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중위 사건을 다룬 군 조사기관에 대해 민간 수사기관 차원의 검증과 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민주당 국방위원인 서종표 의원이 최근 국정감사에서 고 김훈 중위 사건을 다루면서 내린 결론이다. 국방부와 육군 내 각급 조사기관이 스스로 국회에 제출한 김훈 중위 사건 조사 자료 중 자살로 몰아가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고 조작한 흔적이 수두룩했다는 것이다.

서 의원은 또 김훈 중위가 권총 자살했다고 예단해 조사를 소홀히 하거나 증거를 인멸하도록 방치한 헌병대의 초동수사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국방 당국이 인정하면서도 끝까지 ‘자살 결론’을 고집하는 태도를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전문 수사의 세계에서는 초동수사 때 80% 이상 성패가 갈린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도 국방부 조사본부는 ‘김훈 중위 사건 초동수사가 잘못됐지만 별것 아니다’라고 우기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시사IN 윤무영고 김 중위의 부친 김척 예비역 중장(맨 왼쪽)이 군 의문사위를 찾아 아들의 타살 정황을 설명하고 있다.

서종표 의원은 특히 ‘김훈 중위가 스스로 권총을 발사하지 않았다’는 점을 군 수사기관이 객관적·과학적 실험을 통해 확보하고도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해 자살로 둔갑시킨 혐의가 뚜렷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서 의원은 “국방부의 실수였는지 모르지만 국정감사 과정에서 자료 제출을 요구했더니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는 주장과 배치되는 군 내부의 중요 실험 결과가 기록된 서류들이 끼어 들어왔다”라고 말했다.

김훈 중위가 판문점 경비소대에서 의문의 총상 시신으로 발견된 것은 1998년이다.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지금 국회 국방위원이 새롭게 제기하는 의혹은 무엇일까. 그것은 김훈 중위 사망에 사용된 총기의 발사자가 누구인지를 가리는 전문 감정기관의 현장 분석과 총기 실험 결과다. 군 당국이 이미 과학적 실험을 거쳐 김훈 중위가 스스로를 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실험 데이터를 확보했지만, 의도적으로 이를 묵살하고 결과를 왜곡 조작했다는 것이 서 의원이 제기하는 의혹의 핵심이다.

권총이 사용된 사망 사건 수사에서 가장 으뜸으로 삼는 증거는 권총 발사자가 누구인지를 식별하는 뇌관화약 감정이다. 권총을 쏜 사람의 손을 검사하면 발사자 손에서는 뇌관화약 성분인 바륨과 안티몬이 검출된다. 오른손잡이는 오른손에서, 왼손잡이는 왼손에서 화약흔이 나온다는 얘기다. 다른 손바닥에서 검출된 화약흔은 대체로 방어흔(방어를 하다 생긴 흔적)으로 간주된다.


총기 발사 실험 결과 묵살

1998년 당시 최초 발견된 김훈 중위의 양손과 손등에서 채취한 시료를 정밀 검사한 미국 육군수사연구소는 김훈 중위 오른손에 뇌관화약 성분이 없다고 밝혔다. 대신 왼손바닥에서만 화약흔이 나왔다고 했다. 바로 이런 사정 때문에 미국 육군수사연구소는 보고서에 “스스로 쏘았다고 귀결 지어서는 안 됨”이라는 특별 문구까지 삽입했다. 김훈 중위의 왼손바닥 화약흔은 타살 과정에서 방어 자세를 취한 근거로 볼 수도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초동수사를 맡은 군 수사기관은 처음부터 애써 이를 무시하고 억지 자살로 결론을 꿰맞추었다. 김훈 중위가 두 손으로 권총을 잡고 자살했을 것이라고 우긴 것이다.


ⓒ뉴시스국방부를 상대로 줄기차게 김훈 중위 명예회복을 요구하고 있는 국회 국방위 서종표 의원.
초동수사부터 김훈 중위 사건을 자살로 여론몰이한다는 비난이 빗발치자 국방부 특별조사단(현 국방부 조사본부)은 1999년 1월25일 경기도 광주에 있는 특수전 학교 실내 사격장에서 자체적으로 총기 발사 실험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실험에는 김훈 중위 사망에 쓰인 것과 똑같은 M9 베레타 권총을 사용했다. 사격자 3명이 인체 모형의 허수아비에 군복과 두건을 착용시킨 후 김훈 중위의 총상 부위인 측두부에 각각 1발씩 발사해보는 실험이었다. 실험 결과는 상식에 부합했다. 즉 오른손잡이인 권총 발사자 3명 모두의 오른손 등에서 뇌관화약이 검출됐다. 이로써 김 중위 사망 사건에 사용된 M9 베레타 권총은 반드시 방아쇠를 당긴 자의 손에 화약흔이 나타난다는 점이 증명된 것이다.


“논단할 수 없음”을 “스스로 사격”으로

하지만 김훈 중위 타살을 입증하는 이 총기 발사 실험 결과는 간단히 묵살되고 말았다. 군은 김훈 중위 사건과 관계없는 해외의 논문 통계 하나를 예로 들어 이 실험 결과를 배척했다. 1990년 미국에서 발표된 이 논문에 따르면 리벌버와 피스톨 등 모든 종류의 권총을 이용한 사망 사건의 경우 자살자의 손에서 뇌관화약 성분이 검출된 것이 38%였다는 것이다. 이 논문을 근거로 군은 김 중위가 자살했다고 끝까지 우겼다.

김훈 중위 사건을 둘러싸고 군 수사당국이 저지른 무리수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국방부 특조단은 김훈 중위의 사인을 자살로 몰아가기 위해 중요 공문서를 조작하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육군 수사팀은 1998년 10월 김훈 중위 유류품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 증거물 감정을 의뢰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감정을 벌인 결과 “김훈 중위의 야전 점퍼 좌우측 어깨에서 무연화약 성분이 검출되나 양손에 대한 뇌관화약 검사를 별도로 실시하지 못해 발사자가 누구인지 논단할 수 없다”라고 통보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회신한 이 문구를 전혀 엉뚱하게 조작해 자살 근거로 둔갑시켰다. 발사자가 누구인지 논단할 수 없다는 국과수의 회신을 “김훈 중위가 스스로 사격했다고 했다”라고 조작해 발표한 것이다. 이에 대해 국과수의 한 관계자는 “당시 국과수에서는 양쪽 야전 상의 어깨에서 발견된 화약흔을 갖고 김훈 중위 자신이 발사했다는 내용으로 회신한 적이 없다. 의뢰인인 국방부 특조단이 왜 그렇게 해석해 발표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초동수사 때부터 김훈 중위를 자살몰이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온 국방부 조사본부의 무리한 행태는 13년이 지난 요즘도 현재진행형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김훈 중위 사건을 주요 국감 의제로 채택해 진실 규명과 명예 회복을 촉구한 서종표 의원은 그 자신이 4성 장군으로 군 사령관까지 지낸 군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국방부의 이런 태도에는 숨이 막힐 정도라고 심경을 밝혔다. 그는 김훈 중위 사건 해결을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검찰이나 외부의 객관적인 수사기관이 나서서 전면 재조사를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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