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재일재혼 가정 자녀의 성씨 변경은 과거에 비하면 대단한 진보이긴 하지만 바뀐 성이 아이에게는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다. 진짜 바꿔야 할 것은 한 가정 안에 다른 성씨의 공존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의 편견이다.
호주제가 폐지되고 가족관계 등록부가 호적을 대체했다. 앞으로 가족관계 풍속이 상당히 달라질 것 같다. 새해 첫 일주일 동안 자녀의 성씨 변경 신청이 1500여 건이나 접수됐다. 그 중 다수가 재혼 여성이 자녀의 성을 새 남편의 성으로 바꿔달라는 거란다. 자녀가 새 아버지와 성이 달라 고통이 심했기 때문이란다. 이혼에 대한 편견이 강고한 현실에서 흔적을 지워 아이의 고통을 줄이겠다는 생각은 타당하다. 성을 바꾸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던 과거에 비하면 대단한 진보다.

하지만 뒤집어 보면 그늘도 있다. 성을 바꾸어야만 아이가 보호될 만큼 이혼에 대한 편견이 깊다는 얘기다. 부모 이혼으로 인한 아이의 고통은 사회의 편견 때문에 배가된다. 한 가정 안에 두 가지 성이 공존하는 것이 용인되는 문화라면 굳이 아이 성을 바꿀 이유가 없을 것이다. 현실이 그렇지 못하니까 궁여지책으로 성씨 개명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을 바꾸는 것은 아이에게는 또 다른 상처가 될 수 있다. 대다수가 혈연을 매개로 성씨를 받는 문화에서 ‘어머니의 남편’의 성을 평생 갖는 것은 뿌리를 거세당한 결핍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게다가 아이가 친부를 계속 만나는 경우는 늘 그 사실을 환기해야 한다.

아이에게 이상적인 것은 미국 영화에 종종 나오는 이혼 가정 풍경이다. 재혼한 어머니와 사는 자녀를 위해 친아버지, 새 아버지, 어머니가 다함께 어울리는 모습이다. 나는 요즘 이 낯선 장면이 이혼 가정 아이들을 가장 근원에서 배려한 것임을 깨닫는다. 이 장면의 핵심은 이혼 피해자인 아이를 위해 가해자인 부모 세대가 모두 현재 결혼에서 불편을 조금 감수하는 것이다. 생물학적 부모에 대한 강한 애착을 적당히 해소하면서 새 부모와의 관계도 쌓아가도록 한다. 이 경우 아이에게 친부모와의 관계는 ‘질긴 혈연에 대한 부분 긍정’, 새 아버지와의 관계는 ‘호의적인 사회관계’의 경험이 될 것이다. 나는 이게 정직하고 성숙한 태도 같다. 이혼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정확히 인정하는 점에서 정직하고, 아이를 보호 대상이 아니라 인격체로 보고 부모가 가해에 대해 진정으로 책임진다는 점에서 성숙하다.

혈연을 긍정하면서 새 가족관계 경험하는 기회 줘야

난 나
한국의 재혼 가정은 이전 배우자와 거의 관계를 맺지 않는다. 새로운 가정을 유지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아이를 위해서는 성을 바꾸는 길밖에 없는 듯하다. 하지만 이 방법은 아이에게 ‘어떤 경우든 현재 아버지와 성씨가 같아야 한다’는 도그마를 오히려 강화해준다. 그런데 아이의 성은 ‘남들과 같은 아버지의 성’이 아니다. 아이가 바뀐 성을 뿌리에 대한 결여로 해석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 점에서 이 방법은 개명 비용을 아이의 먼 훗날로 지불 유예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성씨 개명은 한창 예민한 성장기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처이긴 하지만, 그 발상의 기저에는 재혼 부부의 불편을 피하기 위한 ‘현재 부부 중심주의’가 깔려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아이를 위해 바꿔야 할 것은 성씨가 아니라 한 가정 안에 다른 성씨의 공존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적 시선과 스스로를 가해자가 아닌 보호자로 가정하는 재혼 부부의 강자 중심 사고가 아닐까. 가족 안에서도 아이라는 약자는 발언권이 없어 보인다.

기자명 남재일 (문화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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