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는 김훈 중위를 일찌감치 순직 처리해 국립묘지에 안장했어야 했다. 대법원은 물론 대통령 소속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등에서 김훈 중위가 자살했다는 군 당국의 초동수사 결론을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2006년 12월 김훈 중위 사건 관련 판결을 통해 “초동수사가 잘못돼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라고 판시했다. 이어서 그 책임이 초동수사를 잘못한 군 헌병대에 있다고 보고 국가로 하여금 유족에게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또 군 의문사 사건을 재조사하기 위해 여야 합의로 제정된 특별법에 따라 설치된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도 김훈 중위 사건을 3년여에 걸쳐 조사한 결과 2009년 11월2일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내렸다.
그동안 군 복무 중 의문사한 사람들은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국가유공자법)에 따른 ‘순직 군경’으로 예우를 받아왔다. 그러나 김훈 중위는 죽음의 경위가 밝혀지지 않고 자살로 처리된 채 같은 법 제4조 6항의 예외 사유 중 ‘자해행위로 인한 경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국가유공자 등록을 거부당해왔다.
왜 국방부만 순직 처리에 인색할까
지난 8월23일 국회에서 국가유공자법을 개정함으로써 이런 족쇄는 사라졌다. 즉 자해자는 순직 처리가 불가하다는 항목이 삭제되고 대신 자살자도 자유의지가 아닌 상황에서 자해했다면 국가유공자로 처리해주도록 허용한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김훈 중위에 대해서만은 국방 당국이 요지부동이다. 자해자에게도 법적으로 열린 순직 처리의 문을 김훈 중위에게만은 철저히 닫아걸고 있는 셈이다.
공무 수행 중 사망한 사건에 대응하는 태도를 놓고 국방부는 정부 부처 가운데 가장 반인권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2009년 활동을 마친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그동안 군의문사위에서 해당 부처에 순직자 재심을 요청한 군 내 자살자는 총 32명이었다. 그 중 경찰청 4명(전의경), 법무부 1명(경비교도대) 등 5명이 포함됐는데 두 기관은 모두 자살 동기에 가혹행위 등 국가의 책임이 있다는 군의문사위의 재조사 결론과 순직 처리 권고를 수용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순직 처리 권고를 받은 24명 중 단 한 명도 순직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에 김훈 중위를 포함해 23명의 군대 내 사망자 유족은 많게는 십수년이 지나도록 아들의 유해를 인수하지 않고 국방부를 상대로 순직 처리와 명예회복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군당국은 모르쇠로 일관해왔다.
일부 군 법무 파트의 ‘몽니’가 문제
10월7일 국방위 국정감사에서도 김훈 중위 사건이 도마에 올랐다. 민주당 서종표 의원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김훈 중위 사건은 초동 수사 잘못으로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는 요지의 대법원 판결문을 읽어 내려간 뒤 장관의 뜻을 물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김훈 중위 사건을 포함해 군에서 해결하지 못한 유사한 사건이 있는데 김 중위의 대법원 판결문과 개정 법률을 다 같이 검토해서 긍정적으로 처리하도록 하겠다”라고 답했다. 김훈 중위 사건에 대해 육사총동창회를 포함한 외부 인사는 물론이고, 군 내에서도 양식 있는 대부분의 장교는 순직 처리를 통한 명예회복을 지지하고 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이 같은 군 안팎의 여론을 중시해 김훈 중위 사건을 전향적으로 해결할 의지를 보인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 해결에 가장 큰 걸림돌은 육군 법무감실과 국방부 조사본부 등 일부 군 수사 관련 부서다. 원초적으로 김훈 중위 사건 수사 과정에 연루된 이들은 대법원이 마치 자신들의 손을 들어준 양 판결 결과를 견강부회식으로 갖다 붙이며 김훈 중위의 순직 처리와 명예회복을 반대하고 있다. 군 법무 파트 일각의 이런 ‘몽니’에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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