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프랑스 신용등급이 AAA(트리플 A)에서 AA+로 강등되었다는 발표가 나왔다. 무디스·피치와 함께 세계 3대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발표한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 직후 S&P는 이것이 기술적인 실수로 발생한 것이라며, 프랑스의 신용등급은 여전히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정정했다.

그럼에도 프랑스 사회 전반에는 신용등급 강등에 대한 염려가 점점 짙게 드리워지고 있다. 금융·증권 시장에서나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던 신용등급 문제가 이제 카페에서, 빵집에서 저녁 식사 테이블의 대화 주제로 자연스럽게 떠오르고 있다. 파리 10대학 사회학과 교수인 프랑수아 바탱은 AFP 인터뷰에서 추상적 개념인 신용등급이 시민에게는 마치 원자력 사고나 지진 재해 같은 등급으로 인식된다고 지적했다.

사회학자인 이자벨 베레비 호프만 또한 신용등급 하락이 프랑스인의 심리적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를테면 프랑스인들은 ‘트리플 A’라는 신용등급 평가가 경제위기에서 자신을 보호해줄 마술 같은 보호막이라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한편 정치권이 의도적으로 신용등급 강등 문제를 부각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등급 평가에 시민의 관심을 집중시킴으로써 경제위기가 몰고 온 사회·경제 문제들을 덮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더 심각한 사안들이 신용등급에 묻혀 쉽게 처리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Reuter=Newsis10월23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 정상회의에서 사르코지(앞줄 맨 왼쪽)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뒷줄 맨 오른쪽) 독일 총리 등 각국 정상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신용등급 강등설, 프랑스 신용의 위기로

신용등급 강등설은 프랑스 국가 신용이 위기를 맞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지난달 프랑스 정부는 긴축 예산을 통해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7.1%에 이르는 재정적자를 2013년 유럽연합(EU) 권고 기준인 3%로 줄이고, 2016년에는 균형 재정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지난해 프랑스의 재정적자 규모는 1488억 유로(약 229조원)에 이른다.

11월10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프랑스 정부가 발표한 경제 개혁안이 2013년 채무 규모를 3%로 낮추기에는 부족하다며 추가 정책을 요구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S&P가 프랑스의 신용등급 강등 오보를 낸 다음 날이다. 이로써 프랑스인은 이탈리아의 경제위기가 프랑스로 전염되고 있음을 처음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그리스에서 시작된 유럽 재정위기는 부채 규모가 워낙 크고 유럽연합 회원국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국채 수익률도 위험 수위로 치솟고 있다. 이들 나라의 국채 수익률이 7%를 넘어서면 정부가 국채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워 구제금융 순서를 밟을 가능성이 높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무너지면 프랑스까지 충격을 받게 된다. 시장에서도 “이탈리아 다음 차례는 프랑스다”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11월14일 기준 프랑스의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이 3.4%로 독일보다 두 배 높다는 지표가 상징적이다. 이 같은 수치의 이면에는 프랑스가 국가 부채를 줄일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가 지난달 제시한 긴축재정안을 살펴보면 사회복지 부문 예산 삭감이 주를 이룬다. 일단 프랑스 정부는 근로자의 은퇴 연령을 60세에서 62세로 높이는 방안을 2018년부터 시행할 계획이었지만, 이를 한 해 앞당겨 2017년 실시하기로 했다. 은퇴 연령이 높아질수록 퇴직연금 지출을 줄일 수 있는 만큼 프랑스 정부는 향후 5년간 44억 유로(약 6조7000억원)의 예산 절감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밝혔다.

가족 수당과 주택보조금은 경제지수와 연동시키지 않고 1%만 인상하기로 했다. 의료보험을 위한 지출 규모는 2012년 예산의 2.8%에서 2.5%로 낮추어 5억 유로(약 7677억원)를 절약한다. 이는 곧 의료보험 환불 급여가 줄어든다는 의미다. 공산품과 서비스의 부가가치세는 5.5%로 낮췄던 것을 다시 7%로 인상한다. 반면 소득세·상속세·재산세 등은 2012년과 2013년 인플레이션 리듬에서 상승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같은 대책을 내놓으면서 프랑스 정부는 내년 프랑스 경제성장률을 1%로 전망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는 2012년 경제성장률이 0.1% 안팎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미국 금융기관의 전망은 이보다 더 비관적이어서, 마이너스 0.6% 성장을 예상한 곳도 있었다.

사실 프랑스가 신용위기를 피부로 실감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이다. 유럽 국가 가운데 경제 순위 2위인 프랑스는 독일과 함께 유럽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안정된 국가로 인식되어왔다. 2011년 8월에 나온 전 세계 안전은행 리스트에서 프랑스 예금공탁금고(CDC)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안전한 은행으로 평가받았다.


사르코지 집권 뒤 국가 부채 더 늘어

문제는 국가 부채 규모가 크다는 점이다. 그동안 국가 부채 문제는 우파 진영의 단골 메뉴로 등장해왔다. 2007년 대선 캠페인에서 사르코지는 1분마다 지폐 계산기로 돈을 세는 이벤트를 생방송으로 벌이기도 했다. 국가 빚이 얼마나 되는지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사르코지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 국가 빚은 더 늘고 국고는 줄었다.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처럼 감세정책 등을 펼친 결과다. 따라서 사르코지 정부의 부채 감축정책이 시장이나 유럽연합의 믿음을 얻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현재 신용등급 트리플 A에 속하는 나라는 총 16개국이다. G7 국가 중 독일·캐나다·프랑스·영국이 이에 속한다. 트리플 A 등급을 받은 나라 중 일본·스페인·아일랜드는 신용등급이 하락했다. 사실 신용등급 강등설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프랑스인들은 이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트리플 A라는 평가 점수를 잃게 될지 모른다는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프랑스인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이에 비해 일부 프랑스 경제학자들은 자국의 신용등급 강등이 크게 놀랍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경제 전문가 마크 투아티는 “지난 10년 동안 프랑스는 신용등급 트리플 A에 걸맞지 않았다. 신용평가사가 매긴 등급은 프랑스에 대해 아주 우호적이었다”라고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지적했다. 그는 나아가 “현재 던져야 할 질문은 프랑스가 트리플 A 등급을 상실할 것인가가 아니다. 언제 상실할 것인가이다”라고 비관적인 결론을 내렸다.

기자명 파리·최현아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