매일같이 골프장을 출입하며 호화 도피 생활을 하고 있다는 조희팔 일당은 모두 중요 지명 수배자이다. 강태용·강호영·최천식·조희필(조희팔의 동생)씨 등이 그들이다. 최근 형기를 마치고 석방된 공범들도 속속 중국의 조희팔 일당을 찾아 모여들고 있다는 것이 조희팔 측근들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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