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지 국가만을 생각하던 순수하고 우직한 청년 장교들에게 이런 군의 현실은 환멸을 불러일으켰다. 대위로 예편한 동기생 김 아무개씨는 “김훈 사건은 우리 청년 장교에게 군의 현실을 보여준 ‘창’ 같은 존재였다. 군 생활을 하다 잘못되면 국가에 의해서 훈이처럼 버림받겠구나 하는 생각에 다들 군을 떠날 결심을 키웠다”라고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다른 육사 출신 기수의 경우 임관 5년차 전역자가 평균 10명 안팎이었지만 김 중위 사건이 터진 직후 52기 동기생은 무려 33명이 군복을 벗었다. 아직까지 군에 남아 영관급으로 근무하는 한 동기생은 “군 생활 내내 친구 김훈에게 안겨진 불명예를 애써 외면한 채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는 불쾌한 기억에 시달렸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훈 중위의 명예를 되찾는 일이 육사 52기의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동기생들의 염원은 한시도 사라지지 않았다. 해마다 김훈 중위 추모제에 참가해온 동기생들은 최근 국방부와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김훈 중위를 국가보훈 대상자로 인정해 명예롭게 국립묘지에 안장해달라는 청원을 냈다. 자살로 볼 수 없다는 상당한 이유를 대법원과 국회, 그리고 군의문사 진상규명위 등 3개 국가 기관에서 인정했는데도 김훈 중위의 유해가 여전히 차가운 창고에 방치되고 있는 데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국방부는 ‘1999년 군 수사기관의 결론이 자살이었기 때문에 보훈 처리가 불가하다’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반면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서는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해 법 개정 정신과 다른 국가 기관들의 결정 취지에 맞게 국방부가 순직을 전제로 재심을 실시하도록 권고할 방침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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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도 타살도 아니면 김훈은 왜 죽었나?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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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상 기자
‘원인을 알 수 없는 자살’(1998년 4월 1군단 헌병대), ‘격무와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1999년 4월 국방부 특별조사단), ‘자살은 아니지만 타살 증거도 찾기 어려워 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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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도 타살도 아니면 김훈은 왜 죽었나?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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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상 기자
하지만 그뿐이었다. 특히 권총 사망 사건의 진상을 규명할 때 핵심 사안이 되는 사건 현장 유류품에 대한 과학적 감정의 진실에 관해서는 위원회도 특조단과 마찬가지로 끝까지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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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어머니들의 근심이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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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지 기자
“여러분 중에 원해서 (군대를) 온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되었든 조국의 부름을 받았다. 이 땅의 평화를 위해 반드시 지불해야 할 대가이다.”대대장의 훈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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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사병’이 ‘자살사병’이 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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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필렬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아우슈비츠 생존자 프리모 레비는 당시의 체험을 기록한 책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항시 죽음에 직면하는 수용소 내의 인간 유형을 네 가지로 분류한다.거기에도 모범생이 있다. 이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