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의약품 슈퍼마켓 판매 논란에 불이 붙었다. 대통령의 ‘네 번째’ 발언이 도화선이 되었다. 10월10일 김황식 총리가 국회에서 대독한 ‘2012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제출에 즈음한 시정연설’에서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가 가능하도록 약사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했다. 다음 날 김황식 총리는 국무회의에서 “국민 대다수가 동의하는 대학 구조개혁과 의약품 슈퍼 판매 등 이해 단체의 집단 반발이 우려스럽다. 공익을 침해하는 집단 이기주의는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해달라”라고 말을 얹었다. 한 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시정 연설에서까지 의약품 슈퍼 판매 얘기를 꺼낸 것은 뜻밖이었다”라고 말했다.


ⓒ뉴시스2007년 11월25일 제4차 전국약사대회에 참석한 당시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운데).

사실 의약품 슈퍼 판매에 대한 대통령의 ‘첫 번째 발언’은 지금과는 달랐다. 2007년 11월25일. 대선을 앞두고 당시 이명박 후보는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전국약사대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대한민국은 동네마다 약국이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작용한다. 외국은 동네마다 약국이 없기 때문에 슈퍼에서 약을 팔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동네에 있는 약국에 단골손님이 많아 각 가정의 건강을 파악하고 있어 약은 약국에서 팔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두 번째 발언부터 대통령의 논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2010년 12월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에서 코감기 걸리면 슈퍼에 가서 항시 사먹는 약을 먹고 끝내곤 했다”라며 의약품 슈퍼 판매가 허용돼야 한다는 뜻을 비쳤다. 당시만 해도 의약품 슈퍼 판매를 두고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의 의견이 엇갈리던 참이었다.

애초 의약품 슈퍼 판매는 경제 부처인 기획재정부가 추진했던 사안이다. 전문 분야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자본 유입을 촉진하겠다는 논리였다. 윤증현 전 장관은 “일반약 슈퍼 판매를 하면 제약회사 매출이 몇십%는 늘어날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반면 보건복지부는 의약품의 안전성과 오·남용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지는 의약품 슈퍼 판매는 어렵다는 쪽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이 기재부 손을 들어준 격이었지만, 보건복지부는 올해 5월까지 본래 방침을 고수했다. 진수희 전 장관은 5월 말 기자간담회에서 “약사법상 의약품은 약국을 통해서만 팔게 되어 있다. 시중에 약을 깔아놓을지가 문제가 아니라 약국이 문 닫는 시간에 발생하는 응급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에 관한 문제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다가 지난 6월 초부터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중앙일보〉를 필두로 보수 언론이 앞장서서 ‘감기약 편의점 판매를 추진해야 한다’는 기사를 흘리기 시작했다. 〈중앙일보〉는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하기까지 했다. 직후 이명박 대통령은 ‘의약품 슈퍼 판매 추진’을 지시했다. 대통령의 세 번째 발언이었다. “고위직 공무원들이 사무관급 보고서에 얽매여 있다”라는 발언도 했는데, 이것이 진수희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도 분분했다. 


ⓒ뉴시스대한약사회가 7월15일 개최한 ‘약국외 판매 의약품 도입 관련 약사법 개정’ 공청회에 피켓을 들고 나온 약사들.

이 시점부터 보건복지부는 ‘일반약 약국외 판매 불가’에서 ‘일반약 약국외 판매 허용’으로 방침을 선회한다. 이어 8월부터는 박카스 같은 드링크류와 액체소화제 등 42개 품목이 일반의약품에서 의약외품으로 전환돼 약국 밖에서 팔리게 되었다. 이는 장관 고시로 가능했다.


국회 보건복지위, 약사법 개정 반대 여론 많아

지난 7월 말 보건복지부는 약사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심야와 공휴일 시간대에 발생하는 의약품 구입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약국외 판매 의약품’ 분류를 도입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현행 약사법에서는 약을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과 △약국에서 판매하는 일반의약품으로 나눈다. 이런 2분류 체계를 △전문의약품 △일반의약품 △약국외 판매 의약품 3분류 체계로 변경하겠다는 방침이었다. 약국외 판매 의약품으로는 타이레놀과 부루펜 같은 해열진통제, 감기약 등을 예시로 들었다. 결국 이런 약품을 약국 말고 패밀리마트와 같은 편의점, 슈퍼에서도 판매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약사법 개정안이 나오면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국회에서도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찬성하는 측은 ‘편의성’을 강조한다. 심야 시간대와 공휴일에 약을 구하기 어려우니 이를 의약품 슈퍼 판매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타이레놀 등 약국외 판매 의약품의 경우 그 부작용이 미미한 수준이기 때문에 부작용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다. 반대 의견은 이렇다. 현재 우리나라의 약국당 인구수가 약 2300명으로 OECD 국가 중 약국 접근성이 최고 수준이고(아래 표 참조), 약품의 안전성이나 약물 오·남용이 여전히 염려된다는 것이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건약)’의 신형근 부회장은 “미국의 자유 판매 약은 미국의 보험제도와 연관이 있다. 전 국민 건강보험을 채택하지 않은 상황에서 비싼 의료비 때문에 저소득층이 약을 사서 자가 치료하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미국은 땅이 넓어서 약국 접근성이 떨어져 슈퍼에서 약을 팔게 된 측면이 강하다. 우리와는 상황이 다르다”라고 말했다.

해당 상임위인 국회 보건복지위에서는 안전성 등의 문제로 약사법 개정을 반대하는 여론이 높은 편이다. 한두 의원을 제외하고는 법안 처리를 반대하거나 유보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 9월26일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도 최고위원회의에서 “타이레놀은 아세트아미노펜의 독성 때문에 약사 관리 없이 슈퍼에서 판매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기침약 주성분인 슈도에페드린도 필로폰 성분이고, 진해거담제인 르미라도 다량 복용하면 환각 효과가 있다”라며 약사법 개정안에 대해 회의적 시각을 나타냈다. 이대로라면 약사법 개정안 처리가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청와대와 보수 언론이 개정안 방향 좌우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의 네 번째 발언(국회 시정연설)이 나온 것이다. 이름을 밝히길 꺼려한 한나라당 한 의원실 관계자는 “한나라당 의원들은 내심 유보하거나 반대하는 견해가 많다. 그런데 청와대가 강하게 밀고 있다. 조·중·동을 중심으로 매경까지 약사법 개정안 처리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몇몇 보수 언론이 약사법 개정안 통과에 총대를 메고 나서면서 일각에서는 종합편성채널 광고시장을 늘리려는 꿍꿍이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제약사는 왜 종편에 투자했을까?  기사 참조).

약사법 개정안은 11월21일께 국회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 상정될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 5일 동안 법안 심사소위가 열린다. 또 한 차례 격론이 예상된다. 한나라당 보건복지위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처리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청와대 의지가 강하고. 조·중·동과 매경이 사안만 생기면 대서특필하니까. 나중에 법안 상정할 때가 되면 왜 상정 안 하냐고 기사를 쓸 텐데…. 통과될지 안 될지는 그때 가봐야 알 것 같다.” 결국 약사법 개정안의 향방을 알려면 국회보다 청와대와 종편 관련 언론사들의 보도를 유심히 지켜봐야 할 듯하다.

기자명 차형석 기자 다른기사 보기 ch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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