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정보 총괄 기관인 국가정보원이 설상가상이다. 원세훈 국정원장은 12월20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사실을 일반 국민과 똑같이 “TV를 보고서 알았다”라고 말했다. 여야 정보위원들이 한목소리로 ‘국정원은 잠자는 곳이냐’고 비난하자 원 원장은 다시 “(북한 측 발표와 달리) 김정일이 달리는 열차가 아니라 대기 중인 열차에서 사망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 국정원이 김정일 위원장의 유고를 51시간 동안이나 전혀 낌새조차 채지 못했다는 정보 무능에 대한 질타를 모면해보려는 고육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원세훈 원장의 이 말은 김정일 위원장 사망 배경에 마치 북한 측이 숨기는 모종의 ‘이상 징후’가 개입된 것처럼 암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로 인해 정보기관 수장으로서 해서는 안 될 무책임한 발언을 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연간 1조원대 예산을 사용하고, 그 사용처도 대외비인 국정원이 정보 먹통으로 조롱당하고 있다. 국정원의 잇따른 난맥상에 여야는 한목소리로 원세훈 원장의 아마추어식 국정원 운영 방식을 질타하며 국정원장 교체를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과 일본의 정보기관도 북한 발표 전까지 몰랐기 때문에 국정원만 특별히 정보력이 부족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말로 이번에도 원세훈 원장 체제를 두둔하고 나섰다.


ⓒ국정원 제공이명박 정부 들어 국가정보원(위)의 정보 무능이 계속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MB 정부 국정원의 정보 무능을 비판하는 여론이 거세지자 한나라당과 보수 언론 일각에서는 엉뚱하게도 그 원인을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으로 돌리고 나섰다. 한나라당은 국정원의 대북 정보 무능에 대해 “김대중·노무현 10년 집권 때 대북 햇볕정책이 휴민트(인적 정보)를 와해시켰다. 현 정부 들어 복구했지만 4년이란 시간에는 한계가 있었다”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도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대북 파트가 소외되면서 붕괴한 휴민트 라인을 아직 복구하지 못한 데서 문제가 발생했다. MB 정부 들어 국정원이 탈북자를 활용해 대북 휴민트 복원에 나섰지만 아직 복구가 덜됐다”라고 보도했다.


‘휴민트’는 미국보다 한 수 위였는데…

그러나 국정원 안팎의 증언을 종합하면 이는 사실을 전혀 엉뚱하게 호도하는 주장에 불과하다. 정보는 인공위성과 정찰기, 통신감청 장비 등 첨단 장비로 신호정보를 포착하는 시긴트(SIGINT)와 사람에게 직접 수집하는 정보인 휴민트(HUMINT)로 나뉜다. 대북 정보 수집과 관련해 시긴트는 미국이 막강하다. 반면 휴민트는 한국이 한 수 위일 수밖에 없다. 국정원은 미국 정보기관과 휴민트·시긴트를 교환하는 정보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문제는 이번 김정일 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망과 같은 북한 고위층 동향 관련 비밀 정보를 파악하는 데 시긴트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휴민트적 요소가 중시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보 전문가들은 역설적으로 대북 휴민트가 꽃을 피운 때는 남북 교류협력이 활성화됐던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이었다고 말한다. 국정원의 한 전직 간부는 “아무리 교류협력 정책을 펴더라도 정보기관의 고급 정보 수집업무는 오히려 더 필요한 부분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남북관계 교류 폭이 넓어지면서 휴민트 정보 수집과 분석 틀이 박정희·전두환 정권 시절보다 훨씬 넓어지고 다양해졌다. 한 예로 하루에 수백 명씩 사업차 평양을 오가던 다양한 사람들이 대북 휴민트 요소였다는 점은 현 정부 인사들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뉴시스대북 정보력 부재로 퇴진 압력을 받는 원세훈 국정원장(위)이 12월20일 국회 정보위에 출석하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차장을 지낸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은 “MB 정부가 추구한 대북 고립적대 정책으로 다양하게 구축된 대북 휴민트가 사라졌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북한 지도부 동향과 건강 상태에 관한 고급 정보를 파악하는 데는 그들과 직접 만나는 것을 능가하는 방법은 없다. 탈북자의 정보는 만난 것이 아니라 들은 것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더욱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국정원 조직개편을 내세워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대북 교류협력 확대 과정에서 구축된 다양한 휴민트 정보 전문 인적 자산을 청산한 것도 정보력 약화를 예고했다. 원세훈 원장은 국정원에서 대북 정보 수집 및 분석을 담당하는 3차장실을 대폭 축소하고, 대북전략국도 폐지했다. 이 과정에서 베테랑급 정보요원들이 조직을 떠나거나 대거 한직으로 밀려났다. 


MB 정부 들어 중국 쪽 정보력도 약화

지난 정부와 MB 정부 국정원의 대북 정보 수집 역량 차이는 중국과의 관계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미국 등 전통적 우방은 물론 북한에 영향력이 큰 중국과도 정보 협력관계를 적극 추구했다. 주중 한국 대사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대북·북중 관계 정보가 큰 자산이었다.

대표 사례가 MB 정부 들어 통일부 장관을 지낸 김하중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의정부 시절부터 주중 한국 대사를 맡고 있던 김씨를 유임시키는가 하면, 자신의 5년 임기 내내 그를 중용했다. 참여정부 주요 인사들과 아무런 인연이 없던 김씨를 주중 대사로 장기간 유임시킨 것은 그가 중국의 국무위원 등 고위층과 다양한 인맥을 형성하는 등 중국 관련 전문성이 뛰어난 적임자라는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그 결과 북·중 관계를 둘러싼 중요 정보는 실시간으로 국정원에 들어왔다. 김정일 위원장 등 북한 지도부가 중국을 방문한다든지, 북한 지도부의 최신 동향 등과 관련해 중국 정부가 확보한 최고급 정보도 국정원에 즉각 포착됐다.

하지만 MB 정부 들어 한·중 협력관계에 금이 가면서 과거와 같은 고급 정보는 차단됐다. 지난 6월 ‘김정은 방북’ 오보 소동도 한·중 관계가 막힌 데 따른 필연적인 정보 먹통 사건이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의 사망 사실을 안 뒤 미국·일본·러시아 정상과는 한반도 안정을 위해 전화 통화를 했다. 하지만 김정일 사망 사실을 미리 통보받았다는 중국의 정상과는 통화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MB 정부 국정원의 정보력 약화는 전임 정권의 대북 교류협력 정책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정부의 대북 고립적대 정책이 불러들인 필연적 산물이라고 보는 게 더 설득력이 있다. 여기에 정보 분야 비전문가이면서도 서울시장 시절 참모를 지낸 인연으로 MB로부터 무한 신임을 받고 있는 원세훈 국정원장의 아마추어식 조직 운영이 화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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