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운로스쿨 제도는 법학 교수의 입지에 큰 지각변동을 예고한다. ‘명문’ 자리를 차지하려는 대학 당국의 교육 경쟁도 그렇지만, 비싼 등록금 내고 ‘새 삶’을 개척하려는 입학생이 고루한 강의 방식을 두고 볼 리 없다.
대한민국에서 법학 교수는 참으로 속 편한 직업이었다. 나날이 법치가 강화되는 시대 흐름 속에서 정치·사회적 위상은 갈수록 높아졌지만, 그에 따른 책임은 ‘전혀’ 부담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옥신각신이 헌법 논쟁으로 번질 때마다 어김없이 신문 지상이나 TV 토론에 등장하는 헌법 교수의 모습이 그 대표적인 예다. 교수들은 합헌이냐 위헌이냐 엇갈리는 견해를 내놓으면서 학술적 다양성을 드러내지만, 문제는 그것이 실제 법률가를 양성하는 데는 별 쓸모가 없다. 무료하기 짝이 없는 ‘교과서 읽기’식 헌법 강의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학생은 서울 신림동의 고시촌에서 ‘알아서’ 헌법 공부를 하고, 사법 시험에 합격한 뒤에도 경기도 일산 사법연수원에서 ‘알아서’ 헌법 공부를 한다. 이 ‘고시의 자식’에게 대한민국 헌법 교수는 기껏해야 애정 없는 양아버지 정도일 뿐이다.

신기하게도, 법학 교수는 이처럼 독특한 위치를 매우 영리하게 이용해왔다. 지난 10여 년 동안 사법 체제의 모순과 폐해를 낱낱이 폭로하는 사법 개혁 논의는 법학 교수의 전매특허나 다름없었는데, 이는 법학 교수가 고시촌-사법연수원 체제에서 자유롭기에 가능했다.

최근 교육부와 법학교육위원회가 공표한 로스쿨 예비인가는 법학 교수의 이런 ‘호시절’이 끝나가고 있음을 상징한다. 예비인가를 획득한 각 대학 지도부는 승리감에 들뜰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로스쿨 교육을 책임져야 할 법학 교수는 갑자기 엄청난 책임감이 어깨를 짓누르게 됐다. 이제 법학 교수는 더 이상 한가로운 사법 개혁자 자리에 머무를 수 없다. 그들 역시 로스쿨로 대표되는 새로운 사법 체제의 일원이 된 셈이다.

가까운 장래에 벌어질 일을 상상해보자. 만약 어느 법원 부장판사가 사건 브로커와 술자리를 가진 사실이 폭로되면, 시중의 눈길은 당장 그 법관이 어느 로스쿨 출신인지에 쏠리게 될 것이다. 전관 예우를 일삼던 악덕 변호사가 쇠고랑을 차게 되면, 그 변호사를 배출한 로스쿨과 그 소속 법학 교수의 윤리 수준이 문제 될 수밖에 없다.

사법 개혁자 자리에서 사법 체제의 일원으로

ⓒ뉴시스로스쿨 체제는 사법 개혁 논의에 적지 않은 타격을 줄 전망이다. 위는 지난해 4월 민주적 사법 개혁을 촉구하며 농성을 벌이는 법학자들.
고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상 초유의 극심한 교육 부담이 기다린다. 2009년 3월 로스쿨이 개원하면, 3년 뒤의 변호사 시험 합격률을 높여 ‘명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교육 경쟁이 불을 뿜게 될 것이다. 각 대학당국의 혹독한 시어머니 노릇도 볼만할 텐데, 그보다 강력한 압력은 변호사 시험 합격을 지상 목표로 삼은 로스쿨 입학생으로부터 나오게 되리라 본다. 대기업을 그만두고 은행 대출을 받아 비싼 로스쿨 등록금을 내는 30대 수강생이 고시촌-사업연수원 체제의 교육 방식에 안주해 교과서나 읽으려는 법학 교수를 가만 내버려둘 것 같은가?

사실 이러한 변화는 진작 이루어졌어야 했다. 그 점에서 로스쿨 체제의 출범이 가져오는 법학 교수의 ‘체제 집단화’는 바람직한 면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염려 또한 존재한다. 지금껏 법학 교수는 사법 체제에서 자유로웠기 때문에 사법 개혁자 구실을 자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계속 이같은 개혁 리더십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로스쿨 체제의 출범은 지속적인 사법 개혁을 모색할 새로운 학술적·정치적 리더십을 고민하게 만든다. 법학자는 이제 어디 서 있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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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명 이국운 (한동대 교수·법학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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