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문희이명박 당선자가 김영남 방문에 부정적인 결론을 내렸다는 얘기가 도는 가운데, 북한이 그동안의 침묵을 깨고 대남 발언을 시작했고, 김정일 위원장 방중설도 나돈다. 김영남 방문이 어렵다면 특사라도 보낼 필요가 있다.
고백할 게 있다. ‘통·통 체제’라는 말, ‘남한의 통일부(국정원)와 북한의 통일전선부에 의해 운영되는 남북 관계 모습’을 일컫는 그 말. 바로 필자가 만들어냈다. 2006년 5월25일로 예정됐던 경의선 시험운행이 하루 전날 갑자기 취소된 사건을 두고 북한의 통전부가 북한 군부에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통전부와 연계된 남쪽 당국이나 전문가 역시 거기에 맞장구치는 모습을 보면서, 그 말을 지었다. 남과 북의 ‘전문가’가 서로 십시일반으로 거들어주며 담합하는 체제가 계속되는 한, 우리의 민족문제 역시 단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후 이러저러한 사건을 거치며, ‘통·통 체제’는 이 바닥의 보통명사로 자리 잡아갔다. 심지어 지난 1월17일 이명박 당선자가 ‘통일부와 통일전선부가 밀실에서 수군수군하는 시대는 지났다’고까지 했으니, 어찌 감회가 없었겠는가. 해서 그 다음 소식을 기다렸다. 통일부와 통전부 라인을 대체할 새로운 남북 대화 채널을 구축한다는 얘기까지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들려오는 것은 엉뚱하게도 통일부를 폐지한다거니 되살린다거니 하는 소리뿐이다.

필자가 통통 문제를 제기한 것은, 통일부를 없애야 한다거나, 국정원-통전부의 만남을 금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 본연의 일을 하게 하고, 대신 서울과 평양의 채널을 격상해, 최고위급 수준에서 좀더 발전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대화를 시작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뜻이었다. 

북한 측은 이미 이런 문제의식 아래 새로운 대남 창구 개설을 향해 움직여왔다. 지난해 10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통일전선부 산하 기존 대남 기구에 대한 감찰을 시작해 이들을 폐기 또는 축소하는 한편, 새로운 창구를 찾으려 했다. 북한 실세들이 보기에도 더 이상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먹고사는 일의 위중함 때문에, 남쪽이 아니면 중국에라도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판인데, 동북 공정을 공공연히 내건 중국은 2006년부터 경제 지원 대가로 김정일 위원장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해왔다. 남쪽에서는 잠시 핏대 올리고 끝나버렸지만, 동북 공정에 따른 영토 병합의 실질 대상인 북쪽은 벌써 2년째 허리띠 졸라매고 저항해온 셈이다.

이 당선자와 그 주변에서 ‘통일부-통전부로는 안 된다’ ‘앞으로 대북 문제는 청와대 특임장관이 맡을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묘하게 일이 꼬여가는 듯하다. 북한이 남북 간 새로운 채널 구축을 위한 시범사업으로 추진해온 김영남의 2월25일 취임식 참석 문제에 대해 최근 이명박 당선자가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이 시점에 득될 게 없다는 판단이라고 한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취임식에 부르는 게 정 부담스럽다면  다른 방법도 있을 터이다. 미·일·중·러 4개국 특사가 이미 한 바퀴 돌고 돌아왔으니, 이제 그 결과를 가지고 마지막으로 북한에 특사를 보낼 수도 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지난 10년의 남북 관계 변화를 감안할 때, 그 또한 어색한 일이 아니다. 북한 핵 신고 문제 등 6자 회담 현안도 이미 발생했으니 당사국으로서 당연한 도리이기도 할 터이다.

김정일 방중 이뤄지면 동북공정 수용하는 계기 될 수도

그러나 지금까지는 극적 변화를 기대하기가 어려울 듯하다. 무엇이 이 당선자의 발목을 붙잡고 있을까. 최근 들리는 소식으로는 그게 바로 4월 총선이란다. 진보 세력은 이미 궤멸하다시피 했고, 이회창씨의 자유선진당(가칭)과 누가 더 보수적인가 경쟁해야 하는 만큼 온건한 대북 정책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북측과 대치 상황으로 가는 게 낫다는 자체 분석도 있다 한다. 남북 관계가 다시 정치에 휘둘리는 양상이다.

그동안 침묵을 지켜오면서 남쪽의 회신을 기다려온 북쪽도 최근 꿈틀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개성~봉동 간 화물열차 운행 횟수를 줄이자는 것과 노동신문이 남쪽의 PSI 가입 논란에 쐐기를 박고 나온 것 등이 신호탄이다. 더 이상 침묵은 없다는 걸 얘기하는 듯하다.

무엇보다 김정일 위원장의 3월 중국 방문설이 흘러나왔고, 왕자루이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최근 북한을 방문했다. 2년간 끌어온 북·중 간 기세 싸움의 축이 한쪽으로 기울면서 왕자루이 부장이 항복 문서에 서명을 받기 위해 간 게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온다. 정치권의 마음은 온통 표밭으로 달려간 모양이지만, 남북 관계를 들여다봐온 사람의 심정은 새까맣게 타들어간다.

기자명 남문희 전문기자 다른기사 보기 bulgot@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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