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제주올레 걷기 축제’(11월9~12일)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초기 모습을 닮아 있었다. 올레 축제에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서울에서 내려온 학생들도 있었다. 해외 관광객도 많았고 해외 매체도 취재에 적극 나섰다. 스위스 우정의 길(제1코스)에 이어 캐나다(제2코스)와 영국(제3코스)도 제주올레와 우정의 길을 조성한 영향인 듯했다.

올레 축제 직전 치러진 제2회 ‘월드 트레일 콘퍼런스’에는 ‘여행 고수’ 두 명이 찾아왔다. 전 세계 배낭여행자들의 대부라 불리는 토니 휠러 씨와 국내 배낭여행자들의 대모 한비야씨였다. 두 사람은 11월7일(토니 휠러)과 8일(한비야) 기자 간담회와 대중 강연회를 가졌다.

토니 휠러 씨가 대표로 있던 〈론리 플래닛〉 (최근 BBC 자회사에 매각)은 세계 118개국에서 650여 권의 여행 안내서를 발간해 해마다 700만 부 이상 판매하고 있다. 출판사가 낸 여행서가 아니라 여행자가 낸 여행서를 지향한 〈론리 플래닛〉은 이 업계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그전까지 부자와 지식인에 주목했던 여행서들이 이후 가난한 여행자들을 위해 깨알 같은 정보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제주올레 제공제주도에서 열린 제2회 ‘월드 트레일 콘퍼런스’ 참가자들이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올레길을 걷고 있다.

1972년 신혼여행 때 고물 자동차로 유럽·아시아를 횡단하며 여행을 시작했다는 그는 이번에도 아내와 함께 왔다. 부부는 아직도 신혼여행 중인 것처럼 보였다. 한국을 세 번째 방문한 그는 이번 방문이 한국을 가장 잘 느낄 수 있었던 여행이라고 말했는데,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은 아내가 더 많은 듯했다. 젓가락질도 더 능숙하고 회덮밥도 더 많이 맛있게 먹었다. 아내가 제주도의 풍속과 신화에 대해 ‘호기심’을 보이는 동안 그는 자주 창밖을 ‘관조’했다. 창밖 화순항에는 강정 해군기지 건설에 사용될 골조를 만들기 위한 시설이 건설 중이었다.

103개국을 여행한 한비야씨도 휠러 부부에 뒤지지 않는 여행 전문가다. 그녀가 쓴 베스트셀러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100만 부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지도 밖, 즉 관광지 밖으로 나가 이웃과 구호에 관심을 가지라던 한씨는 최근 국제긴급구호조정총괄기구(UNOCHA) 자문위원으로 선정되었다. 유엔 사무총장 직속 기구로 전 세계에 18명이 활동하고 있다. 그녀의 현장 경험을 유엔이 인정해준 셈이다.


ⓒ제주올레 제공월드 트레일 콘퍼런스에서 강연하고 있는 토니 휠러 씨.
자문위원에 선정된 것에 대해 한비야씨는 “재난도 인기 있는 재난이 있고 인기 없는 재난이 있다. 일본 쓰나미나 아이티 지진 같은 경우는 인기 있는 재난이라 지원이 몰리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심각한데도 지원이 거의 없다. 그런 곳에 분배하는 일을 하는 자리다. 개인적으로도 영광이지만 우리나라가 받기만 하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잘 줄지를 고민하는 나라로 발전했다는 징표라 기쁘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세계를 무대로 출퇴근하는 두 여행자의 여행관을 들어보았다. 1년 중 3분의 1은 런던에서, 3분의 1은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그리고 나머지 3분의 1은 여행지에서 보낸다는 토니 휠러 씨는 “나에겐 집에 대한 애착이 없다. 머물러 있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새로운 곳을 찾게 된다”라고 말했다.

한비야씨는 “개인의 행복과 성장만이 중요했던 내가 이런 멋진 세상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여행 덕분이다. 여행이란 가기 전에는 남의 경험을 참고하게 되지만 결국 가서는 자기 길을 뚫는 일이다”라고 정의했다.

다닐 만큼 다닌 이들은 어떤 여행지를 최고로 꼽을까? 휠러 씨는 “파리와 콩고다. 파리는 모든 사람이 여행을 가고 싶어하는 곳이고, 콩고는 그렇지 않은 곳이어서다”라고 말했다. 한씨는 “우리나라 산이 가장 좋다. 한국의 산에는 독특한 냄새가 있다. 말하자면 흙냄새인데, 그 냄새를 맡으며 지금 백두대간을 종주 중이다. 너무 행복하다”라고 밝혔다.

여행 최고수인 이들이 으뜸으로 치는 여행은 바로 걷기 여행이었다. 휠러 씨는 “우리는 걸으면서 자연을 보고 세계를 보고 그것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고 감사하게 된다. 그래서 걷는 것이 중요하다. 속도를 늦추면 사물의 아름다움을 더 많이 만나게 된다”라고 말했다. 한씨도 “여행 중에서 가장 호사스러운 여행은 바로 걷기 여행이다. 눈과 코와 귀가 모두 뚫린, 오감으로 자연을 느끼는 여행이다. 자연과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올레 제1코스 알오름이 우주 제1경”

ⓒ제주올레 제공월드 트레일 콘퍼런스에서 강연하고 있는 한비야씨.
걷기 여행을 최고의 여행으로 여기는 이들이 제주올레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할까? 토니 휠러 씨는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과 함께 올레길을 걸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길은 눈앞에 기대 이상의 놀라운 경관이 펼쳐지는 곳인데, 제주올레 코스에는 그런 곳이 세 군데나 있었다. 높은 곳에 올라가니 바다와 들판의 풍광이 한눈에 들어오더라”며 〈론리 플래닛〉 한국판에 제주올레를 꼭 추가하겠다고 말했다.

한씨는 한술 더 떴다. 그녀는 “나는 전 세계를 다닐 만큼 다녔다. 그런 내가 최고로 꼽는 풍광은 바로 올레 제1코스 알오름에서 보는 전경이다. 정말 ‘우주 제1경’이다. 그리고 곶자왈을 좋아한다. 이런 곳이 우리나라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 제주올레는 여행자들의 사관학교다. 일단 올레를 걷고 난 뒤 길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라고 말했다.

두 여행 고수는 지난 10년간 한국 여행자들이 많이 바뀌었다고 평가했다. 휠러 씨는 “예전에는 한국 여행자 대부분 패키지 여행을 갔다. 그러나 요즘은 개별 여행을 많이 한다. 얼마 전에는 남극과 북극을 모두 여행하고 온 한국인도 만났다. 나도 한 곳밖에 가지 못했는데 말이다. 한국에는 훌륭한 모험가가 많다”라고 말했다.

한비야씨는 여행을 통해 우리의 의식이 바뀐 것이 중요한 변화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인들이 세계시민 의식을 갖게 된 것이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 젊은이들에게서 많은 가능성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멋지다. 여행자로서 쌓은 사회적 DNA를 그들에게 전수해 기회의 꽃이 피게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한씨는 후배 여행자에게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바로 ‘제2의 한비야가 되겠다’는 말이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제1의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 여행은 자기 자신을 만나는 일이다.”

그런가 하면 토니 휠러 씨는 제주시가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투표에 열을 올리는 것과 관련해 “그 투표를 주관하는 뉴세븐원더스에 대해 구글 검색을 더 해보겠다”라고 말했다. 40년 동안 여행자로 살았던 그도 잘 알지 못하는 기관이라는 얘기였다.

기자명 고재열 기자 다른기사 보기 scoop@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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