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중위 사건은 육사 52기 동기생들의 군 생활에서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였다. 육사 출신 장교라는 명예와 자부심에 부풀어 막 임관한 이들에게 생도 시절 가장 강인했던 동기생 김훈 중위의 죽음은 그 자체로 청천벽력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느낀 깊은 절망감은 단지 김 중위가 먼저 저세상으로 갔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을 깊은 좌절로 몰아넣은 것은 ‘김훈 중위를 끝끝내 자살로 처리하려고 기를 쓰는 육사 출신 군 수뇌부의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었다.

오로지 국가만을 생각하던 순수하고 우직한 청년 장교들에게 이런 군의 현실은 환멸을 불러일으켰다. 대위로 예편한 동기생 김 아무개씨는 “김훈 사건은 우리 청년 장교에게 군의 현실을 보여준 ‘창’ 같은 존재였다. 군 생활을 하다 잘못되면 국가에 의해서 훈이처럼 버림받겠구나 하는 생각에 다들 군을 떠날 결심을 키웠다”라고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다른 육사 출신 기수의 경우 임관 5년차 전역자가 평균 10명 안팎이었지만 김 중위 사건이 터진 직후 52기 동기생은 무려 33명이 군복을 벗었다. 아직까지 군에 남아 영관급으로 근무하는 한 동기생은  “군 생활 내내 친구 김훈에게 안겨진 불명예를 애써 외면한 채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는 불쾌한 기억에 시달렸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조우혜김훈 중위 순직 처리를 청원한 육사 52기 동기생들.

하지만 김훈 중위의 명예를 되찾는 일이 육사 52기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동기생들의 염원은 한시도 사라지지 않았다. 해마다 김훈 중위 추모제에 참가해온 동기생들은 최근 국방부와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김훈 중위를 국가보훈 대상자로 인정해 명예롭게 국립묘지에 안장해달라는 청원을 냈다. 자살로 볼 수 없다는 상당한 이유를 대법원과 국회, 그리고 군의문사 진상규명위 등 3개 국가 기관에서 인정했는데도 김훈 중위의 유해가 여전히 차가운 창고에 방치되고 있는 데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국방부는 ‘1999년 군 수사기관의 결론이 자살이었기 때문에 보훈 처리가 불가하다’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반면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서는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해 법 개정 정신과 다른 국가 기관들의 결정 취지에 맞게 국방부가 순직을 전제로 재심을 실시하도록 권고할 방침이라고 한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