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일이다. 1999년 6월, 김종대 당시 보건복지부 기획관리실장이 출입기자 등에게 문건을 배포했다. 정부가 2000년 1월부터 건강보험 완전 통합을 하기로 했는데 이에 반대하는 내용이었다. 복지부 고위 공무원이 건강보험 통합에 반대하고 나선 이 사건은 ‘항명 파동’으로 보도되었고, 결국 그는 직권 면직되었다. 그리고 12년이 흘러, 그가 돌아왔다. 지난 11월15일, 그가 통합하면 안 된다면서 그 탄생에 줄곧 반대했던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으로 컴백한 것이다. 사회보험노조와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시민단체는 그의 퇴진을 요구하며 1인 시위에 나섰다.

먼저 건강보험 전사(前史)를 알 필요가 있다. 의료보험이 처음 시작된 해는 1977년. 50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행되었다. 2000년에 건강보험으로 통합되기 전까지 공무원 및 사립학교 교직원 의료보험관리공단, 227개 지역의료보험조합, 139개 직장의료보험조합 등 수백 개 조합으로 쪼개져 있었다. 당시 조합마다 재정 상태가 달랐다. 통합 이전에는 소득이 같은 직장 가입자라도 자신이 속한 건강보험조합에 따라 보험료가 최고 4.25배까지 차이가 났다. 또 서울의 대기업 직장의료보험조합과 지방의 작은 지역의료보험조합 사이에 재정 격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고 만성적으로 적자 조합이 생겼다. 이런 재정 격차 때문에 의료보험의 보장성 수준을 재정이 가장 어려운 조합에 맞추었고, 전반적으로 의료 혜택이 하향 평준화되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에 ‘건보 통합’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국민의 정부 초기에 2단계 통합을 거쳐 건보 통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시사IN 조남진12월1일 김종대 이사장 퇴진을 촉구하는 피켓 시위가 국민건강보험공단 건물 앞에서 열렸다.

김영삼 정부 때까지 보건복지부 관료들은 ‘조합론’과 ‘통합론’으로 엇갈려 논쟁을 했다(30쪽 상자 기사 참조). 김종대 신임 이사장은 조합론을 주창하던 관료들의 좌장 격이었다. ‘항명 파동’ 이전에도 그는 건보 통합과 관련해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1989년 3월, 여야가 만장일치로 의료보험통합법안을 통과시킨 적이 있다. 당시 복지부 공보관이던 그는 ‘통합 시 직장보험료 2~3배 인상’된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당시 시민단체들은 그가 낸 보도자료가 거짓이라고 파면을 요구하기도 했다. 가령 그 보도자료에는 현재도 시행하지 않는 ‘상병수당 지급’으로 5955억원이 더 들어간다고 되어 있었다. 상병수당은 병에 걸려 직장을 잃었을 때 그에 대한 보상으로 지급하는 돈을 말한다. 예나 지금이나 시행을 하지 않고 있는데, 이런 비용까지 보도자료에 포함한 것이었다. 결국 보험료가 인상된다고 대대적으로 보도되었고,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통합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송상호 사회보험노조 정책실장은 “김종대 신임 이사장은 날조된 보도자료를 내 2000년까지 건보 통합을 10년 이상 지체하도록 만든 장본인이다. 그런 사람을 청와대가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으로 임명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건강보험 통합 반대를 외쳐온 김종대 이사장.
보건의료단체연합 등 시민단체가 우려하는 것은 김종대 이사장이 재등장한 시점이 매우 미묘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민건강보험법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심판이 청구된 상태이다. 2009년 6월, 현재 대한의사협회 회장인 경만호씨(당시 동북아메디컬포럼 공동대표) 등 7인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직장 가입자 와 지역 가입자 사이에 보험료를 부과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고, 직장 가입자가 지역 가입자에 비해 돈을 더 내기 때문에 헌법이 보장한 평등권과 재산권 보장을 침해한다는 주장이었다. 12월8일 헌재에서 이 재판과 관련해 공술인 진술과 최후 변론이 열린다. 청구인 측 진술인으로 이규식 교수(연세대 보건행정학)가 나서고, 이해관계인인 공단 측 진술인으로 이상이 교수(제주대 의료관리학)가 나선다. 청구인 측 대리인은 법무법인 영진이고, 공단 측 대리인은 법무법인 바른이 담당하다가 지난해 말부터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이찬진 변호사가 추가되었다.

건강보험 분리, 민영화로 가는 길?

애초 시민단체 등은 이 헌법소원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2000년 건보 통합 당시에 이를 반대했던 직장의보가 중심이 돼 제기했던 헌법소원에서 ‘조건부 합헌’ 결정이 있었기 때문이다(경만호 등 청구인 측은 이전 판결에서 지역 가입자의 소득 파악률을 높이고, 재정운영위원회에서 보험료 부과를 조정한다는 것을 전제로 합헌이 난 것인데, 이러한 활동이 미진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공술인 진술을 하는 것도 이례적이다. 한 법조계 인사에 따르면, 공술인 진술은 대통령 탄핵처럼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에 대해 이루어진다. 이 인사는 “변론 기일이 늦추어진 데다 공술인 진술까지 하는 것을 보면 재판관들 사이에 합의가 안 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정부가 의료 민영화에 대한 의지가 있기 때문에 판결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건강보험제도에 대형 사고가 날 수도 있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시민단체는 건강보험법에 대한 헌법소원과 관련해 김종대 신임 이사장의 과거 행적에 대해서도 염려한다. 대구가톨릭대 겸임교수 시절 김씨는 2009년 헌법소원 청구인인 경만호 대한의사협회장의 출판 기념회에서 초청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김씨는 통합 위헌소송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정신이 나가지 않은 바에야 100% 위헌 결정이 나올 것이다. 건강보험이 쪼개져야 의료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뉴시스경만호 대한의사협회장.

지난 11월15일 김종대 이사장은 취임사에서 “(공단이) 보험료를 부담시키면서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많이 노력해왔다는 식의 의견서를 헌재에 제출하였다니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다”라고 자신의 인식을 드러냈다. 그리고 1999년 항명 파동 당시 자신이 썼던 글을 공단 홈페이지에 재차 올렸다가 파문이 일자 다음 날 삭제하기도 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건강보험 분리를 강하게 주장했던 사람이 헌법소원 이해 당사자인 공단 이사장으로 오면서 재판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라고 말했다. 촛불시위로 인해 저지되기는 했으나 이명박 정부는 정권 출범 초기에 영리병원 허용,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 민간 의료보험 활성화 등 의료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거나 검토했다. 이규식 교수, 경만호 의사협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있던 2005년께부터 의료계 인사들이 구성한 ‘청메포럼’(청계와 메디컬을 합한 이름) 멤버로 참여해왔다(〈시사IN〉 제203호 참조). 정상혁 청와대 보건복지비서관, 이규식 교수, 김종대 신임 이사장, 경만호 의사협회장 등 의료시장화론자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참여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국민건강보험법에 대한 헌법소원에서도 이들 가운데 세 명의 이름이 다시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이진석 교수(서울대 의료관리학)는 “건강보험법에 대한 헌법소원이 자칫 의료 민영화의 우회로가 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스럽다”라고 말했다.

헌법재판소는 최후 변론을 하고 나서 한 달 전후에 최종 판결을 내린다. 빠르면 12월 안, 늦으면 1월에 결정이 난다. 공술인으로 나서는 이상이 교수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만일 위헌 판결이 나게 되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역과 직장으로 쪼개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예전처럼 재정이 좋지 않은 조합의 수준에 건강보험 보장성을 맞추게 되기 쉽다. 가뜩이나 OECD 평균 보장성(73%대 수준)보다 한국 수준이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전반적으로 의료 혜택이 하향 평준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은 60%대 초반. 의료보험 1차 통합 전년도인 1997년 의료보험제도의 보장성은 48% 수준이었다).

이상이 교수는 “건강보험공단을 직장과 지역으로 나누는 것은 사실상 국민을 소득 수준, 건강 상태, 연령대에 따라 분할하자는 것과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서울대 산학협력단이 직장 가입자와 지역 가입자의 특성을 분석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2008년 기준), 직장 가입자 소득은 403만원, 60세 이상 노령인구 비율은 3.0%였고, 지역 가입자 소득은 321만원, 노령인구 비율은 36.2%였다. 건강보험이 쪼개지면 젊고 건강한 상태로 직장 생활을 하며 보험료를 납입하던 직장 가입자가 늙거나 질병에 걸려 그만두면 그동안 직장건강보험에 대한 본인의 기여와는 상관없이 재정 상태가 열악한 지역건강보험을 이용해야 하는 ‘모순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건강보험이 분리되면 이는 의료 민영화의 중요한 기반이 될 가능성도 있다. 과거의 조합 방식을 유지했다면, 의료 시장주의 세력의 의료 민영화 공세에 맞서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이진석 교수는 “의료보험조합 몇 개를 떼내어 미국식 의료체계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예컨대 삼성과 현대의 직장의료보험조합과 삼성병원·아산병원을 직접 연결하는 네트워킹을 해보려는 실험이 진작 이루어졌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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