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진중권 지음
개마고원 펴냄
이른바 ‘〈디 워〉 사태’ 때문에 이제는 우리 부모님도 진중권이 누군지 알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1998년 어느 날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를 구입했을 즈음에는 나도 저자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책에 빠져 들어, 채 일 년이 지나기 전에 열 번 정도 읽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내 지식 수준에서 단박에 이해되는 책은 아니었던 것이다. 쉽게 읽히지만, 논변이 단순하지는 않아서 열 번이나 반복해서 읽어야 하는 책은 도대체 어떤 책일까?
사실 이 책은 내가 사회참여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는 시발점이 되었지만, 정치 포지션의 관점에서 명쾌한 답을 주는 책은 아니다. 이제 나는 진중권의 자유주의 비평의 칼날을 피해 갈 수 있는 어느 똑똑한 극우파를 상상해볼 수 있다. 지난해 출간된 〈호모 코레아니쿠스〉의 어느 부분에서 진중권은 스스로 그런 반박을 가정한다. “일본 우익은 자기들이 조선의 근대화를 도왔다고 말하고, 한국 우익이 박정희를 ‘근대화 혁명가’로 치켜세운다. 방식이야 어떻든 산업화 자체를 절대적 가치로 보는 이들에게는 당연한 발상이다. 이들에게 폭력적 근대화의 그림자에 대해 얘기해봤자 소용이 없다. 그들은 푸코를 들어 서구에서도 근대화는 어차피 감시와 처벌, 군대식 훈육의 결과였다고 할 테니까. 여기서 ‘근대화’ 자체를 비판하는 푸코의 논지는 한국적 근대화의 폭력성을 옹호하는 논리로 둔갑한다.” 이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그가 겨냥한 필자는 모조리 다 논파당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의 글쓰기는 인문학 텍스트의 그릇된 인용이나 아귀가 맞지 않는 소리에 대한 강력한 혐오감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것들을 정면으로 논파하는 그의 전략은 매력적이고, 정치 포지션에 관계없이, 논리 사유가 어떤 것이라는 사실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그리하여,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열 번씩 읽는 동안 이 책은 나의 논리학 교과서가 되었다.
아직도 실현된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런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지난 내 10년을 규정했다. 특히 좋아하는 문장 : “피임을 가능케 하는 콘돔은 합목적적이다. 그런데 콘돔의 반투과성이 어떻게 독재의 정당성의 근거가 되는 걸까?” 박정희의 독재를 옹호하기 위해 수단의 정당성과 목적의 정당성이 깔끔하게 구별될 수 없음을 증명하려는 이인화에 대한 진중권의 일갈이다. “콘돔의 반투과성이 어떻게 피임의 정당성의 근거가 되는 걸까? 마찬가지로, ‘잘살아보세’ 철학의 합목적성이 어떻게 독재의 정당성의 근거가 되는 걸까?”라고 써줬다면 더 친절했겠지만, 그래서는 이해하는 순간 데굴데굴 구르게 되지는 않았을 것.
이처럼 논리적이면서도 섹시한 비유라니, 지금 봐도 여전히 놀랍다. 진중권의 책 중에서 정치 에세이로는 〈폭력과 상스러움〉을, 미학 관련 책으로는 〈앙겔루스 노부스〉를 지지하는 나이지만, 처음 발견한 이 책은 책을 넘어선 하나의 물건이었다. 부디 다음 세대에도 읽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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