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 킬 더 비디오 스타.’ 2011년 한국은 라디오 정치의 시대다. 대놓고 편파방송을 표방하면서도 잇따른 특종과 단독 인터뷰를 성사시켜 주류 언론을 물먹이고 있는 정치 풍자 토크쇼 〈나는 꼼수다〉(‘나꼼수’)를 필두로, 집권당 대표, 야권 대선 주자, 전직 총리까지 라디오 정치라는 새 물결에 뛰어들었다(〈시사IN〉 제212호 기사). 겉으로 드러난 현상의 밑바닥에는 모바일 플랫폼과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등장이라는 더 거대한 흐름이 깔려 있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김용민 시사평론가, 정봉주 전 의원이 의기투합해 만든 나꼼수는 2011년을 상징하는 키워드로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나꼼수 멤버들은 그들의 방송이 ‘골방 해적방송’ ‘레지스탕스’ ‘언론이 제구실 하면 사그라질 현상’ ‘감기처럼 왔다 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부인하지만, 이들을 겨냥했다고 ‘독해’되는 앱 심의 강화 방침 발표는 방송의 지속성을 위협한다(SNS는 ‘애정남’ 원한다  기사 참조).

유행은 저 홀로 완성되지 않는다. 이슈에서 멀어진 장외 시장에 나와 있는 과거 권력들은 진화한 라디오(팟캐스트)라는 틈새시장의 가능성을 나꼼수를 통해 확인했다. 때마침 선거 바람도 불고 있는 이 적절하고도 기막힌 타이밍. 반론 따위 받지 않고, 특별한 형식도 없고, 정파성 시비가 일면 “열 받으면 너희도 하나 만들어!”라고 오히려 큰소리치는 나꼼수 김어준 총수의 말에 가장 먼저 숟가락을 얹은 사람은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였다.

 

 


4·27 재·보궐 선거 참패와 함께 칩거에 들어갔던 유 대표는 지난 6월 〈유시민의 따뜻한 라디오〉와 함께 대중 정치를 재개했다. 지역 조직이 약한 군소 정당 대표로서, “장소와 시간에 관계없이 청취자(유권자)의 이야기를 듣는 소통 창구 역할로 라디오를 선택했다”라고 말했다. 애초 당대표에 출마하면서 내건 공약 중 하나이기도 했다. 매주 월요일 오후 4시부터 한 시간가량 국민참여당 홈페이지와 인터넷 방송 아프리카TV를 통해 생중계되고, 이후 팟캐스트에 업로드해 본방송을 못 본 이들에게 제공된다. 1000명 이상이 동시 접속하면 서버가 견디지 못하는 국민참여당 홈페이지는 라디오가 생중계되는 날이면 때때로 다운되기도 한다.

말하기보다 들어주는 창구로 라디오를 생각했던 유 대표의 방송 콘셉트는 라디오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따뜻함’과 위로를 표방하지만, 현재까지 파악된 청취자의 반응은 유 대표의 생각과는 조금 다르다. 몇 가지 방송 코너 중 가장 청취자의 반응이 큰 코너가 바로 마지막에 진행되는 ‘5분 이야기’인데, 유 대표의 ‘센 워딩’이 가장 많이 나오는 코너이기도 하다. 


유시민·이해찬·홍준표의 ‘라디오 정치’

10월부터 방송을 시작한 이해찬 전 총리의 경우, ‘정석 정치’를 표방한다. 방송 이름도 아마도 전 국민 필독서가 분명한, 〈수학의 정석〉에서 따온 〈이해찬의 정석 정치〉(‘정석 정치’)이다. 2주에 한 번씩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의 진행으로 오마이TV 생중계 후 온라인 기사와 팟캐스트로 서비스되는 ‘정석 정치’는, 그 이름에 걸맞게 정치 ‘공부’에 초점을 맞춘다.

이 전 총리는 첫 방송에서 “‘꼼수다’가 요즘 유행인데, 정치는 정석으로 해야죠. 이명박 대통령이 꼼수로 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하면 안돼요. (정치는) 공적인 일이니까 정석으로 해야죠”라며 기존 방송과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정치 9단’으로 불리는 이 전 총리의 장점을 살려 청취자에게 집중 정치 과외를 한다는 생각이다. 첫 녹화를 함께 한 장윤선 오마이뉴스 정치팀장은 “논술 선생님과 수능을 앞둔 수험생이 만난 것 같았다”라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한 청취자는 이 전 총리에게 ‘정치계의 애정남(애매한 것 정해주는 남자)’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두 차례 방송한 결과, 성적표(조회 수)는 나쁘지 않다. 오마이TV 생중계 당시 동시 접속자 수는 5000명이 넘었고, 지면으로 중계되는 기사는 약 35만 클릭 수가 나왔다.

여권이라고 가만있을 수 없는 일.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10월12일 부랴부랴 〈홍준표의 라디오 스타〉를 한 시간가량 생중계로 선보였다. 홍 대표가 ‘59년 왕십리’를 라이브로 부르고, 어린 시절부터 담배와 도박에 일가견을 보였다는 따위 ‘인간 홍준표’의 진솔한 매력을 전달하는 데 포커스를 맞췄지만 성적표는 그저 그랬다. 동시 접속자 수가 최대 200여 명이었다.

〈라디오 스타〉는 한나라당에서도 일종의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생각한다. 아직 팟캐스트에 업로드할지 말지도 결정하지 못했다. 내부에서도 고민이 많다. “한나라당이 야권에 비해 젊은 층에 어필할 카드가 거의 없다. 홍 대표는 그런 점에서 적임자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방송도 하고, 팟캐스트 업로드도 해보려고 하는데, 상황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한나라당 관계자의 말이다. 홍 대표는 본인의 방송 다음 날인 10월13일 ‘나꼼수’ 스튜디오를 찾는 등 파격 행보를 이어갔다.

정치인은 아니지만, ‘라디오 정치’ 열풍에 몸을 맡긴 사람들은 이 밖에도 더 있다. 10월18일 인터넷 매체 〈뉴데일리〉 주도로 첫 방송을 시작한 〈명품 수다〉는 보수 진영에서 나꼼수의 대항마가 되겠다는 야심만만한 ‘출사표’를 던졌다. 모든 사회 현안을 다루지만 ‘품위 있게 망가지는’ 토크쇼를 표방했다. 출연자 중 단연 눈에 띄는 사람은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이다. 매주 화요일 〈뉴데일리〉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가 가능하다. ‘나꼼수 자매 방송’도 기다리고 있다. 선대인 경제평론가는 김용민 PD와 함께 경제학자 우석훈 박사, 김소희 전 〈한겨레21〉 기자로 출연진을 꾸려 경제판 나꼼수 〈나는 꼽사리다〉를 10월 중 띄울 예정이다.

이쯤 되면 라디오 정치의 홍수 시대라고 할 만하다. 난데없이 웬 철 지난 라디오일까. 라디오가 현재의 모바일 환경에 특화된 매체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선 나온다.

스마트폰 사용 인구가 2000만명을 바라볼 정도로 폭증하면서, 정치 담론의 유통 구조도 모바일 공간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이용하는 컴퓨터 인터넷 환경과는 달리, 모바일 네트워크는 언제 어느 곳에서도 접속이 가능하다. 그래서 운전을 하거나 책을 읽으면서도 접근이 가능한 ‘오디오형 콘텐츠’가 각광받는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페이스북·트위터 따위 SNS라는 새로운 ‘유통망’이 등장하면서 ‘해적방송’도 사실상 유통 비용이 전혀 없이 확산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현재의 모바일 통신망 속도 수준에서는, 덩치가 큰 영상보다는 비교적 손쉽게 받을 수 있는 오디오가 접근하기 쉽다는 이점도 있다.

하지만 기술 혁신에 방점을 찍는 이런 설명은 해답의 절반에 불과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10월17일자로 76회 라디오 연설을 했지만, 국민 대다수는 모바일 환경에서 이 연설을 듣는 것은 고사하고, 연설이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청와대는 이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을 팟캐스트로도 올려놓았지만, 마지막 업데이트는 1년이 훌쩍 넘은 2010년 5월6일자(46차) 연설이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다. 


텔레비전 대선→인터넷 대선→모바일 대선

‘팟캐스트 정치’ 현상의 원인을, 이명박 정부 들어 더욱 강화된 보수 독점의 미디어 구조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공론장의 균형이 무너지면서, ‘다른 목소리’에 목마른 대중의 욕구도 그만큼 커졌다는 분석이다. 

 

 

 

 

 

 

 

 

역설적으로 이는 보수 언론의 태도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동아일보〉는 10월14일자 칼럼에서 “이제 장외 언론도 언론인지, 사담인지, 예능 프로인지 성격을 분명히 해야 할 때가 됐다”라고 주장했다. 〈중앙일보〉도 10월20일자 칼럼에서 자신을 ‘공정한 정통 언론’으로, ‘나꼼수’ 등 팟캐스트 방송을 ‘편파 매체’로 규정했다. 조선·중앙·동아 등 보수 언론이 독점해 왔던 기존 공론장 구조에 불만을 가진 대중이 팟캐스트 정치 풍자에 열광하고, 이에 보수 언론은 거의 본능적으로 ‘독점 해체’에 대한 위기감을 드러낸 셈이다.

보수 독점의 공론장 구조에 균열이 났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도 있었다.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단일화 대상이었던 박명기 교수에게 선거 후 2억원을 건넨 것이 확인되면서 불거진 이른바 ‘곽노현 사건’은 좌우 대립만큼이나 격렬한 ‘좌·좌 논쟁’을 일으켰다. 보수 언론은 곽 교육감의 사퇴를 기정사실화하고, 〈한겨레〉 등 진보 계열 언론도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을 당시, ‘나꼼수’(17회)는 “진보가 노무현·한명숙 때처럼 또 검찰 프레임에 놀아난다”라며 ‘곽노현 지키기’를 선언했다.

이후 곽 교육감 사퇴 반대 여론은, 사퇴 여론에 견주어 비등하지는 않아도 무시하기 힘든 수준으로까지 증가했다. 주류 미디어가 입을 모아 ‘사퇴’를 외칠 때 팟캐스트 정치 토크쇼 하나가 여론의 흐름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괴력’을 발휘한 것이다. 이는 팟캐스트 정치의 위력을 여실히 증명하는 동시에, 진보 진영 내부 비판자들에게는 그 위험성을 최초로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진중권 교수 등 몇몇 진보 논객은 트위터와 기고 등을 통해 “‘나꼼수’가 사실과 당위를 뒤섞고, 진영 논리로 팩트를 덮으려 하고 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팟캐스트 정치’라는 현상은 결국 ‘모바일 정치’라는 거대한 물줄기의 한 지류다. 텔레비전 토론이 최초로 도입된 1997년이 ‘텔레비전 대선’, 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2002년이 ‘인터넷 대선’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면, 2012년은 ‘모바일 대선’이 될 것이라는 데 여야 모두 큰 이견이 없다. 선거에서 SNS는 특히 수도권·중산층·고학력층을 중심으로 큰 위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되풀이해 드러났다. 이들은 여론 전문가들이 ‘여론 주도층’이라고 부르는 층으로, 여론 전파 능력이 높다. 즉, 여론 주도층 내부 여론이 SNS에서 일차로 구성되고, 그렇게 형성된 여론이 오프라인에서 외부로 확산되는 구조다.  


한나라당, 스마트 TV 시대에 큰 기대

모바일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반기는 쪽은 아무래도 야당이다. 실제로 여야 간에 선거나 논쟁이 붙으면 SNS 여론은 사실상 반한나라당 일변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민주당 문용식 인터넷소통위원장은 “모바일 기반 소셜 네트워크 환경에 적응하는 최대 관건은 공감과 소통 능력이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는 60년을 공포와 이권의 배분으로 정치해온 세력이다. 적응하기 힘들 거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우혜‘팟캐스트 정치’라는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내며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나꼼수

 

 

이명박 정부에 대한 ‘거부층’이 대단히 두껍다는 점도 야권에는 호재다. 이전 같으면 주류 미디어의 보수 독점이 공고한 현실에서 이런 거부층이 조각조각 쪼개져 있을 수도 있었지만, 모바일 플랫폼과 SNS는 반MB·반한나라 정서를 한데 묶어내는 데도 효과적인 도구다. 하지만 민주당 또한 10월3일 서울시장 야권 단일화 경선 때에는 젊은 층과 SNS의 ‘적’이 되어 위력을 실감해야 했다. 이 층의 여론이 ‘반(反)한나라’인 동시에 ‘비(非)민주’라는 사실을 아프게 재확인한 것이다.

한나라당은 SNS 적응에 힘겨운 모습이다.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는 10월15일 자신의 트위터에 ‘대학생인데 나 후보를 지지한다’ 따위 엉뚱한 트윗이 올라와 망신을 당했다. 트위터 홍보 담당자가 후보 본인의 트윗 계정까지 관리한다는 사실이 들통난 셈이다. 진정성 있는 소통이 요구되는 SNS에서는 큰 악재였다.

한나라당 김성훈 디지털위원장은 “트위터보다는 카카오톡과 같은 밀착형 SNS가 우리 지지층에 더 맞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카카오톡을 이용한 선거운동으로 효과를 본 경험이 있다. 김 위원장은 스마트 텔레비전 시대에도 기대를 걸었다. “트위터와 같은 SNS가 수도권·젊은 층에는 중요하고, 우리가 밀리고 있는 것이 맞다. 하지만 머지않아 스마트 텔레비전 시대가 오고, 모바일 환경도 속도가 개선되면서 영상 위주로 재편된다. 특히 스마트 텔레비전은 한나라당 지지층인 주부·고령층이 쉽게 적응할 수 있다.”

플랫폼이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지만 만능은 아니다. 이 점에서 여야의 온라인 사령탑은 판단이 같다. “전자 민주주의라는 말을 예전부터 많이 했는데, 여기서 핵심은 전자가 아니라 민주주의다. 기술만으로는 아무것도 못한다.”(민주당 문용식) “우리가 SNS에서 밀리는 건 SNS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정치를 못하기 때문이다.”(한나라당 김성훈)

1997·2002년 대선과 달리 2007년 대선이 이렇다 할 새로운 정치문화 없이 지나간 것도, 현실 정치에서 대선 구도가 워낙 일방적이어서 새 정치문화를 만들 동력 자체가 없었던 탓이 크다. 결국 한나라당에 분노하면서도 야권을 미덥지 않아하는 광범위한 대중에게, 대안으로 내놓을 수 있는 ‘더 좋은 민주주의’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핵심이다. 팟캐스트 열풍과 모바일 정치가 기존 정당정치에 내는 숙제이기도 하다.

 

 

기자명 천관율·장일호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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