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단비 같아요. 제가 얼마나 상심했다 화다닥 살아났는지 모르실걸요.” 좀 전까지만 해도 속상해 찔끔 눈물을 흘렸다는 이은의씨(37·사진)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꽉 짜인 일정대로 공부하는 로스쿨 학생인 그는 틈틈이 술도 한잔 해야 한다. 그 틈틈이 책도 썼다.
〈삼성을 살다〉는 이씨가 근무하던 삼성에서 보낸 12년 9개월간의 기록이다. 1998년 입사해 영업사원으로 근무하다 2005년, 상사의 성희롱에 대해 소송을 걸었다. 5년여 싸움 끝에 승소했다. 그는 내부에서 왕따를 당하기도 하고 ‘윗선’의 회유를 받기도 했다. 어느 날, 승소 소식과 함께 로스쿨행을 결심했다.
책은 올해 봄 중간고사 열흘 전부터 대략 한 달 동안 썼다. 학점과 맞바꾼 셈이다. 당시 일을 적어놓은 블로그가 많은 도움이 됐다. 글을 쓰면서 지난 일이 비로소 정리가 되었다.
생애 첫 소송을 진행하며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부고발을 한 사람이 운동가로 자리를 잡는 것보다, 일상의 자리를 사수하며 꽃을 피우는 게 바람직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올해 초 광주의 대학으로 진학했다.
회사를 나와 가장 좋았던 건 ‘시선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소송을 하던 몇 년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늘 붙이고 살아왔다. ‘그렇게 조금씩 매일, 다시 행복해졌다’는 그. 잠시 넘어졌던 대신 더 좋은 사람이 될 기회를 얻었다. 예전보다, 작은 일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고 남들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게 됐다.
책은 단지 삼성만의 문화를 그리고 있지는 않다. 이 사회 어디서나 그럴법한 직장문화를 이야기한다. 이씨도 평범한, 혹은 좀 더 발랄한 30대 여성이다. 그런데, 찔끔 울었던 건 무엇 때문일까. 책이 나왔는데 알릴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연락하지 않지만 응원하고 힘을 주었던 직장 내 지인들에게 잘 살고 있다는 안부를 전하고 싶다고 이씨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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